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변호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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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변호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 최용성
  • 승인 2021.03.0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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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법률가는 세상을 이롭게 만들기 위하여 무엇인가 적극적인 일을 하는 직군이 아니다. 분쟁이나 범죄와 같이 부정적인 일이 터질 때 비로소 법률가의 세상이 온다. 그렇다보니 생산하는 직업이 아니라 타인의 곤경에 기생하는 직업이라는 신랄한 평가도 가능하다. 누군가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어야만 존재이유를 갖기 때문이다. 특히 분쟁이 있어야 먹고사는 변호사의 경우가 더 그렇다. 변호사는 자신에게 돈을 준 한쪽만을 편들기 때문에 반대쪽으로부터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심지어 자신의 의뢰인으로부터 욕을 먹고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건의 최종 결과 때문에, 혹은 돈을 너무 많이 받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심판인 법관은 사정이 좀 더 좋지만, 모두에게 존경받기는 역시 어렵다. 아무리 공정하게 사안을 심판한다고 해도 눈물을 흘리는 쪽이 존재하니 말이다. 더욱이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법관이 선고한 판결의 사법적 정의가 반드시 진정한 정의라는 보장도 당연히 없다. 패소한 쪽으로부터 원망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법률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대체로 나쁜 편이다. 좋은 법률가는 나쁜 이웃이라거나, 천국과 지옥 사이에 분쟁이 생기면 세상의 모든 변호사를 데리고 있는 지옥이 무조건 이긴다는 유머까지 서양에서도 법률가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법률가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책이나 글도 많다. 그 가운데서 가장 잔인한 제목을 뽑으라면 단연코 프레드 로델이 1936년에 내놓은 <저주받으리라, 법률가여>가 1등이다. 우리나라도 더하면 더하지 모자라지 않다. 특히 변호사의 경우에는, ‘전관예우’의 폐해로 인하여 돈만 많이 벌면 유능한 변호사라는 편견이 널리 퍼져, “허가받은 도둑놈”에서 “변호사를 산다”까지 신랄한 표현이 난무한다.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직업이 되었다.

분쟁이나 범죄, 법률을 만든 것이 법률가도 아니고,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은 어차피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비난을 받으면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그래서 법률가들 스스로 자신들을 사회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데 의사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결코 만만치 않다. 의사가 “나는 모든 변호사가 도둑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이 사람을 천사로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라고 하자, “맞아. 우리는 그 일을 너희들 의사가 맡도록 남겨놓았지”라고 변호사가 답하였다는 유머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최종고 엮음, 법과 유모어, 교육과학사, 129면의 실린 원문을 바꿔 표현하였다. 혹시 천사를 ‘좋은 사람’으로만 이해할 독자를 위하여 덧붙이자면, 사람을 천사로 만든다는 것은 천국으로 보낸다는 뜻도 되니 결국 변호사와 의사를 싸잡아 신랄히 비난하는 유머인 셈).

그래도 우리 변호사법이 그리는 변호사 상(像)은 참으로 아름답다. 변호사는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사명에 따라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고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하여야 하며,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그 직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하여 변호사 직의 공공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엄청난 공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는 스스로 생계를 꾸려야 하니 돈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변호사는 공익과 함께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양면적 존재여서 법관이나 검사에 비하여 올바른 변호사의 삶을 살아가기는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어떤 기업이 대규모 산업재해의 원인을 감추고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려고 변호사인 당신을 찾아왔다고 생각해보자. 어떻게 할 것인가? 어차피 누군가는 그들을 위하여 변론을 해야 하니 그냥 일을 맡겠는가, 아니면 양심을 내세워 거부할 것인가? 만약 무엇이든 돈 되는 일이라면 다 맡겠다고 한다면, 변호사법조차 못 지킬 것이면서 왜 굳이 변호사가 되려고 하였을까? 내 생각은 있지만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무한 경쟁사회에서 개인의 생존이 갖는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변호사의 이중적 지위에서 오는 갈등과 긴장 속에서도 인권옹호와 정의실현을 통한 공공성 추구라는 끈을 놓지 않으며 균형을 찾아가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변호사 직의 정체성이고, 변호사가 떠안아야 할 숙명이라고.

“지식과 양심이 법률가를 만든다”거나 “양심의 가책을 받는 법률가만이 좋은 법률가이다”라는 라드브루흐의 말은 여전히 진리이지만, 무한경쟁 사회에서 좋은 변호사가 되기 얼마나 어려운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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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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