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싱가포르 : ‘묵종’하는 ‘비자유주의 민주주의’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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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싱가포르 : ‘묵종’하는 ‘비자유주의 민주주의’국가
  • 신희섭
  • 승인 2021.01.22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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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싱가포르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관광을 좋아한다면 ‘멀라이언 상’이나 국립공원인 ‘보타닉가든’ 혹은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정치나 사회를 좋아한다면 싱가포르의 다른 부분이 보인다.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동남아시아에서는 ‘유일한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국가다. IMF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싱가포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63,987불이다. 이는 미국의 65,112불보다 한 계단 아래 있지만 전 세계 국가 중 9위나 된다. 아시아에서는 마카오(81,152불)만이 싱가포르보다 높다. 홍콩(49,334불)과 일본(40,847불)도 싱가포르보다 낮다. 31,431불의 한국과 비교하면 21계단 위에 있다. 물론 인구수가 580만 명의 작은 국가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다른 한편 싱가포르는 ‘잘사는 북한’이나 ‘사형제도가 있는 디즈니랜드’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극명하게 갈린 평가.

다른 각도에서 싱가포르를 유명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있다. 공공장소에서 껌을 씹으면 외국인이라도 벌금을 낸다. 길에서 침을 뱉어도 마찬가지다. 매질하는 ‘태형’으로도 유명하다. 1994년 ‘미국인 소년 사건’으로 싱가포르의 태형은 국제적인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주차된 차량을 훼손한 혐의의 미국인 소년은 6대의 태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직접 감형을 요구해, 4대로 감형되었지만, 태형은 집행되었다. 1.2m 길이의 목재나 금속재로 만든 몽둥이를 가지고 무술유단자가 온 힘을 다해 때리는 태형은 죄수의 엉덩이를 터뜨린다. 기절한 죄수는 병원에 실려 가서 엉덩이를 꿰맨 뒤에 다시 다음번 매질을 당한다. 21세기에도 말이다.

싱가포르의 정치도 특이하다. 싱가포르는 단순히 분류하면 그저 ‘비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나 선거가 있다. 물론 정부가 관여하여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에 완전한 민주주의로 볼 수는 없다. 좋게 표현하자면 ‘관리된 민주주의’나 ‘가부장제 민주주의’라고도 한다. 학문적으로 좀 더 엄정하게 표현하자면 ‘비자유주의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받아들이지만, 자유주의는 거부하는 것이다. 집회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거의 완전히’ 제한되어 있다. 정부에 대한 비방 자체가 불가능하다. 21세기인데도 말이다.

이런 정치체제에서 ‘선거’와 ‘야당’의 기능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수행하는 기능과 다르다. 싱가포르에서 국민은 자유롭지 않지만, 선거를 통해서 정부를 구성할 수는 있다. 또한, 복수 정당이 있지만, 정치적 결과는 바꾸기 어렵다. 2020년 총선에서 여당인 인민행동당(People’s Action Party)은 61%의 득표를 했지만, 전체 의석 93석에서 83석(의석 비율 89%)을 얻었다. 야당인 노동자당(The Workers’ Party)은 ‘관권선거(官權選擧)’에도 불구하고 10석이나 의석을 따냈다.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불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선거는 주기적으로 실시되며, 야당은 열심히 뛴다. 왜?

정부를 운영하는 여당과 야당의 셈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당은 선거를 통해서 ‘점잖고’ ‘정당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명분을 가진다.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야당마저 있으니 국민에게 적당히 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반면 야당은 이미 짜인 판에서도 자신들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또한, 국가는 잘살지만, 실제 기층민들의 삶은 매우 어렵다는 점을 국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알린다.

정치와 경제 차원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싱가포르의 사례는 흥미로운 부분이 제법 된다.

싱가포르는 면적이 721.5㎢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다. 제주도의 면적이 1,847㎢이고 부산 면적이 769.89㎢이다. 면적이 605㎢인 서울보다 좀 더 크고 면적 712.95㎢인 진주시와 비슷하다. 이 작은 섬나라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축출되는 바람에 ‘원치 않는 독립’을 했을 때 자체적으로 식량과 식수 수급이 안 되는 지경이었다. 작은 면적과 적은 인구라는 약소국의 조건에서 인도네시아와 같은 주변 국가들의 위협에 스스로 생존을 지킬 수조차 없었다.

1960년 국민소득 400불에 불과했던 나라가 지금은 동아시아에서 ‘독립국’으로는 가장 높은 1인당 국민소득을 가진 국가가 되었다. 석유 선물시장을 가진 유통과 물류의 국가로 빠른 시간에 급속한 경제성장도 이루었다. 하지만 경제발전이 반드시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국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식량 가격을 낮추어 주고, 공공아파트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정부는 국민을 ‘순응’하게 만들었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는데 성가신 전투적 노동조합은 불법화되었고, 저항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경제발전의 높은 위상에도 불구하고 악명높은 수치들 역시 동시에 가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주관 언론 자유에서는 세계 158위다. 국민 행복지수는 150개국 중 150위로 만년 꼴찌다. 높은 청렴지수는 반대로 높은 자살률과 연동된다. 싱가포르 젊은이들이 가난한 동남아시아 국가에 관광을 가서 ‘진상’을 부리는 것 역시 높은 청결도를 만드는 ‘엄숙주의’와 강력한 벌금의 ‘엄벌주의’와 연결된다. 쥐어짜기 때문이다. 21세기인 지금도 말이다.

억압받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싱가포르 인들은 독재체제와 정부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다. ‘묵종’하는 체제.

‘사형- 태형’이라는 엄벌로 상징화되는 강력한 ‘폭력’과 물질적인 ‘보상’만이 이 체제를 유지하게 한다. 선거는 있지만, 유권자는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다. 더운 나라라서 그럴 수 있다. 또한, 인구 전체에서 74.3%를 차지하는 중국계 화교의 특징인 정치보다 경제에 관심을 가지는 속성에 기인할 수 있다. 또한 ‘키아수(kiasu)’라는 ‘지는 것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는 싱가포르의 국민성 때문일 수도 있다. ‘더 높은 임금, 더 좋은 집’을 향한 무한 경쟁 속 능력주의적 사고가 ‘정치적 책임추궁성(accountability)’과 ‘정의(justice)’보다 높은 곳에 서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정학적으로 작은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벗어나고자 하는 생존 본능이 저항정신을 무디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1959년 독립부터 2015년 사망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싱가포르를 통치한 리콴유(李光耀, Lee Kuan Yew)의 정치적 통제력과 성과주의 리더십이 더해진 결과일 수 있다.

자존감과 저항정신이 강한 한국인들에게 싱가포르는 굉장히 낯선 국가다. 제조업이 없이 서비스로만 경제를 운영하는 경제운영시스템도 한국에는 이질적이다. 정치를 좋아하면서 정치인을 씹기 좋아하는 한국의 문화에서는 어리둥절할 국가다. 그러나 보편적 기준으로 보아도 ‘자원의 저주’ 없이도 국민을 묵종하게 만드는 특이한 국가다. ‘비자유주의 민주주의’라는 용어만큼이나 이질적인 국가다. 그래서 관심을 좀 더 가져볼 수 있는 국가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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