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희롱의 사각지대, 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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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희롱의 사각지대, 요양보호사
  • 윤지영
  • 승인 2021.01.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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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장기요양 현장 성희롱 피해 근절 대책 마련 토론회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치매 노인처럼 혼자서는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요양보호사입니다. 요양보호사는 중고령 여성들의 대표적인 직업입니다. 전국에 요양보호사가 44만 명이 넘는데, 그 중 50대 이상의 여성이 87%에 이릅니다. 70대 여성도 10%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최근 이에 관한 충격적인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지지원센터들에서 공동 수행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요양보호사 중 42.4%가 업무 중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이 수치는 직장인 평균 성희롱 피해 수치의 5배를 넘습니다. 2018년 여성가족부가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를 했을 때, 성희롱 피해 경험율은 8.1%였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의문이 듭니다. 첫째, 요양보호사의 성희롱 피해는 왜 이렇게 심각한가. 둘째, 이렇게 심각한 데도 불구하고 왜 드러나지 않는 것인가.

요양보호사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 밀착해서 돌보는 일을 합니다. 특히 요양서비스의 절대 다수가 재가 요양(가정에 방문하여 요양서비스를 제공)이다 보니, 집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노인과 요양보호사 둘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희롱에 취약한 상황에서 요양보호사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요양보호사에 대한 낮은 처우와 인식, 이용자와 요양보호사의 위계관계도 한몫 합니다. 반면 피해자는 대부분 중고령 여성이다 보니 피해 사실을 말하기 꺼려합니다. 가해자의 인지 능력이 떨어져서 벌어진 일이라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피해 사실을 이야기해도 바뀌는 것이 없기 때문에 침묵하고 감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실태에 대응하기 위한 토론회가 지난 11월 18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렸습니다. 토론회에 앞서 공감은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지지원센터 활동가들과 만나 현재 어떤 정책이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자문하였습니다. 토론회에서는 토론자로 참석하여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요양보호사도 남녀고용평등법을 적용 받습니다. 따라서 직장 내 성희롱 규정들을 적용 받게 됩니다. 문제는 가해자가 고객의 지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남녀고용평등법은 고객에 의한 성희롱에 대해서도 사용자의 일정한 조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법대로라면 요양기관장은 피해 요양보호사가 원하는 경우 유급휴가 부여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행 급여액 산정 방식으로는 유급휴가는 불가능합니다. 건강보험공단은 요양보호사의 실제 근무시간에 대해서만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에, 유급휴가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또한 현행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은 노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법은 요양보호사가 노인을 학대하는 경우는 상정하지만, 그 반대로 노인이 요양보호사의 인권을 침해하는 경우는 상정하지 않습니다. 법은 철저하게 노인의 편에 서 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는 객체에 불과합니다. 그 결과 아무리 많은 성희롱 가해행위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노인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제한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실 요양보호사가 겪는 고충은 성희롱만이 아닙니다. 노인에 대한 돌봄 노동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중단할 수 없는 필수노동입니다. 요양보호사는 이용자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돌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우는 매우 열악합니다. 요양보호사의 평균 임금은 월 122만원에 불과합니다. 특히 가정에 방문하여 일하는 요양보호사의 경우 근무시간도, 임금도 들쑥날쑥합니다. 호출 횟수와 시간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불안정한 노동자입니다. 비용 절감이라는 미명 하에 요양보호사의 희생으로 노인요양보호제도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양보호사는 안전장치 없이 스스로 위험에 대처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희롱으로부터의 보호 요청이 실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암울한 현실에서 요양보호사는 일하고 있습니다.

당장 법령을 바꾸기 어렵다면, 서울시 차원에서라도 조례를 통해 정책을 시행하면 좋겠습니다. 성희롱 가해자에 대해서는 2인 1조 혹은 동성(性)의 남성 요양보호사를 투입할 수 있도록 인력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희롱에 잘 대처하는 요양기관에 대해서는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이용자와 그 가족이 지켜야 할 사항을 담은 안내 자료를 배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피해를 입은 요양보호사가 제대로 치유하고 쉴 수 있도록 유급휴가 및 심리 상담 등을 지원하면 좋겠습니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0년 12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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