『태백산맥』 개정판이 나와 주저 없이 한 질을 구매했다. 농지개혁이 무상몰수 무상분배에서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물줄기가 틀어지던 당시 모습을 잘 그렸다. 농지가 몰수될까 전전긍긍하던 지주들은 너나없이 편법을 자행한다. 소작인 중에 어리숙하고 세상 물정 잘 모르며 말 잘 듣게 생긴 자를 골라 내 명의자로 내세운다. 9마지기 농지 소유권을 명의자 앞으로 돌린다. 동시에 소유권 포기각서도 받는다. 그 대가는 한 마지기 농지의 완전 소유권이다. 평생 땅 한 평 가져보지 못한 소작인을 입막음하기에는 충분한 대가다.
욕심도 과하면 사달 난다. 당시 몰수 대상 농지에 ‘염전’이 빠져 있었다. 그걸 안 양조장 주인은 헐값에 수만 평 농지를 사들인다. 그리고 바닷물을 들인다. 땅 주인이 바뀌더라도 농지가 그대로 농지면 소작인은 읍소할 거리라도 있다. 소작은 계속 부치게 해 달라고 전 주인에게 매달리거나 새 주인에게 조아릴 수 있는데, 농지가 염전부지가 되면 비빌 언덕이 없다. 성난 소작인이 휘두른 낫에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으로 양조장 주인의 과욕은 대가를 치른다.
당시 농지의 가치는 수확물의 생산량으로 측정됐다. 비옥한 땅은 우대받았다. 밭농사만 지을 수 있는 땅은 논 값에 미치지 못한다. 개간을 거쳐야 한다면 더 저렴했다. 농지 본연의 가치가 수확물로만 판단될 때 가치 측정값은 명료하다. 임야도 그렇다. 작물을 심는다든지 매장지로 쓴다든지 해서 구입할 때 그 지목에 어울리는 가치가 측정된다. 골프장 계획 부지 안에 떡하니 버틴 임야 소유자는 바람이 한참 들어 콧대가 세다. 애초 선산으로 쓰면 족하다고 생각했어도 매수자 앞에서는 골프장이 된 것처럼 행세한다.
해당 용도를 전제로 가치를 측정할 때 이를 본연의 가치 혹은 ‘절대가치’로 부른다면, 바람이 들고 콧대가 세지고 다른 옷을 입은 것처럼 행세한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가격은 ‘상대가치’로 달리 불러야 할 것이다. 요즘 언론기사에 나오는 조합원의 종전자산 가격이나 공익사업지구 안 보상금액은 상대가치의 성격을 많이 띠고 있다. 뉴타운, 재개발구역 내 종전자산 가격이 시세보다 낮다는 지적이 일반적인데 예상보다 높게 나왔다면 ‘일반 주택이나 상가가격보다는 높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현재 다가구주택이나 상가로서의 본연의 가격보다 신축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바람’이 깃들여 끌어올린 가격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농지나 임야의 보상금액은 예측을 벗어날 때가 종종 있다. 보상의 영역에서는 ‘개발이익’ 즉 개발을 전제로 부풀려진 가격 얼마는 손에 쥘 수 없다. 이들이 기댈 상대가치는 옆 동네의 보상금액이다. 그들 정도는 돼야 한다거나 그들보다 다만 얼마라도 높아야 한다는 바람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현재와 다른 상황을 상정하는 감정평가는 그런 상정 조건의 합법성이나 합리성, 실현가능성 등을 검토해 ‘조건부 평가’로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상황은 대부분 현황평가이면서 현재에 개입하는 크고 작은 바람들을 얼마나 인정하고 반영하느냐에 따라 측정가치의 출렁임이 크다. 예상보다 높거나 예상보다 낮다는 평가와 지적은, 절대가치가 상대가치로 전환되면서 겪어야 할 진통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기사가 그런 면을 짚고 있다. 감정평가는, 그러한 출렁임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 정도의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이용훈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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