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8-법의 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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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8-법의 렌즈
  • 손호영
  • 승인 2021.02.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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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 판사
손호영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 판사

세상에서 소중하게 여겨지는 가치는 여럿 있습니다. 사랑은 그중에서도 대표 격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은 마음의 즐거운 특권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를 초월하는 것이다. 사랑만 있다면 행복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여러 격언은 그 출처를 명확히 특정하지 못한다 해도, 대체로 공감할 수 있고 수긍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는 세상에 오직 네 가지 이야기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 권력 투쟁, 여행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산술적으로 넷 중 절반을 차지하는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사랑을 말하고 듣기를 바라며, 종요롭게 여긴다는 방증이겠습니다.

문학이 사랑에 특히 주목하는 것과 달리 법은 사랑 자체에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듯 보입니다. 모두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대 99학번 동기들 중 간담췌외과 조교수와 신경외과 부교수는 학창 시절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습니다. 한 걸음을 더 나서지 못해 이어지지 않았는데, 조교수는 어느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친구 부교수를 향해 호감을 키워나갔고, 결국 어색해질지 모를 걱정과 후회할지 모를 두려움 사이에서 어색함을 선택하는 용기를 냅니다. 부교수는 당황하며 미처 답을 하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듣기만 해도 어찌 될지 궁금한 이들의 관계 속에, 사랑의 여러 모습이라는 주제에 딱딱한 법이 들어갈 여지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드라마를 보면서, 법률가가 법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은 등장인물이 의사로서 설명의무는 다하고 있는지, 의료행위의 과실은 어떻게 인정하는 것인지 등과 같은 드라마 내용과는 큰 관계없는 곁다리들은 아니었을까요.

그러나 법이 사랑을 모른다는 것은 오해입니다. 놀랍게도 판례는 가정(家庭)을 말하면서, 사랑을 명시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전혀 다른 성장배경을 가진 남녀가 서로 만나 혼인하고 자녀를 낳아 양육하면서 가정을 이루는 토대는 부부 사이의 사랑과 신뢰이다(2012도14788, 2012전도252 전원합의체 판결).’ 얼핏 감동스러울 선언은, 위 문장이 어느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를 파악할 때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 법률상 처가 포함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법원은 부부 사이의 사랑과 신뢰를 정면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위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답합니다. 내밀한 부부 관계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자제됨이 바람직하여 그동안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유지되는 한 아내에 대하여 강제적인 성관계를 한 남편을 강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해석해왔지만, 이제는 헌법이 보장하는 혼인과 가족생활의 내용, 가정에서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 형법의 체계와 그 개정 경과, 강간죄의 보호법익과 부부의 동거의무의 내용 등에 비추어,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에는 법률상 처가 포함되고, 혼인관계가 파탄된 경우뿐만 아니라 혼인관계가 실질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경우에도 남편이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여 아내를 간음한 경우에는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해석함이 옳다.

법의 렌즈는 이런 식입니다. 태양에 비추어지는 밝은 모습 대신, 드리우는 그림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재구성합니다. 사랑 그 자체를 말하며, 사랑이 가져다주는 애틋함과 절절함을 이야기하기보다, 사랑이 손상될 때 입는 상처를 보며, 사랑이 가지는 가치를 되새김질합니다. 문학이든, 철학이든, 예술이든 우리는 필요하고 마땅한 렌즈를 통해 그때그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에, 법의 렌즈가 작동하는 방식을 탓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법의 렌즈가 동원될 때 드러나는 사랑의 진한 원형을 새삼스럽게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은 한국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는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신은 왜 제가 한국말을 공부하러 못 가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대화하고 싶어요. 저는 한국에 와서 당신과 저의 따뜻하고 행복한 삶, 행복한 대화, 삶 속에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에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희망해 왔지만,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화를 견딜 수 없어 하고, 그럴 때마다 이혼을 말하고, 당신처럼 행동하면 어느 누가 서로 편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요. 당신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이고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고 있어요. 당신은 저와 결혼했지만, 저는 당신이 좋으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을 많은 여자들 중에 함께 서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19세의 베트남 여인이 국제결혼정보업체를 통해 한국에 들어와 남자와 결혼한 뒤, 언어적 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결혼생활이 여의치 않아 베트남으로 돌아가기로 하면서 남긴 편지입니다. 법원은 남자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면서 편지를 인용합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혼인은 사랑의 결실로 소중히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가치를 온전히 지켜낼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19세 공소외인의 편지는 오히려 더 어른스럽고 그래서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이 사건이 피고인에 대한 징벌만으로 끝나서는 아니되리라는 소망을 해 보는 것도 이러한 자기반성적 이유 때문이다(대전고법 2008. 1. 23. 선고 2007노425 판결).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상처 입을 때 나서는 것처럼 보이는 법은 역설적으로 그 가치가 상처 입지 않길 바라고, 더욱 소중히 여기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판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가치는 우리가 법을 만들고 지키는 이유를, 법을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줍니다.

손호영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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