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가짜 뉴스의 구조 :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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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가짜 뉴스의 구조 :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를 읽고
  • 신희섭
  • 승인 2021.01.2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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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장기화한 코로나 사태 속에서 얼마 전 대형서점을 찾았다. 책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책을 한 권 발견했다.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강렬한 책 제목에 우선 손이 갔다. ‘진실보다 강한 탈진실의 힘’이란 부제를 보니 가짜 뉴스에 관한 이야기인 듯했다. 저자인 제임스 볼(James Ball)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영국 저널리스트다. 원어로는 2017년에 출판된 책이지만, 한국에는 2020년에야 번역이 되었다. 시차가 있겠지만, 최근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짜 뉴스에 대한 영국 언론인의 입장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냉큼 구매했다.

내용 설명 이전에 한 가지를 확실히 해두고자 한다. 이 글은 서평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단지 이 책이 던진 화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개소리’인 가짜 뉴스가 퍼지고 있다. 언론매체들이 진실검증에 죽을힘을 다하지만, 개소리는 세상을 정복해가고 있다. 이처럼 결과가 참담해진 이유에 대해 제임스 볼의 설명은 이렇다. 첫째, 구조적인 차원에서 미디어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경제 조건이 나빠진 것이다. 그래서 미디어(TV 라디오와 신문이 대표)의 수입이 축소되었다. 특히 전통미디어의 타격이 크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종이 신문이나 공중파 방송국의 구독자가 줄어들었다. 그러자 광고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예산이 부족해진 것이다. 최종 결과. 돈이 드는 취재원확보가 어렵게 되었다. 또한, 전통매체도 온라인 뉴스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존폐위기 속에서 전통미디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았다. 바로 온라인 뉴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포탈에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인터넷판 뉴스들을 떠올려 보면 된다. 얼마나 많은 광고가 따라붙는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서 전통미디어는 과거와는 다르게 접근한다. 전통방식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구독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뜨내기 탐색자들이 최대한 마우스를 많이 클릭하게 하는 ‘도달률’이 중요하게 된 것이다.

집토끼 말고 산토끼를 잡겠다는 ‘진지전’에서 ‘기동전’으로의 노선변경 속에 진실검증이 중요했던 전통매체들이 가짜 뉴스나 폭로성 뉴스를 전략적으로 게재한다. 뜨내기들이 벌떼처럼 모여들면, 돈 되는 제휴광고가 따라붙는다. 이런 악순환의 결과로 세심하게 내용을 점검하던 ‘소수의 구독자’를 대신해 가짜 뉴스나 폭로성 뉴스를 필요로 하는 ‘다수의 당파적인 독자’가 주력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 구조 다음 ‘행위자들의 전략적 선택’을 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세 축의 행위자들(미디어, 민중주의 지도자, 독자)의 개별적 선택이 가짜 뉴스의 생산과 소비를 만든다.

첫 번째 행위자인 미디어 분야에서 ‘가짜 미디어’(존재하지 않는 출처 불명의 미디어)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와 뉴스를 전달하는 새로운 ‘뉴미디어(‘허핑턴포스트’나 ‘폴리티코’가 대표적인 미디어)와 전통적인 ‘레거시 미디어’들은 각자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이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거나 유통시킨다. 이런 조건에서 두 번째 행위자인 민중주의 지도자는 미디어의 속성을 활용하여 자신의 적을 공격하거나 특정 정책을 지지하게 만든다. 트럼프 대통령과 영국의 브렉시트 상황을 생각해보라. 마지막이자 세 번째 행위자인 독자 즉 일반 소비자는 이렇게 전달된 뉴스를 소비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장난으로 시작하든, 당파적 이익 때문이든, 경제적 수익을 위해서든, 미디어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짜 뉴스는 소셜미디어(SNS)가 가진 조건에 의해 빠르게 주변 지인들에게 퍼진다. 소셜미디어는 친분으로 구성된 사적인 조직을 이용하기 때문에 독자의 심리적 방어벽이 약화한다. 그러면 가짜 미디어-소셜미디어-독자 사이의 취약한 관계에 능통한 정치인은 가짜 뉴스를 정치적 의제로 만들고 공개화한다. 이제 가짜 뉴스는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

제임스 볼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소비자인 독자이다. 그가 보기에 독자들은 희생자가 아니다. 진짜 뉴스보다 가짜 뉴스를 더 많이 지인들에게 퍼 나르는 독자들은 게걸스러운 ‘대식가’거나 혹은 ‘공모자’인 것이다. 독자는 ‘필터 버블’이 작동하기에 자신이 필요한 것만을 취사 선택한다. 그리고 가깝다고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개소리’를 선물한다.

제임스 볼의 분석에는 아주 특별한 부분이 있지 않다. 다만 언론인으로서 그의 경험과 구체적인 사례들이 문제의식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한편 볼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어차피 정치란 선택의 문제라는 비판을 할 수 있다. 가짜 뉴스가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약산의 긍정적 기능도 있다고도 비판할 수 있다. 더 나가 볼의 주장 자체가 하나의 음모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볼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가짜 뉴스가 판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학자들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미디어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첫째, ‘미디어의 특징’을 분류하여 그 문제점을 포착하고자 한다. 전통미디어와 달리 뉴미디어가 가지는 이데올리기적 성향과 자료 수집의 문제나 의제 통제기능에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파벌적인 미디어와 다원적 미디어들이 유권자 ‘개인’ 차원과 유권자 ‘전체’차원에 대해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기도 한다. 미디어 간의 비교도 이루어지고 있다.

둘째, 분석의 눈높이를 확대하여 미디어 환경을 ‘민주주의 관점’에서 분석하기도 한다. 선진민주주의 국가나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떨어지면서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다원성 존중’과 ‘관용(tolerance)’과 ‘신뢰(trust)’라는 문화적 자산 역시 동반 하락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중심 제도인 의회, 정당에 대한 신뢰 약화로 연결되고, 사법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면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를 강화하기도 한다.

셋째, 유권자와 정부를 연결하는 ‘정당 차원’에서 문제를 보기도 한다. 정당 간 이념 거리의 확장은 정치적 경쟁을 극단화한다. 정당 간 경쟁의 극화는 정당 지지자들의 극화를 부추긴다. 중도층의 붕괴가 뒤따르면서 정치적 타협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선후 관계가 어찌 되었든 이런 현상이 가짜 뉴스와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이다.

세상일이 어느 하나만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없듯이 ‘개소리’가 세상을 정복하는 것 역시 다양한 이유에 기인한다. 그렇게 보면 구조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약화와 함께 미디어 환경의 경제적 조건 악화가 행위자 차원에서 ‘미디어-정치인-독자’의 전략적 선택을 가져온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주목할 부분은 당파성이 강해진 정당들이다. 원론적으로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통합을 꾀해야 하는 문제 해결자가 그럴 의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분석을 하고 나니 어디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 제임스 볼은 사실 확인을 하는 미디어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고, 미디어-정치인- 독자가 모두 여러 가지 노력을 하라고 제안한다. 그런데 민주주의와 경제라는 구조적 조건과 정당들의 전략적 계산을 고려하면 좀 더 회의적으로 된다. 묵인과 포기가 아니려면 과연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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