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슬기로운 로스쿨 인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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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슬기로운 로스쿨 인턴생활
  • 조순열
  • 승인 2021.01.29 10: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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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열 법무법인 문무 대표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
조순열
법무법인 문무 대표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

사법시험이 있던 시절, 사법연수원에 입소하면 1년 차에 집체교육을 실시하고 2년 차에 실무교육이 이어진다. 실무교육은 법원, 검찰, 변호사로 나뉘어 각 2개월씩 ‘시보’라는 이름으로 실제 판사, 검사, 변호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이 폐지되고 로스쿨을 통해 법조인이 배출되는 현재는 예전의 ‘시보’를 경험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학별로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재학 중 ‘리걸클리닉’이나 ‘인턴십’이라는 커리큘럼이 있어 법원, 검찰, 변호사로서 그 실무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로스쿨의 경우 인턴십이 필수과목에 해당하여 이를 이수하여야 졸업을 할 수 있다. 이론과 실무를 동시에 익혀야 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초능력을 발휘하여야 한다. 놀랍게도 로스쿨에 입학한 공부의 달인들은 이를 잘 소화해 낸다.

필자는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로스쿨에서 2주간의 변호사 실무교육 인턴십 과정 학생 2명을 모셨다.(처음에는 교육 위탁을 받았다고 생각했으나, 워낙 뛰어난 학생들이라 ‘모신다’는 표현으로 바꾸었다) 하루하루 공부에 전념하여야 할 후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슬기로운 로스쿨 인턴생활'을 할 수 있게 할까 고민이 앞섰다. 장고 끝에 비록 2주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법원, 검찰, 변호사의 역할을 모두 보여주되, 최대한 장점만을 부각시켜 주기로 했다.(인턴 학생들이 나중에 이 글을 보면 좋은 면만 보여줘서 속았다고 시비를 걸지 모르겠지만) 이 스승님의 깊은 뜻은 ‘공부에 대한 강력한 동기 부여’와 ‘진로 탐방’이라는 2가지 목표를 이루고자 그런 것이다… 라고 변명을 할 생각이다. 나도 변호사인데 제 살 길 안 만들어 놨겠나.

변호사 실무는 하루 종일 나와 함께 움직이는 방법을 택했다. 아침에 출근하여 민사, 형사, 행정, 가사 소송기록을 보도록 했고, 점심은 소속 변호사님들과 같이 먹었다. 심지어는 찾아 온 의뢰인들과 식사를 하게 될 경우 동석하도록 했다. 변호사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식사는 어떻게 하며, 지인들이나 의뢰인들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상담할 때 참여하도록 했고, 법정을 나갈 때는 무조건 동행하여 방청석에서 방청을 하도록 했다. 재판장의 재판진행과 변론장면을 보여주었고, 민사법정과 형사법정에서 우호적인 증인신문과 적대적인 증인신문을 경험하게 하여 그 차이를 느껴보도록 했다.

필자가 법원 조정위원으로 조정을 할 때도 참관하도록 하여 원고와 피고의 소송대리인들이 어떻게 유리한 주장을 펼치는지 목도하도록 했다. 심지어는 구치소접견을 가는데 동행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구치소 정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접견 장면을 보여주지 못했다. 내가 공부만 시키는 못된 선배는 아니다. 식사 중 음주를 살짝 강요하기도 했다. 술잔은 부모님 이외에는 고개를 돌려서 마시지 않도록 조언을 했는데 이는 법조선배님으로부터 배운 주법이라 맞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돌려서 마시면 술을 몰래 버리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지만, 술 먹이기 전략일 수도 있고, 당당함을 가르쳐 주신 것 같기도 하여 그대로 전수하였다.

법원은 평소 존경하는 부장판사님께 신세를 졌다. 후배 교육을 빙자하여 판사실 방문을 요청 드렸더니 흔쾌히 받아 주셨다. 나도 처음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후배 덕분에 횡재를 한 것이다. 부장님께서는 수십 년 정리해 오신 주옥같은 인생철학을 단권화 해주셨다. 법관이 되신 동기, 법관이 하는 일, 판결 하나하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법관으로서의 자세 등 참으로 귀한 말씀을 해주셨다. 부장님의 경지가 너무 높아 자칫 법관은 넘사벽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작전 실패가 되는 것인데,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검찰은 신림동 고시촌에서 스터디를 같이 했던 부장검사께 인연을 내세워 신세를 졌다. 검사를 꿈꾸는 학생이 있었는데 부장검사님을 뵙고 확실히 자신의 갈 길을 정했다고 했다. 뼈를 갈아 수사기록을 만든다고 할 정도로 업무는 힘들지만,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인생을 한번 걸어 볼만 하다는 말씀이었다. 난 감히 엄두도 못 낼 분야구나 생각했는데 학생은 부장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진로를 검사로 정했다는 것이다. 헐! 어쨌든 내 목적 달성은 제대로 한 것이다.

끝으로, 학생들에게 인턴과정을 마친 소감문을 쓰도록 했다. 한 학생은 법조인으로서 ‘사명감’을 갖게 된 것이 가장 남는다고 했고, 한 학생은 공사대금청구 사건에서 사건이 복잡하고, 공격과 방어가 엄청났는데, 판결을 보니 ‘3년 단기소멸시효 도과’로 피고가 쉽게 승소한 것을 보고, 교과서에서 쉽게 보았던 이론을 놓쳐 실무에서 큰 낭패를 볼 수 있겠다는 법조인으로서 무게감을 느꼈다고 했다. 또 법원 판사, 검찰의 검사, 수사관, 경찰관들의 직업관, 인생관을 직접 들어볼 수 있어 좋았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평생직장으로 삼을 분야가 어디인지 감을 잡았고 어느 직역이든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는 긍정적인 평가였다. 이 정도면 학생들에게 슬기로운(빡센?) 로스쿨 인턴생활을 경험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예비법조인으로 고시촌에서, 학교에서, 독서실에서, 집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아직은 ‘시보’의 맛을 보여줄 따뜻한 선배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하루 빨리 업계로 진출하여 ‘슬기로운 로스쿨 인턴생활’을 경험하시기 바란다.

조순열 법무법인 문무 대표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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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민 2021-02-01 12:24:37
법조계에 존경할 수 있는 선배님들이 있어 후배들이 꿈을 가지고 호랑이로 커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인성과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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