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법부가 정치화되면 공화국이 파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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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법부가 정치화되면 공화국이 파탄난다
  • 최진녕
  • 승인 2021.04.16 10: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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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씨케이 대표) / 전 대한변협 대변인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씨케이 대표) / 전 대한변협 대변인

‘재판이 곧 정치’라며 판사의 정치색을 인정하자는 취지의 글이 지난 2017. 8. 30.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라왔다. 사법의 정치화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법원이 발칵 뒤집혔다. 글을 쓴 판사는 진보성향 판사 연구단체로 알려진 국제인권법연구회 멤버이자 이들이 주축이 된 전국법관대표회의 위원이었다. 그 무렵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은 9월 25일 제16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했다. 김 대법원장 역시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임을 한시도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취임 3년 반이 지난 지금, 김 대법원장의 선언은 유효한가?

인사가 가장 큰 문제다. 김 대법원장의 인사는 ‘코드 인사’ 라는 비판이 크다. 전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 등에서 요직을 맡았던 상당수 법관이 이른바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이유로 법복을 벗은 반면, 그 진상 조사에 참여한 법관 다수는 행정처와 서울중앙지법 등 핵심 자리에 배치되고, 일부는 청와대와 여당 국회의원으로 직행했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이 인사를 통해 우리법연구회 등의 판사들로 법원 주류세력을 교체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우리법연구회 등 회원의 약진이 눈부시다. 행정처 기조심의관 이탄희 판사와 대법원 재판연구관 이수진 판사,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 최기상 판사는 법복을 벗자마자 여당에 입당한 뒤,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인권법연구회 간사이자 김 대법원장의 배석판사였던 김형연 판사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직행한 뒤 법제처장으로 영전했다. 과거 보수정권에서 검찰이 출세의 지름길이었다면, 이번 정부 들어서는 사법부 내 특정 모임의 판사가 그 길을 대체하는 모습이다.

올해 법원 인사를 보면 우리법연구회 등이 가히 법원 내 ‘하나회’ 같은 권력형 모임이라는 비판도 과장이 아니다. 신임 서울중앙지법원장은 2017년 김 대법원장 지시로 만들어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조사단에 참가했고, 대형 형사사건 배당과 영장전담판사 인선 등을 결정하는 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판사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판사 블랙리스트’ 1차 조사에 참여했다. 대한민국 기업 핵심 사건을 처리하는 신임 민사 1수석부장판사도 같은 연구회 소속으로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 때 검찰 수사를 주장했었다.

서울중앙지법의 재판장은 법원에서 3년, 같은 재판부에서 2년간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같은 모임의 윤종섭 형사36부 부장판사는 6년째 서울중앙지법에 유임했다. 우리법연구회 출신 김미리 형사21부 부장판사도 서울중앙지법 같은 재판부에 3년째 유임됐다. 30년 동안 이런 인사는 처음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반면 김 대법원장은 전임 대법원장 시절 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을 역임한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제출한 사직서는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수리하지 아니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임 전 부장판사가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사표 수리를 간곡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김 대법원장은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그 중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 라며 수리를 거부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사고를 넘겠다는 김 대법원장의 말은 부도가 난 셈이다.

최근 사법권 남용 첫 유죄 판결문을 통해 인권법학회 진성 회원 73명의 명단이 공개되면서 그중 18명이 법원장, 재판연구관, 심의관 등 요직에 발탁된 사실이 밝혀졌다. 사법부 안팎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초대 회장이던 인권법연구 모임이 대법원장의 사조직이라거나 당장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특정 단체의 인사 독점 현상에 따른 후유증도 심각하다. 지난 2월 법원 정기 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낸 판사 수가 80명을 넘었다. 전체 법원장·고법부장 134명 중 20명(14%)이 동시에 사직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재판지연 등 사법자원 손실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인사 독점은 사법권의 핵심인 재판의 공정성 문제로 직결된다. 재판은 공정해야 하고 공정해 보여야 한다. 특정 사건의 재판을 위해 정당한 사유 없이 재판부를 유임시키거나 정권에 불리한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부를 교체하는 것은 사법독립 원칙상 있을 수 없다. 인사 관례를 깨고 서울중앙지법에 4년째 유임된 김미리 부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사건의 재판장,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주심 판사를 맡고 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재판은 1년 반가량 공전 중이다. 두 건 모두 판결 결과에 따라 현 정권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사건이다. 반면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법정 구속한 1심 재판부는 잔류 신청했지만 교체되었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원칙대로 3년 만에 변경되었다. 하지만, 윤종섭 부장판사는 6년째 중앙지법에 유임되면서, 최근 사법권 남용 사건 중 유일하게 유죄판결을 했다. 사법부가 정치화되면, 법치가 무너지고, 법치가 무너지면 공화국이 붕괴된다.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씨케이 대표) / 전 대한변협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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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 2021-04-30 13:21:36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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