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변화에 대응하는 법률가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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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변화에 대응하는 법률가의 자세
  • 손호영
  • 승인 2021.02.2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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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가 신탁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여도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결(대법원 2016도18761 전합 판결)이 새로이 나왔습니다. 명의수탁자가 제3자와 한 처분행위가 위 법 제4조 제3항에 따라 유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거래 상대방인 제3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명의신탁약정의 무효에 대한 예외를 설정한 취지일 뿐 명의신탁자와 명의수탁자 사이에 위 처분행위를 유효하게 만드는 어떠한 위탁관계가 존재함을 전제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따라서 말소등기의무의 존재나 명의수탁자에 의한 유효한 처분가능성을 들어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종래(대법원 99도5227 판결, 대법원 99도3170 판결 등)와 달리 판례의 태도가 변경됨에 따라, [대신 정리해주는 5개년 형사판례공보 요약정리]에서 정리했던 [명의신탁과 횡령죄] 부분(103-104면, [정리])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양자간 명의신탁에서, ‘명의수탁자의 부동산 처분: 명의신탁자에 대한 횡령죄○’라고 했는데, 이를 ‘명의수탁자의 부동산 처분: 명의신탁자에 대한 횡령죄X(명의수탁자는 보관자X므로)’라고 수정합니다. 이로써 양자간 명의신탁(이 판결), 중간생략등기형 명의신탁(대법원 2014도6992 전합 판결), 계약명의신탁(악의: 대법원 2010도10515 판결, 선의: 대법원 2014도6740 판결) 모두, 명의수탁자의 부동산 처분은 횡령죄로 처벌하지 않는 것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같은 대상(법)에 대한 해석이 변경되는 것은 드물지만 놀라운 일만은 아닙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변한다는 사실 뿐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하고, 법에 대한 판례의 태도도 함께 달라지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이미 법원은 시대의 변화를 읽어낸 여러 기념비적 판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종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로만 제한하고 여성에게는 종원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종래 관습(은)...변화된 우리의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만으로 제한하는 종래의 관습법은 이제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대법원 2002다1178 전합 판결).’고 선언했던 판결이 대표적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 판결에서 법원이 고려했던 사항들입니다. 법원은, ‘1970년대 이래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산업화·도시화의 과정’, ‘개인주의의 발달과 함께 조상숭배관념(의) 약화’, ‘교통·통신의 발달, 경제적 생활여건의 개선과 더불어 자아실현 및 자기존재확인 욕구의 증대 등으로 종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현상’, ‘유엔의 여성차별철폐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1995. 12. 30. 법률 제5136호로 제정되어 1996. 7. 1.부터 시행된 여성발전기본법’, ‘족보의 편찬에 있어서 과거에는 아들만을 기재하는 경우가 보통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딸을 아들과 함께 기재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고, 전통적인 유교 사상에 입각한 가부장적 남계혈족 중심의 종중 운영과는 달리 성년 여성에게도 종원의 지위를 부여하는 종중이 상당수 등장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종원인 여성이 종중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종중들도 출현하는 현상들’을 깊이 있게 통찰한 연후에야, 관습이라 불린 종래 질서를 부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법원은 사회의 변화양상을 구조적·이념적으로 다각도로 살펴보고, 종중-국내 사회-국제 사회까지 차원을 달리하여 당위와 존재를 함께 검토한 뒤에야 비로소, 시대의 요구에 따른 법원의 역할을 확정 지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판결은 법률가의 인식과 고민의 범위가 법과 법리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법률가는 인간에 공감하고, 사회를 이해하여야 하고 이를 토대로 법을 해석하거나 집행할 필요가 있음을 동시에 알려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법률가는 법학에 정통하여야 함은 물론이고 인문학에도 밝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규범이든, 제도이든 모두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질서로, 우리 삶과 문화의 진액(津液)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거꾸로 이 규범과 제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삶과 문화를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법률가는 변화되는 사회를 담아낼 수 있는, 유연한 법 해석과 집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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