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30) / 편견을 버릴 때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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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30) / 편견을 버릴 때 보이는 것들
  • 정명재
  • 승인 2021.03.16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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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재 정명재닷컴
(정명재 공무원 수험전략 연구소, 공무원시험 합격 9관왕 강사)

지난 토요일, 산업안전보건지도사 1차 시험을 보고 왔다. 시험을 보는 계절은 제각각인데 이렇듯 화창한 봄날의 기분은 상쾌하다. 여름에 치러지는 시험은 무더위와의 전쟁이다. 아침 일찍, 고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고 이미 땀으로 얼룩진 얼굴을 닦아야 할 만큼 지친다. 봄은 시험을 보러 가기에도 좋은 시절이다. 시험이 끝나면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지는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나뭇가지 물든 하얀 꽃들도 가까이 다가온다. 시험을 준비한다는 명분 아래 모든 것들과 잠시 담을 쌓게 지낸 것이다.
 

자격증 시험은 당일 2시가 지나면 당락을 알 수 있다. 정답이 바로 발표되니 자격증 커트라인 점수만 넘었다면 합격인 셈이다. 60점의 점수를 놓고, 하나 둘 맞은 개수를 세며 천당과 지옥을 잠시 맛본다. 현서는 시험 전날, 한숨도 잠을 잘 시간이 없었다. 병원에서 일을 하는 그는 야간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을 꺼내 들고 밤을 새웠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지병으로 앓아 누워 계신 부모님을 모시는 그는, 학업도 포기하고 일찍부터 생활전선으로 나서야 했다. 환절기가 되면 병원 문턱이 지척인 듯 일터에서 돌아와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을 오가며 간호를 해야 했다. 어려움이 나아지는 일은 꿈도 꾸지 않지만 현상유지만 해도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꿈 하나를 건넨 것이 산업안전보건지도사 시험이었다.

같은 고사장에서 현서와 시험을 치렀다. 조금 일찍 시험을 마친 나는 정문에서 그를 기다렸다. 피곤함이 역력한 그를 보자마자 애달픈 마음은 잠시, 시험지를 맞춰가며 합격여부를 타진했다. 하나 내지는 둘 정도로 합격여부가 갈릴 듯 했다. 우리는 동묘 근처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동묘는 조선후기 촉나라 관우의 사당을 모신 장소이다. 역사적 유적지로 찾은 장소는 아니고 동묘재래시장 근처에 음식점이 많아 찾은 것이다. 맛난 점심을 먹으며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 봄날의 시장을 구경했다. 봄이 된 오후는 여름처럼 더웠다. 외출복이 없다 하여 함께 시장에서 옷 두 벌도 구입했다. 만원 한 장이면 옷 한 벌도 살 수 있을 만큼 저렴하긴 했다. 그리고 2시가 되었고 그는 편의점 옆 벤치에 앉아 점수를 확인했다. 나는 잠시 자리를 피해 그의 시간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긴 한숨과 함께 떨군 고개를 볼 수밖에 없었다.

시험을 바라보는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스스로 많은 고민을 하였다. 시험이란, 넘어야 할 큰 산으로 생각해 보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시험을 시작하는 순간이 중요하다.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준비 없이 마주하는 중간 중간의 시련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예기치 못한 난관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대략의 시간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 다음에는 공부하는 과정이다. 공부를 방해하는 요소를 찾아 그 위험성을 줄여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욕심보다는 어느 하나를 버려야 할 때가 중요하다. 가정에도 충실하고, 주변에도 좋은 평판을 얻으면서 온전한 공부 시간을 내기는 참 힘들다. 더군다나 공부를 하면서 일을 병행하거나, 집안에 우환이 있는 경우에는 시간을 온전히 내기가 힘들다. 시험이 임박하면 그동안의 공부량이 모아진다. 본인이 어느 정도의 높이에 올랐는지를 알게 되는 시기인데 시험을 며칠 앞두면 자신이 봐야 할 공부분량을 알게 되어 저절로 걸음이 빨라지게 된다. 잠시 후회도 해 보지만 남은 며칠의 시간을 황금처럼 여기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친 후, 누구나 시험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이다.

현서에게 처음 자격증 시험 이야기를 할 때가 생각난다. 생소한 자격증이기에 여러 설명을 붙여 가며 설득을 했다. 앞으로의 전망이며 시험과목 등을 소개했고 내가 곁에서 돕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도 흔쾌히 도전해 보겠노라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을 흘렀고 그와 시험장에서 마주한 것이다. 못내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서로의 눈빛만 물끄러미 바라본다. 조금 더 내가 신경 쓰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조금 더 챙기지 못한 나를 원망했다. 사실, 산업안전지도사 시험을 준비하며 특별한 애착을 가진 이유가 있었다. 나를 아는 수험생 몇 명이 합격을 오랫동안 하지 못한 탓에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는 걸 알았다. 상균이와 현서는 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합격의 감동을 알지 못했다. 늘 떨어지고 며칠을 앓아 눕는 그들에게 알기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책을 선사하고 싶었고, 강의를 통해 공부이치를 알려주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며, 그들에게 들려준 나의 약속이니 강사의 이름을 걸며 이루고 싶었다. 상균이는 합격을 했고, 현서는 불합격을 하였다.

주말마다 나와 공부를 함께 했던 수험생들도 시험이 끝나고 나를 찾아오셨다.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으신 형님들, 나는 그들에게 교실에서나 선생이지 사회에서는 그들이 나의 스승님이다. 시험이 끝나 흥분되고 긴장된 순간을 함께 하였을 그분들을 부랴부랴 뵈러 신림동으로 왔다. 절반의 합격이 날 기다렸다. 모두 한결같은 성실함과 열정으로 만났던 그분들이건만 누군가는 합격점이 나왔고 몇 분은 한두 문제 차이로 불합격을 하였다. 속상함도 잠시, 실망하고 안타까워하는 그분들의 표정에는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수험생의 비애가 묻어 있었다. 알았지만 잊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의 힘든 현실과 어려운 처지에만 몰입하여 잠시라도 스스로에게 투정을 부린 나에게 화가 났다. 그들에게 조금 더 신경 써야 했는데, 쉬운 문제이기에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시험을 여러 번 보아온 나의 노하우를 조금 더 전수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주말의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나는 무명의 강사이고, 특이한 이력의 강사일 뿐 스스로에게 영향력을 부여해 본 적은 없다. 단지 소수의 수험생들만이 나를 알고, 나를 알아봐 주고, 나를 찾는다는 것은 알지만 가까이서 그들의 불합격을 함께 하진 못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들과 함께 불합격을 확인한 순간,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수험생을 위한 교재 작업을 하는 것은 쉽다. 그렇지만 수험생을 위한 강의를 하는 것은 조금 어렵다. 교재작업을 하며 누군가에게 설명할 것을 예상하고 지식을 확인하는 작업이 강의연습 시간이다. 어느 날은 계산문제 하나를 두고 서너 시간을 썼고,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이틀을 들여다보았다. 강사는 그런 시간을 쓰면서 이해를 했으니 문제를 암기할 정도가 된다. 하지만 수험생은 결론만 듣는 격이니 쉽게 정답을 도출해 낸다. 강사는 힘겹고 고통스럽게 공부하지만, 수험생은 요약된 지식과 결론으로 쉽게 공부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었다. ‘쉽게 온 것은 쉽게 사라지는 법이다.’ 내가 쉽게 설명한다고 하여 그들이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시험이 끝나고 맞는 여유보다는 앞으로 그들에게 들려줄 희망을 찾아야 했다. 실패가 쓰리고 아픈 것으로 끝나지 않고 ‘위대한 실패’로 거듭나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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