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99)-차기 대통령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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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99)-차기 대통령의 의무
  • 강신업
  • 승인 2021.02.0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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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대한민국 헌정은 오래전에 고장 났다. 87년 체재는 처음부터 기형이었다. 당시 각 정치세력의 타협에 의한 임시적이고 불완전한 체제였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 누구도 비정상적 권력집중 구조인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5년마다 대통령이 아닌 ‘왕’을 뽑게 되었다. 한 번 뽑힌 대통령은 그가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제어하거나 통제할 방법이 없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마저 제왕적 대통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 때문에 국민은 4년마다 국민의 대표가 아닌 대통령의 머슴을 뽑아 대통령에게 상납한다. 사법부가 대통령 권력을 견제한다는 고전적 권력분립은 대한민국에서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임명권을 갖는 대법원장이나 헌법재판소장 역시 대통령과 동색이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직간접으로 인사권을 갖는 7천에서 1만 개의 자리는 모두 소위 대통령의 사람들로 채워지는 까닭에 이들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에게만 충성한다. 이렇게 모든 권력은 청와대로 집중되고 청와대에서 나온다. 청와대 일개 행정관이 육군참모총장을 오라 가라 하고 청와대 비서관 말 한마디에 행정 각부의 장관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그래서 예사다.

오늘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이 조선 시대 왕보다 큰 권력을 가진다. 그리고 비극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87년 체제 후 잇달아 생긴 전임 대통령 6명 전원의 비극은 상당 부분 청와대로 권력이 집중된 탓이다. 대한민국 헌정 체제가 정상 작동되지 않는 탓이다. 대의제는 형식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체제는 비판을 수용하는 수용탄력성과 체제의 약점을 보완하는 수정탄력성을 잃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왕’을 뽑다 보니 정당들은 늘 사생결단이고 대통령을 차지하기 위해 국민을 편 가르고 선동하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정당들의 평균 수명이 겨우 44개월밖에 안 된다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 정당들이 국민과 동떨어져 있다는 방증이다.

이제 더는 박제가 된 헌법을 장식으로만 둘 수 없다. 즉시 전면 개정에 나서야 한다. 87년 체제 5년 단임제하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5년 단임 대통령에게 책임정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정치 이념과 정강으로 모인 결사체가 아니라 이합집산 선거용 집합체에 불과하고 대통령 역시 이런 집단의 수뇌일 뿐인데 이런 대통령에게 국민을 통합하는 역할이나 국가를 선진화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도 애당초 기대난망이다.

대한민국 정치개혁은 이원집정부제로의 권력구조 개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로서 외교, 국방 등 외치만 맡고 내치는 다수당의 대표가 수상으로 취임해서 담당하는 방식이다. 또 정치개혁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기성 정당의 관행과 부조리를 혁신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기성 정당은 이미 오래전에 패거리 붕당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정당을 개혁하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정치 선진화는 있을 수 없다. 국민주권주의 원리와 사회계약 이론에 근거해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참된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정당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배타적 민족주의,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그리고 혐오와 분노를 일부러 조장하는 가짜 민주주의를 벗어던지고 자유민주 체제의 개혁과 정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정당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

다음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줄여서라도 헌법을 개정하고 사심 없이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고장난 정치체제를 고쳐 새로운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미래 시대의 선구자가 국정을 맡아야 한다. 다음 대통령은 기존 정치 문법에서 자유로운 사람, 기존의 정치권과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 기존 정치권에 빚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다음 대통령의 사명은 그 무엇도 아닌 헌법 개정이다. 정치권의 이해관계에서 과감히 탈피해 권력구조를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충실한 이원집정부제로 바꾸는 것이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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