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책임져야 할 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소를 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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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책임져야 할 자들은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소를 제기합니다
  • 윤지영
  • 승인 2021.04.0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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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자살한 골프장 캐디를 위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보복조치를 당한 안내직원들을 위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어려운 사건 두 개를 동시에 맡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체불 임금 진정을 이유로 한 보복조치에 관한 것입니다.

1. 골프장에서 일하던 캐디가 작년 가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습니다. 고인은 전체 캐디들을 관리하는 ‘캡틴’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캡틴은 고인에게 “느리다, 뛰어라”, “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너 때문에 뒷사람들 전부 다 망쳤다”, “니가 코스 다 말아먹었다”, “야 너 살 뺀다면서 그렇게 밥 먹냐, 그렇게 먹으니깐 살찌는 거야”라는 등 모욕적인 말과 외모 비하를 일삼았습니다. 이런 일로 고인은 몇 차례 자살 시도를 하였고, 캐디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저를 밑바닥까지 망가뜨려주신 건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글을 남겼다가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목숨을 끊었습니다.

2. 서울 강남 도곡동에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습니다. 이 아파트는 호텔처럼 1층을 로비로 꾸미고 안내 데스크와 안내 직원까지 따로 둔 곳입니다. 그러나 안내 직원들에 대한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입니다. 안내 직원들은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안내데스크를 지켜야 합니다. 휴게시간에도 제대로 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휴게시간이라는 이유로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임금을 올려달라고 할 때마다 관리 회사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반대한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결국 작년 8월 안내 직원 2명은 고용노동청에 체불 임금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관리소장이 이들을 불렀습니다. 입주자대표회장이 내보내라고 지시했다면서 직무를 정지시키고 대기발령을 내립니다. 그러면서 이들을 대신할 안내 직원 모집 공고도 냅니다. 결국 안내 직원들은 작년 8월 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두 사건은 완전히 다른 사건입니다. 피해자들이 하는 일도 다르고, 겪은 고통의 결도 다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두 사건의 피해자들 모두 비정규직이라는 것입니다. 고인은 특수고용노동자, 보복조치의 피해자들은 간접고용노동자입니다. 그래서 형식상 책임을 져야 할 주체 외에도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주체가 따로 있습니다. 자살한 캐디의 동료들을 인터뷰하면서 가해자 뒤에는 골프장 운영 법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인은 업무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고, 고인의 고통은 골프장의 이익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도 고인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골프장 운영 법인에도 관련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권고는 안 지켜도 그만인 결정입니다. 골프장 운영 법인이 고인의 사용자라면, 권고가 아니라 명령이 떨어졌겠지요. 고용노동부는 골프장 운영 법인이 고인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에, 명령 대신 권고를 한 것입니다. 고용노동부만 비판할 일은 아닙니다. 사실 대법원은 골프장 캐디는 개인사업자이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결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골프장 캐디는 으레 개인사업자인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골프장이 정한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청소/쓰레기 치우기/각종 잡무 등 골프장측이 지시하는 일을 하기 위해 무료로 당번을 하기도 합니다. 결근이나 지각을 하면 벌당(벌칙당번)도 합니다. 그래서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골프장 운영 법인이 고인의 사용자로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사용자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주상복합 아파트 안내직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내직원들의 사용자는 관리업체입니다. 따라서 법대로라면 관리업체가 신고에 따른 보복조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실체를 들여다보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는 입주자대표회의, 그 중에서도 입주자대표회장이 있습니다. 관리업체는 입주자대표회장의 지시를 거역하기 어렵습니다. 관리업체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느 아파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입주자대표회장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으려 합니다. 관리업체에 불법행위를 지시한 교사자로서 관리업체와 공동불법행위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민법은 교사자의 공동불법행위책임을 규정하고 있지만, 실무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습니다. 사문화된 이 조항을 무기로 잘 활용해 보겠습니다. 끝으로 공통점 한 가지를 더 알려 드립니다. 두 사건의 피해자들 모두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불안정하게 일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현장에서 절절히 접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건들이어서 몸과 마음의 부담이 상당하지만, 더 잘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1년 3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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