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26) /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이해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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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수험생을 위한 칼럼(126) /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이해할 것
  • 정명재
  • 승인 2021.02.09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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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재 정명재닷컴
(정명재 공무원 수험전략 연구소, 공무원시험 합격 9관왕 강사)

자기 효능감(self efficacy)이란 특정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나 기대감을 뜻하는 말로, 1977년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알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창안한 개념이다. 자기효능감은 특정 성취상황에서 자신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기대 또는 신념으로, 수행수준을 결정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동기요인이다. 자신에 대한 전반적인 지각을 의미하는 자기개념이나 자아존중감보다는 구체적 상황이나 과제에 국한된 능력에 대한 신념이다. 특정 과제에 대한 이 같은 자신의 수행예측은 일반적인 수행상황에서의 예측보다 훨씬 정확할 수 있기 때문에 성취상황에서의 수행수준에 대한 강력한 예측변인이 되기도 한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주말 특강을 진행하다 심리학 분야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기효능감에 대한 강의를 할 일이 있었다. 수험생으로서 알아야 지식이기 이전에 반두라 교수가 주장한 자기효능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살아가면서 자주 접하는 곤란과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자기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다. 원하는 직업을 얻지 못하거나 이루고자 하는 시험에서 불합격을 경험하다 보면 점점 위축되어 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세상은 평화롭게 보이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유독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지에 관하여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며 무능력과 환경의 탓을 하며 원망의 마음을 쌓기도 한다. 자신에 대한 신념이 희미해져 가는 것이다.

영길이는 이번 주에 병원 밖을 나섰다. 수술은 잘 되었고 씩씩하게 그 시간을 견뎌 병원 복도를 목발에 의지해 스스로의 힘을 다해 한발 한발 걸어 우리에게로 왔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라는 신호이고 그의 길을 다시 걸어가라는 인생의 명령이기도 하다.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삶을 영위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공감하듯 참 쉽지는 않다. 명절이 되면 자식 노릇을 해야 하고, 직장에서는 상사로서 부하로서의 역할을 잘 해야 하며, 가정에서는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몫이 주어진다. 어디 이뿐만 인가? 계절에 맞게 옷을 갖춰 입어야 하며, 자기관리로 머리가 길면 단정히 해야 하고, 나이에 걸맞은 지식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공부를 해야 하며 밥벌이를 할 직장이나 직업을 가지고 있어 경제력 또한 갖추어야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가끔 누군가는 낙오될 때도 있고 피로한 몸과 마음으로 세상을 피해 숨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언제든지 그리고 누구나, 내가 될 수도 그리고 그대가 될 수도 있다.

영길이의 입원과 퇴원을 돕다 보니 병원에 머무를 일이 있었다. 일상에서 조금 떨어진 병원이라는 공간은 잠시 멈춤의 시간이다. 바쁜 의료진과는 달리, 베드에 누운 환자들의 몸은 잠시 일상을 떠나 휴식을 맞는다. 강제휴식을 맞이한 병원에서의 시간은 생각의 범위를 더하고 삶을 돌아보게 하곤 한다. 우리의 생(生)은 항상성을 추구하지만 변수 또한 많다. 불의의 사고, 질병, 통증 등으로 병원은 그 존재 의미를 갖지만 마음의 병을 만나면 드러나지도, 보이지도 않는 경우가 많아 그대로 방치하기 일쑤이다.

조선시대에는 장애인의 사회 진출에 차별이 거의 없었다. 그 시대의 장애인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세종 때의 허조는 ‘수응재상(여윈 매)’이라고 불렸다. 어려서부터 체격이 왜소하고 어깨와 등이 구부러진 꼽추, 즉 척추장애인이었다. 훗날 조광조가 조선의 명재상으로 황희와 허조를 꼽았는데 허조는 예학의 대가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서 「국조오례의」의 저자이기도 하다. 선조에서 인조에 걸친 양란의 위기에서 영의정을 다섯 번이나 지낸 이원익은 키가 아주 작은 왜소증 장애가 있었고,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소론의 영수 윤지완은 ‘일각정승’이라 불렸는데 풍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지체장애인이었다. 영·정조 때의 명재상 채제공도 왼쪽 눈이 사시인 데다 보이지 않았고, 인조 때의 팔도도원수 장만 역시 한쪽 눈에 안대를 한 특이한 초상화를 남긴 시각장애인이었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을 세운 장만의 초상화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영길이가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은 영의정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중인 출신들이 배우는 중국어와 백성들 틈에서 돗자리 짜는 기술을 익혔던 두 칸 초가집에서 살았던 이원익 선생이라 한다. 이원익의 호는 오리(梧里)로 ‘오리 대감’으로 불렸는데 충무공 이순신이 억울하게 옥살이 할 때 그를 대변하여 조선을 전란에서 구한 탁월함으로도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의 신체적인 불리함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능력을 찾아 삶의 풍요로움을 이룬 이원익 선생의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반두라의 자기 효능감(self efficacy)은 특정 분야에서 자신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찾는 노력과 신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작은 성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모든 것을 다 갖추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이룬 성공에서 그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어제의 실패를 거울삼아 내일의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는 현재의 믿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오늘도 칠십의 수험생은 빠지지 않고 교실로 나와 특강에 참여하며 생의 노력을 다하고 집으로 향했다. 조금은 더딘 인생의 도전 앞에서 얕은 평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작가이다.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바라는 것이 많으면, 두려움이 생기고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유를 잃게 된다는 것으로 직역할 수 있지만 이 보다 더 심오한 의미를 던지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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