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32) / 벽을 바라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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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32) / 벽을 바라볼 때
  • 정명재
  • 승인 2021.03.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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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재 정명재닷컴
(정명재 공무원 수험전략 연구소, 공무원시험 합격 9관왕 강사)

모든 벽 속에는 문이 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벽을 절망과 두려움의 존재로만 보면 현실의 벽은 언제나 차갑고 삭막하다.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커다란 벽에 붙어 살아가는 담쟁이를 본다.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하나는 잎 수 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벽을 앞에 두고 살아간다. 순탄하고 평범한 삶을 원하는 소망이 현실의 절망과 낙담으로 이어지는 순간, 잊고 살라 아우성친다. 고단하고 힘든 하루를 버티는 이들은 많다.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희망이 희망을 불러내는 선순환[good circle]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희망과 절망, 성공과 실패는 그 관계를 반의어로만 살피는 이들이 많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둘은 짝궁이다. 절망의 끝에 서 본 이들이라면 안다. 고독한 시간과의 만남은 사색이었고 성찰이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잊고 지냈던 시간들을 끄집어낸다. 실패의 이유를 찾는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그 이유를 찾았고 상황의 불안요소를 찾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이내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불안이 주는 지혜를 알게 되고, 희미하지만 탈출구를 찾고자 빛을 향한 시도를 하게 된다. 삶의 궤적에서 따뜻한 순간을 떠올리고 잠시 미소를 머금는다. 그렇게 살아갈 이유를 찾아낸 것이다.

수험생들에게 불합격이 주는 절망은 벽이다. 높은 회색빛 담장은 그동안 품었던 희망의 시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벽은 하나가 곧 둘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작았던 것이 덩치가 더 크게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절망의 악순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끝없이 떨어지는 나락처럼 심연(深淵)은 깊고 어둡다.

하지만 절망의 순간이 또 다른 기회로 인도하는 따뜻한 경험을 접해본 적이 있다. 나는 그동안 공무원 분야에서만 가르치는 일을 고집했다. 공무원 시험만을 연구하겠다고 마음 밭에 씨앗을 심었으니 그 결과물은 오로지 공무원 관련 서적과 강의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공무원 시험분야가 많다 보니 이조차 쉽지 않았지만 참고 견디며 버텨보았다. 한 해 그리고 두 해를 지나 6년째를 맞이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외쳐대도 희망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조금 늦더라도, 아니 돌아온다는 기약만 들려주어도 더 견딜 수도 있었다. 희망에게 안부를 묻는 일도 멈추지 않았을 것이고, 기다리는 일이 가장 쉽다는 아부도 서슴지 않고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늘 돌아오는 허탈감과 상실감은 버티는 일도 인내하는 일도 멈추게 했다. 그렇게 희망과 기대를 상실한 시간은 길고도 지루했다.

1개월 그리고 2개월이 지난다. 절망과 친해지고 친구가 될 무렵, 잠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희망이 말을 한다. ‘너는 나를 잊었구나?’ 라며, 절망과 희망은 언제나 혼자 다니는 법은 없었다. 내가 만난 친구는 절망이었지만 그 곁에는 희망이라는 짝궁이 있었다. 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노라고, 얼마나 너를 찾고 있었는데, 잠시 네 생각을 못했을 뿐이라고 변명을 둘러댔지만 희망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떨군다.

세상에 기회는 많다. 단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고 지나쳤으며 작은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것이다. 자격증의 종류가 다양하고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았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未知)의 세계도 많음을 알았다. 시험의 종류가 많다는 사실과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내게 두려움은 아니었다. 이전에 공무원 시험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 하나 있다면 과목의 장벽을 넘었던 경험이었다. 나는 30과목에 이르는 책을 써 보았다. 인문학적 지식과 기술 분야의 서적 등 가리지 않고 공부해 보았으며 이에 관련한 수험서를 써 보았다. 초반에는 무모한 도전일 것이라며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해 주었다. 수산직 서적을 쓸 때 두려움이 먼저 앞섰다. 조경직 서적을 쓸 때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밤을 꼬박 새우며 책을 들여다봐야 했다. 기계직 책을 쓸 때도 암기할 사항이 너무 많아 고생을 했다. 그리고 산업안전지도사 책을 쓸 때는 6개월의 밤샘 작업을 하였다. 끝없는 도전 속에 늘 돌아오는 차가운 벽은 이번에도 여전하리라 생각하였기에 기대는 품지 않았다. 절망에서 배운 작은 교훈이라고는 기대가 적으면 실망도 적다는 진부한 격언, 이 하나만 품었다.
 

작은 희망은 민들레 홀씨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다가온다. 미풍(微風)처럼 잔잔한 소식 하나가 들려온 것이다. 덕분에 합격을 하였다는 소식과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는 소식들을 전한다. 그렇게 합격의 기쁨을 함께 나누려는 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수험생들을 가르치며 한동안 잊고 지냈던 솔직하고 담백한 말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고맙다는 말을, 그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수험생들이었다. 7년 넘게 노량진 그리고 신림동에서 생활하며 수험생들을 가르쳤지만 잊고 지냈던 말이었다. 아마도 가장 기다렸지만 들을 기회가 없었던 말이었을 것이고, 나 역시 이제는 기대하지 않았던 말이어서 감동이 컸을 것이다. 절망은 잠시 뒤로 물러서고 희망이 먼저 손을 내민다. 그래, 한 번만 더 힘을 내라며 웃음을 보인다.

오늘도 칠판 앞에 서서 강의를 마쳤고 어김없이 주말 저녁이 되어 칼럼을 쓴다. 수험생들과 함께, 때론 고군분투하며 지내는 일상이지만 마음에 힘이 생겼다. 나이가 들면 근력은 사라지고 눈은 침침해진다. 마음에는 굳은살이 박여 자신의 주장과 편견에만 길들이기 쉽다. 그럼에도 아직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들을 보며 나와 닮은 무언가를 찾아낸다. 그들이 도전하는 목표와 희망에 나의 모습을 반추해 본다. 내가 겪었던 고통과 절망에서 찾은 희망가(希望歌)를 이제는 함께 부를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겼다. 사실, 나는 공부를 가르치는 강사이기보다는 공부가 재미있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싶었다. 늘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고, 절망과 불안에 쫓기는 이들에게 시험을 통해 희망으로 가는 관문이 있음을 알려 주고 싶었다. 높은 성채(城砦)처럼 견고한 절망의 벽에서 담쟁이가 되어 푸른 희망을 품어 그 벽을 넘게 하고 싶었다. 내가 가 본 길을 그들에게도 함께 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미풍에 실려 온 민들레 홀씨는 아주 작은 흙만 있어도 그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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