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97)-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은 원님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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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97)-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은 원님재판
  • 강신업
  • 승인 2021.01.2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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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은 원님재판이다.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어 투명경영을 하면 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며 이를 설치하도록 사실상 강제하고도, 막상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 아래 준법감시위원회 설치와 활동을 양형에서 배제한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진정성과 노력은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유형의 범죄 발생에 대한 방지책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며 양형 사유에서 배제한 것은 오히려 구체적이지 못하다.

사실 이재용 파기환송심 재판(이하, 이번 이재용 재판)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했다. 누구도 만족하게 하지 못한 재판일 뿐 아니라 논리의 정합성은 물론 재판 이념의 구현이라는 점에서도 수준 미달의 재판이다.

이번 이재용 재판은 사법의 한계를 넘어섰다. 재판은 일어난 일에 대한 사후적 판단일 뿐 사전적 예방행위나 현재적 집행 행위가 아니다. 다수의 횡포로부터 소수를 보호할 필요성, 도덕적 원리의 구현 및 사회정의 실현 등의 이유로 사법적극주의(judicial activism)가 용인된다 하더라도, 이 용어가 대개 판사가 법을 해석하고 판결을 내릴 때 특정 결과를 염두에 두고 판사 개인의 정치적인 목표달성을 꾀하는 것을 비판하는 의미로 쓰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과연 사법부가 사기업에 어떤 행위를 사실상 지시하고 이를 사기업 총수의 양형사유로 삼는 것이 사법의 한계 내에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이재용 재판은 법인 삼성과 자연인 이재용을 동일시하는 우를 범했다. 재판부의 판시대로라면 이재용은 삼성의 돈을 횡령하여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뇌물로 사용한 경영자다. 그렇다면 삼성은 횡령을 당한 피해자고 이재용은 삼성에 피해를 준 가해자다. 그런데 재판부는 왜 삼성이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어 투명경영을 하면 그것을 이재용의 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고 한 것인가. 가사 경영자의 횡령 등으로부터 회사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준법감시위원회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피해자 회사에 그것을 설치한다 한들 그것이 이미 벌어진 이재용의 범법행위에 면죄부를 줄 이유가 되는가. 삼성의 준법 투명경영을 담보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오히려 주식회사를 자신의 개인 소유물인 것처럼 취급한 것을 경계하며 이재용 개인의 재산을 털어서라도 회사에 응분의 보상을 하라는 요구를 했어야 이치에 맞는 것 아닌가.

이번 이재용 재판은 일관성을 보이지 못했다. 재판부는 뇌물액을 86억 8천만 원으로 보고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그런데 징역 2년 6월은 2심 재판부가 뇌물액을 36억으로 보았을 때 선고한 형이다. 그리고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뇌물액을 89억으로 보고 징역 5년을 선고했었다. 다른 사정변경이 없고 뇌물 액수가 3억 원 가량 줄었을 뿐인데 형량이 1심의 절반으로 준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을 양형에 반영해서 형량을 1심보다 적은 2년 6월로 정하되 다만 준법감시위원회가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에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번 재판부는 준법감시위원회의 활동이 실효성이 없다며 이를 양형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설시했다. 앞뒤가 안 맞고 다분히 여론을 고려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이재용 재판은 재판의 신속성이라는 점에서 큰 문제를 남겼다. 법언에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재판부는 2019년 9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이 된 이래 무려 1년 4개월에 걸쳐 재판했다. 사실 유무죄 여부와 횡령액은 대법원에 의해 정해졌고 양형 판단만을 남겨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집중심리를 했다면 2개월 이내,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4~5개월 이내 선고를 할 수도 있었다. 재판부가 느닷없이 준법감시위원회를 꺼냈다가 특검에 기피신청을 당해 9개월이나 시간을 낭비한 것 역시 재판부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재판 지체의 변명이 될 수도 없다.

재판은 재판의 본질과 한계를 지켜야 한다. 가장 좋은 재판은 수긍이 가는 재판이다. 재판부의 오버는 생각보다 큰 후유증을 남긴다. 정치의 사법화도 경계해야 하지만 사법의 정치화도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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