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5-유머와 격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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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5-유머와 격언 사이
  • 손호영
  • 승인 2021.04.0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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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맥스는 생일 파티에 오지 않는 아버지가 서운합니다. 지난번에는 레슬링을 같이 보러 가자 해놓고는 사무실에서 야근한다 하며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생일 파티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겠다 했지만 결국 오지 않습니다. 일렁이는 촛불 앞에서 맥스는 생일 소원을 빕니다. “아버지가 하루만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날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플레처는 변호사입니다. 그는 아내와 이혼했지만 면접교섭권의 일환으로 맥스를 주말마다 보러 옵니다. 이혼한 아내와 아들을 여전히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커리어 또한 놓을 수 없습니다. 이기기 위해서, 승진하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플레처의 악덕 덕분에 그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부인의 이혼소송을 맡게 됩니다. 32살의 의뢰인은 14년 전 남편과 결혼하면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경우 이혼함에 있어 어떠한 재산도 받을 수 없다.’는 혼전계약서(Prenuptial agreements)를 작성해둔 상태입니다. 플레처는 이번 소송에서 적당히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거짓 변론을 해서 승소를 할 생각입니다. 의뢰인은 막대한 재산을 얻고 플레처는 그토록 바라던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나 법정에서 변론을 하려는 순간, 어떻게 된 일인지 거짓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의뢰인의 정부(情夫)를 기껏 증인으로 세웠는데, 애초 계획한 “의뢰인과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진술을 받아내기는커녕, “부정행위를 했다.”는 대답을 듣고 맙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플레처는, 의뢰인으로부터 “31살에 아무 것도 없는 이혼녀가 되게 만들지는 말라.”는 원망과 타박을 듣습니다.

<라이어 라이어(Liar Liar)>는 세간에 떠도는 변호사 유머에 가족애를 버무린 영화입니다. 변호사 유머는, 변호사를 ‘거짓말을 일삼고, 승리를 좇을 뿐 정의는 전혀 관심 없는 사람’으로 보면서, 놀려먹으며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변호사 유머는 예컨대 이런 식입니다.

#1 변호사, 수학자, 공학도가 면접관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1+1은 무엇인가?” 수학자의 대답은 “2입니다.”였고, 공학도의 대답은 “2.0입니다.”였습니다. 변호사의 대답은? “얼마를 원하시는데요?”

#2 마피아가 자신의 회계가 돈을 횡령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회계는 청각 장애가 있어 마피아는 수화를 할 수 있는 변호사를 부릅니다. “내 돈은 어디 있나?” 변호사는 수화로 회계에게 돈의 위치를 묻습니다. 회계가 “모릅니다.”라고 대답하고 변호사는 수화로 통역합니다. 마피아는 곧 권총을 회계의 머리를 향해 꼬나쥐고 변호사를 향해 말합니다. “다시 물어보게.” 변호사는 수화로 성실히 통역합니다. 회계가 할 수 없다는 듯, “돈은 가방에 넣어서 A의 창고에 넣어두었습니다.” 마피아가 변호사에게 묻습니다. “뭐라던가?” 변호사가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당신은 겁쟁이라서 총을 쏠 배짱 따위는 없을 거라는데요?”

<라이어 라이어>에서 플레처도 아들 맥스의 소원이 아니었다면 본래 이처럼 능청스럽고 얄밉게 법정에서 변론을 진행했을지 모릅니다.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거짓을 빼앗긴 그가 모든 것을 내려 놓을 그때, 그는 의뢰인으로부터 의뢰인의 실제 나이를 듣게 되었고, 혼전계약서 작성 시기를 맞추어봅니다. 그리고 의뢰인이 서류상 나이를 실제보다 한 살 부풀려왔다는 것을 깨닫고, 17세에 불과했던 그녀가 당시 작성한 혼전계약서는 효력이 없음을 밝혀냅니다. 탈출구를 찾아낸 플레처는 승소하지만 씁쓸합니다. 의뢰인의 아이들은 아버지와 함께하고자 하는데, 의뢰인은 양육비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아이들과 아버지를 떼어놓습니다. 플레처는 이제 무언가 깨달은 듯, 맥스와 아내를 되찾기 위해서 법정 밖으로 달려나갑니다.

<라이어 라이어>를 흥미롭게 보면서도, 법률가로서 들었던 의문은, 거짓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이 우리 법률가에게 충분한가? 였습니다. 특히 형사사건을 할 때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판례를 찾아보니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형사소송에서는 범죄사실이 있다는 증거를 검사가 제시하여야 한다. 피고인의 변소가 불합리하여 거짓말 같다고 하여도 그것 때문에 피고인을 불리하게 할 수 없다. 범죄사실의 증명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심증을 갖게 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6. 19. 선고 2015도3483 판결).

피고인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만으로 피고인을 불리하게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한 사람을 죄주기 위해서는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심증이 필요합니다. 판례는 법률가에게 거짓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요구함과 동시에 객관적 증거를 수집하고 파악할 성실성을 요구합니다. 과연, 변호사 유머란 어쩌면 법률가들에게 더욱 정진하라는 또 다른 격언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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