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승리’는 있으나 ‘승자’는 없는 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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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승리’는 있으나 ‘승자’는 없는 보궐선거
  • 신희섭
  • 승인 2021.04.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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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55.5%와 58.2%. 지난 4월 7일 재보궐선거 전체투표율과 서울의 투표율이다. 재보궐선거 투표율로는 꽤 높게 나왔다. 이번 선거가 재보궐선거 사상 최고 투표율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61.4%를 기록한 2014년 하반기 재보궐선거가 있다. 다만 이 선거가 청송군과 예천군의 기초의회 재보궐선거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선거구의 크기가 큰 이번 재보궐선거의 투표율은 거의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48%의 2019년 4.3재보궐선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재보궐선거가 20% 후반과 30% 초반을 기록했던 것과 비교가 된다.

이번 선거를 한 마디로 규정하면 ‘분노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으로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서운하겠지만, 이번 선거의 키워드는 많은 유권자의 ‘분노’라고 할 수 있다.

후보로서 누가 더 좋은지나 어떤 정책이 유용한지는 이번 선거에서 부차적이었다. 1년밖에 남지 않은 임기에 유권자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기대했겠는가! 부동산이 이번 선거에서의 블랙홀이 되어 모든 이슈를 잡아먹어 버렸다. 집값 인상과 세금인상이 겹치면서, 세입자도 주택소유자도 모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이번 선거는 몇 가지 기록을 만들었다. 첫째, 앞서 본 것처럼 선거구 크기가 큰 보궐선거 사상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덩달아 사전투표율도 20.54%로 2014년 재보궐선거의 19.40%를 누르고 최고 기록을 차지했다. 둘째, 서울의 모든 선거구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했다. 부산은 지역색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선거의 서울 결과는 눈여겨볼 만하다. 2014년 선거에서 강남, 서초, 용산에서만 지지를 받았던 것이나 2018년 서울시장선거에서 모든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에 패배한 것과 대조적이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가 강한 강북, 노원, 도봉지역도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선거 후 많은 분석이 있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다. 이번 선거에 대해 평가를 하자면 두 가지다. 첫째, 이번 선거에서 승리는 있지만, 승자는 없다는 것이다. 누가 잘해서 승자가 된 것이 아니다. 많은 유권자가 현 정부를 심판한 것이다. 그래서 대안 세력에게 표를 몰아준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제3의 후보가 가져간 표는 매우 적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2004년 탄핵정국이 만든 총선에서부터 이러한 경향이 눈에 띈다. 누가 정책을 특별하게 만들어서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 정당이 자살골을 넣기 때문에 승리하는 것이다. 2017년 탄핵정국 이후 민주당이 2020년 총선에서 의석을 180석까지 확대한 것도 같은 의미다.

둘째, 누군가를 떨어뜨리려는 동기가 투표에서 중요하게 작동했다는 것이다. 투표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인지는 중요하다. 투표행위(voting behavior)를 설명할 때 기준은 다양하다. 후보자의 약속을 볼 것인지, 미래 전망을 반영할 것인지, 정체성을 따르는지 등이 있다. 한편 투표를 할 때 특정 정책이나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상대 정당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투표를 할 수도 있다. 일면 저항투표(protest voting)를 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2020년 총선과 불과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2020년 총선에서 용산, 강남, 서초, 송파에서만 ‘국민의힘’이 의석을 가진 것과 차이가 크다. 1년의 짧은 기간 동안 유권자들의 정체성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유권자 중에 정당 정체성이 강한 이들은 정부 정책의 결과와 관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하다.

변화는 중도층의 이동에 기반한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정당 지지층이 정해져 있다. 선거 결과는 이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도층의 이동이 핵심이다. 이번 선거 역시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선거가 되었다.

두 가지가 결합하여 나타나는 결과는 명확하다. 이번 선거의 결과처럼 다음 선거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는 높은 ‘휘발성(volatility)’을 가지고 있어 1년 뒤를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이슈로 어떤 정국이 만들어질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처럼 ‘투표 유동성’ 역시 높게 나타나니 다음 정국은 더더욱이 알기 어렵다. 또한, 선거가 무엇을 지지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거부하는지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선거의 교훈 역시 다르다. 다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말든지 혹은 원점으로 돌려달라는 것이다.

한국 유권자들의 기준이 만약 무엇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제발 가만히 있어 달라거나 원점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이라면, 다음 선거는 상대방에 대한 비방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승자 없는 선거의 강력한 역풍(blow back)이 걱정된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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