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조정의 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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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7-조정의 유익
  • 손호영
  • 승인 2021.02.0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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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 판사
손호영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 판사

야산에서 포수가 여우를 진득이 몰아 겨우 잡으려 하던 때입니다. 씨근벌떡 쫓기던 여우가 문득 눈에 뜨인 초가집을 향해 들어가 몸을 피하려던 순간, 집 지키던 개가 별안간 나타나 여우를 물어버립니다. 포수로서는 다잡은 여우를 개가 낚아채니, 말 그대로 죽 쑤어 개 준 형편입니다. 엉겁결에 계 탄 집주인은 어김없이 여우의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내 개가 물어 잡았으니 당연히 내 것이 아닌가. 이만 물러가게. 포수는 어이가 없고 난처합니다. 내가 여지껏 몰았으니 여우는 당연히 내 소유가 아닌가. 얼토당토않은 말 말고 빨리 건네주게.

마침 암행어사 박문수가 옥신각신하는 포수와 집주인의 다툼을 바라봅니다. 박문수로서는 어사 된 입장에서 나서기는 해야 함에도, 해결책이 마뜩잖습니다. 고민하던 차에 옆에서 재미나게 구경하던 어린 초동에게 넌지시 물어봅니다. 얘야,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 초동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합니다. 간단합니다. 간단하다고? 어리둥절한 박문수에게 초동이 이어 말합니다. 개가 여우를 잡을 때는 무엇 때문에 잡았겠습니까, 가죽을 탐냈겠습니까? 고기를 탐냈겠습니까? 개는 분명히 고기를 탐냈을 것입니다. 포수가 여우를 몰 때는 무엇을 원했겠습니까? 가죽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쉽습니다. 고기는 개를 주고 가죽은 포수를 주십시오.

칡은 오른쪽으로, 등나무는 왼쪽으로 스스로를 감아올린다고 합니다. 둘이 만나면 하나는 오른쪽으로, 하나는 왼쪽으로 서로를 감아대니, 단단히 꼬여 떼어내기가 자못 어렵습니다. 우리가 서로 충돌하며 부딪치는 모습을 일컫는 ‘갈등’은 바로 이러한 칡(葛, 갈)과 등나무(藤, 등)가 서로 얽히는 모습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나 풀어내기 어렵다 하여 그대로 둘 수만도 없는 것이 갈등입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마침표를 찍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법원은 갈등의 최종 도착지입니다. 문제를 일단락하기 위해서, 당사자들이 찾는 곳입니다. 법원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대표적으로 판결이 있습니다. 각자의 주장을 근거와 함께 살펴보고, 법의 관점에서 답을 찾는 방식입니다. 가장 강력하면서 선명한 해결책의 하나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법정까지 다다른 갈등은 그 역사가 길고 감정 또한 깊습니다. 요건사실의 틀은 당사자의 배경과 맥락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길고 긴 다툼 끝에 판결이 나왔는데, 새로운 분쟁이 다시금 시작되는 것은, 사건은 종결되었으되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조정이라는 형태의 해결 방법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고와 피고 자신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할 때, 그것을 전문가인 조정위원이 알아채고 큰 시야에서 서로의 입장을 조율해내는 것이 바로 조정입니다. 이를 통해 갈등을 원만하게 연착륙시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정은 가장 폭넓고 유연한 해결책의 하나입니다.

법원에서 조정위원으로 활약하셨던 변호사님의 경험담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성심껏 조정사건에 임했습니다. 덕분에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은 조정이 한참이던 때, 조정위원의 배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합니다. 아직 안 끝난 건가요? 조정위원은 피고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었고 피고가 대신 대답합니다. 지금 조정 중이어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번에는 피고의 배우자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전화를 바꾸어 잡은 조정위원이 대답합니다. 지금 조정 중이어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당사자와 조정위원이 서로의 시간을 양해하고 몰입하여 출구를 찾으려 했던 정성이 통했던지, 뒤엉킨 당사자 간 실타래가 풀렸고, 결국 분쟁은 해소되었다 합니다.

그가 조정위원으로 활약하면서 느낀 바를 정리한 말이 와닿습니다. 조정은 원고가 청구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도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고, 당사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항들에 대해서도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희한하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결국 당사자들이 원하는 바를 알 수 있고 그것을 해결해줄 수만 있다면 조정은 결국 성공한다. 결국 경청과 공감, 설득이다.

앞선 이야기에서 초동은 신선한 시각으로 포수와 집주인의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자 했습니다. 아마도 포수와 집주인도 초동의 해결책에 수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동의 지혜가 없었다 하더라도 박문수도 결국 같은 결론에 다다랐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문수였다면, 포수와 집주인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었을 것이고, 서로의 요구사항을 세심히 살피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법률가는 보통 법에 대한 전문가를 일컫는 것이겠지만 보다 엄밀히 말한다면 갈등 해결 전문가라고 할 것입니다. 적확한 법리, 치밀한 논증 등은 결국 수단입니다. 목적은 갈등을 풀어내고 분쟁을 해소하는 것. 그 방법은 반드시 판결만이 아니라 조정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조정은 경청, 공감, 설득이 중요하다는 것. 참으로 어렵지만, 반드시 갖추어야 할 법률가의 자질이겠습니다.

손호영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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