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판관 포청천, 어사 박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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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판관 포청천, 어사 박문수
  • 손호영
  • 승인 2021.03.1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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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1 소(牛) 주인이 축사를 돌보다가 애지중지하던 자신의 소 한 마리 혀가 잘린 것을 봅니다. 더할 수 없이 놀라고 황망한 그는 공정하고 슬기롭기로 이름난 판관을 찾습니다. 어르신, 저의 소 혀가 잘렸습니다. 누구 짓인지 알 수 없습니다. 판관은 자초지종을 듣고는 애석하다 합니다. 이미 소 혀가 잘렸으니 어찌하겠는가. 가서 소를 잡아 시장에 고기라도 팔게나. 당시에는 소가 농사에 귀히 쓰였으므로 사사로이 도축하는 밀도살(密屠殺)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을 때입니다. 주인은 판관의 말을 듣고 안심하며 소를 잡았는데, 곧 그가 밀도살을 했다며 고발한 이가 있었습니다. 어르신, 저 사람이 감히 국법을 어기고 소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관청에 울려 퍼진 것은 판관의 호통입니다. 네 이놈! 남의 집 소 혀를 잘라가더니, 이제는 고발까지 하는구나!

#2 어사가 암행을 하던 길에 날이 저뭅니다. 한 여인을 우물 근처에서 만나 하루 머물 것을 요청합니다. 여인의 집에 들어와 객방에 앉아있던 어사에게 여인이 저녁밥을 가져왔는데, 밥뚜껑을 열어보니 뉘(등겨가 벗겨지지 않은 채로 섞인 벼 알갱이) 세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어사는 곰곰 생각하다, 차려준 밥상의 반찬 중 생선을 먹지 않고는, 네 토막을 냅니다. 상을 물리러 온 여인이 이내 알았다는 듯 “어사님께서 오셨군요.”라고 말을 건넵니다. 여인은 뉘 세 개를 통해 ‘뉘시오’라고 물었고, 어사는 ‘생선 네 토막(魚四, 어사)’으로 자신의 정체를 어사(御史)라고 밝혔습니다. 어사는 여인의 기민함에 감탄하며, 임금께 왕비로 추천합니다.

봉건시대 당시 억울함과 분함을 해소하는 분출구로 공안소설(公案小說)이라는 문학이 발달했다 합니다. 공안소설은 보통 네 가지로 유형을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농민이 직접 봉기를 하거나 도적의 무리들에게 자신들의 바람을 투영하는 방법, 둘째는 초월적 힘에 기대거나 사필귀정 사상을 믿는 것, 셋째는 대신 칼을 뽑아주는 협객을 기다리는 것, 넷째는 법을 엄히 집행하여 정의를 세워주는 청관(淸官)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앞서 세 가지는 현실 도피성이 있거나 기존 질서를 흩뜨리는 성격이 있음에 반해, 청렴결백한 관리의 활약은 기존 질서와 어느 정도 부합하여, 모두에게 부담이 없어 유행했다 합니다.

중국 송나라 시대 인물인 포증(包拯), 곧 판관 포청천의 이름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의 일화가 현재까지 알려진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판관 포청천이 정말로 남의 집 소 혀를 잘라간 이를 현명하게 잡을 수 있었는지, 어사 박문수가 실제로 지혜로운 왕비감을 만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다만 포청천의 위 일화는 송사(宋史)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판관 포청천과 어사 박문수로 대변되는 청관에게 사람들의 바람이 의탁되었다는 것입니다.

포청천은 제한적인 사료에 의하면 ‘성격이 강직하고..악을 증오했지만 충실과 너그러움을 펼치기에 노력했으며...평상시 사사로운 서신이 없었으니 옛 친구와 친척들도 왕래가 끊겼다.’는 평이 있습니다. 당대에도 ‘은밀히 청탁할 수 없는 곳에는 염라 포증이 있기 때문(關節不到, 有閻羅包拯)’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엄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포청천 이야기에서 그는 정의를 집행함에 있어 매우 엄격하며 때로는 냉정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박문수는 실록에 의하면 ‘나랏일에 대해서는 마음을 다하여 해이하지 아니하다.’라는 평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문수에 대해서는 주목할 만한 평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임금과 신하가 모여 서로 논의하던 자리에서 때때로 익살을 부리는 일을 하였다(골계, 滑稽).’ 포청천과 달리 박문수 이야기에서 여유와 해학이 느껴지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박문수는 일화에서 실수나 오판을 하기도 하고 이를 뉘우치며 바로잡기도 하고, 자신이 혼인시킨 부부를 나중에 찾아보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는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같은 성격의 공안소설임에도 그 풍(風)이 다름이 사뭇 흥미롭습니다.

포청천의 판관 이야기는 송나라를 거쳐 원, 명, 청 시대를 거치며 그 내용이 점점 다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포청천의 일생에 관하여 삼협오의(三俠五義), 칠협오의(三俠五義)로 엮여 민간에 널리 읽히게 되었습니다. 박문수의 어사 이야기는 청구야담 등 야담집에 모두 17편이 수록되었고, 설화집에는 약 300편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현대에도 이들의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재탄생합니다. 또 다른 소설로, 드라마로 몇백 년 동안 이어질 정도로 생명력이 강합니다.

후세 사람으로서 이런 여러 일화를 보면서 이들 청관의 활약을 보며 감탄도 하지만, 한편으로 포청천과 박문수를 옛이야기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현재에 감사하게 됩니다. 법치주의가 확립되어 사회의 질서와 체계가 안정된다는 것의 가치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큼을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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