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한파와 폭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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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파와 폭설보다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1.01.14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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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변호사시험은 기자에게 있어서 새해를 여는 첫 시험이자 연중 가장 추운 시기에 4일 동안 야외에서 벌벌 떨어야 하는 가혹한 업무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시험이 며칠이나 이어지는 강행군과 저조한 합격률과 오탈제의 압박까지 짊어진 수험생들에게 시험에 대해 물어야 하는 미안함과 부담감도 다른 시험에 비해 매우 크다. 솔직히 말하자면 변호사시험이 치러지기 한참 전부터 울렁증이 생길 정도다.

올해는 여러 모로 더 힘든 취재였다. 겨울답지 않게 온화하던 날씨가 변호사시험 즈음 갑자기 북극발 한파로 바뀌는 바람에 시험 종료벨이 울리기까지 시험장 밖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말 그대로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손이 꽁꽁 어는 바람에 응시생들의 이야기를 받아 적기 어려웠던 적도 많고 취재를 마치고 실내로 들어와 기사를 작성하는 동안에도 몸에 깃든 한기가 빠지지 않아 몇 시간이나 덜덜 떨기도 했다.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둘째 날 형사법 시험이 종료되기 30여분 전부터 갑자기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몰아치는 눈은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순식간에 쌓였고 그 눈을 피할 곳 없어 고스란히 맞고 있어야 했던 기자는 눈사람과도 같은 몰골이 됐다. 게다가 취재를 나갔던 서울대 인문관 시험장은 몇 번의 가파른 경사와 계단을 거쳐야 갈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있던 터라 조심에 조심을 했음에도 돌아오는 길에는 두 번이나 넘어지고 말았다. 한파 탓에 녹지 않고 쌓여 있던 그 눈은 취재 마지막 날까지도 방심할 수 없는 난관이었다.

한파와 폭설은 기자 뿐 아니라 응시생들에게도 가혹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한 응시생은 “시험이 어려운 것도 있지만 추위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험에서 응시생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추위도 폭설도 아닌 불안과 분노가 아니었을까 싶다.

수험전문지인 법률저널의 기자로서 수년간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 자격시험의 취재를 다녔지만 이번 제10회 변호사시험 만큼 어이없는 사건들이 한꺼번에 발생한 적은 없었다. 문제 유출, 법전 밑줄 긋기, 추가 마킹 논란 등은 모두 시험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흔드는 매우 중대한 사건들이다.

모 로스쿨에서 모의고사 등의 자료로 사용된 문제가 공법 기록형 시험에 출제됐고 그 문제가 대부분의 응시생들에게 생소한 ‘불의타’였다. 당연히 그 문제를 미리 공부하고 들어온 해당 로스쿨 응시생들과 점수에서 큰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법전 밑줄 긋기는 법전 참조가 허용된 모든 시험에서 부정행위로 간주되는 사항으로 법무부도 당초 법전에 필기나 밑줄을 그을 수 없다고 공지했다가 일부 시험장의 감독관이 밑줄 긋기를 허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험이 치러지고 있는 중간에 방침을 바꿔버렸다.

또 어떤 시험장에서는 시험관들이 핸드폰 알람을 종료벨로 착각하는 바람에 답안지를 일찍 회수하고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응시생들이 갖고 있던 자료를 확인하고 답을 수정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논란도 나왔다. 애초에 응시생이 전원을 껐는지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실에 답안 수정을 허용하는 등의 추후 대처에도 미흡했다.

응시생들은 공부와 시험에만 온전히 집중해도 모자라는 시간과 체력, 정신력을 이 황당한 사건들로 인한 불이익을 염려하는 데 나눠 써야 했다. 응시생들에게 불안과 분노를 안겨준 이번 사건의 파장은 법무부 장관과 법조인력과장에 대한 고발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논란의 조속한 해결을 바라는 응시생들의 마음은 조급하기만 한데 법무부는 아직 제대로 된 대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만약 법무부가 철저한 조사를 통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 방안, 응시생들이 납득할 수 있는 피해 구제책을 내놓지 못하고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그 후폭풍은 어떤 한파나 폭설보다 더 거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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