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미국산 SUV의 눈 오는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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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미국산 SUV의 눈 오는 퇴근길
  • 신희섭
  • 승인 2021.01.0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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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21년 1월 6일은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날이다. 40분이면 다니던 길을 4시간 20분이 걸려 집에 도착한 것이다. 10km 남짓한 거리를 부산 갈 시간에 가까스로 갈 수 있었다. 덕분에 가족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언제 집에 들어갈 때 이런 환영을 받을 수 있겠나!

1월 6일 지옥 같은 퇴근길을 경험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뉴스에서는 저녁 8시에 귀가하러 나왔다가 새벽 4시에나 도착한 사람의 소식까지 나왔다. 그럴 수 있다. 언덕이 있는 곳에는 미끄러진 차들. 바퀴가 헛돌아 오르지 못하는 차들. 내리막에 브레이크가 안 들어 사고가 난 차들. 춥고 눈 오는 밤이란 배경 화면 속의 모습들이다.

개인적으로 퇴근 기록을 세운 지옥 같던 퇴근길의 탓을 누군가에게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 ‘우연’이 ‘준비 부족’에 겹쳤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에 집중적으로 내린 눈에 더해 부족한 제설 준비와 대처가 미비했던 운전자까지 더해 그 사달이 난 것이다. ‘우연’과 ‘미숙한 준비.’ 대체로 커다란 고통은 이 공식을 따른다.

퇴근길에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정문을 지났다. 그 앞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언덕을 오르지 못하는 차들이 마치 멀리뛰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처럼 정문 앞에 늘어서 있었다. 그래서 5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이나 걸렸던 것이다.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을 고집했다가는 오늘 안에 집에 갈 수 없겠다. 그래서 서울대학교를 가로질러 가기로 마음을 먹고 운전대를 돌렸다. 교내에는 언덕을 일부러 돌아가는 차들이 없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서울대학교의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제설이 되지 않은 길은 차량의 바퀴를 헛돌게 했다. 차내 오프로드 기능을 설정하자 차는 오른쪽 왼쪽으로 미끄러지면서 꾸역꾸역 언덕을 올랐다. 중간중간 바퀴는 슬립이 나고 오프로드 기능이 꺼지기도 했다. 다시 오프로드와 4륜 고정을 반복하면서 눈과 얼음이 덮인 도로를 한 걸음씩 넘어갔다. 썰매를 끄는 기분이었다. 차가 멈출 수도 있다는 걱정과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렇게 5분 이상을 언덕과 싸우면서도 차는 지그재그로 눈길을 완전히 오를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차를 타면서 느껴보는 불안이었다.

내가 무모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 이 어려운 길을 잘 헤쳐나온 자동차가 고마웠다. 우직하게 여러 개의 눈과 얼음으로 깔린 언덕을 넘고 내리막을 지나 집까지 나를 데리고 와준 것은 투박한 나의 미국산 SUV였다.

생각해 보니 이번 차까지 그동안 몰았던 3대의 자동차는 모두 미국산 SUV였다. 두 대는 오프로드 기능이 특화된 차였고, 지금 몰고 있는 차는 정통 오프로더는 아니지만 오프로드 기능이 들어가 있는 차다. 많이 기대하지 않았던 그 기능이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주변 사람들은 왜 기름 많이 먹고 투박하고 최신 기능도 떨어지는 미국산 SUV를 타고 다니냐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두 가지 이유를 댄다. 첫째는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딱 한 번’만 내 목숨을 구해주면 좋겠다는 이유다, 둘째는 눈 오는 날 다른 차들에는 좀 미안하지만 이리저리 막 다닐 수 있어서다. 다른 차들이 가기 어려운 길을 갈 때 느끼는 짜릿함이 있다. 이 짜릿함은 그간 나보다 더 많이 먹어댄 자동차의 ‘밥값’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물론 그 며칠의 짜릿함을 위해 살인적인 연비의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 바보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미국산 SUV는 자동차의 본질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집에 데려오고 일터로 데려다준다. 독일산 자동차나 한국산 자동차처럼 아주 빠르거나, 내부가 화려하지 않고, 그저 필요한 기능들만 챙긴다. 그도 그럴 것이 넓은 미국 땅덩어리에서 길게 뻗은 도로들과 임시 도로들에서는 그저 잘 달리면 그만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못할 상황에서 스스로 차를 몰고 가야 하는 할 때 우직하지만 잘 헤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만의 하나를 위해 수많은 컵홀더와 수납공간을 준비해둔다. 독일 스포츠카처럼 빨리 달리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가족들에게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것이면 족하다. 모든 이의 자동차 선택기준이 다르듯이 자동차가 수행해야 할 기능과 덕목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자동차가 할 중요한 역할이 ‘집에 데려다주는 것’이라면 미국산 SUV는 그 자동차의 덕목에 충실하다.

자동차의 덕목은 자연스레 지도자의 덕목을 떠올리게 된다. 수많은 리더십 연구자들이 지목하는 지도자의 덕목들이 있다. 또한, 자동차 종류보다 더 많은 리더가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지도자들도 여러 명이나 된다. 그러다 보니 지도자에게 바라는 최고의 덕목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런데도 우린 지도자다운 덕목을 갖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현재 한국 정치는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다. 현직에 있는 검찰총장이 여론 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1위를 차지하는 상황은 이를 증명한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공개적으로 매일 싸워대는 상황은 코로나로 심신이 피곤한 시민들을 더 지치게 만든다. 2021년 1월 들어 서울 아파트 평균가격이 평당 4천만 원이 되었다는 소식은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서울로 이주하고 싶은 사람들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2020년 10월까지 누적 출생아 수가 23만 3,702명인데 비해 같은 기간 사망자 수는 25만 2,518명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인구가 감소했다는 ‘사실’과 2020년 2분기와 3분기의 합계 출산율이 0.84%가 되었다는 ‘사실’과 2021년에는 0.7%대로 추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미래마저 암담하게 만든다.

임금정책과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정부 정책’의 실패와 한국의 인구라는 ‘사회 구조적 요인’에 더해 코로나 사태라는 ‘우연’이 겹치면서 많은 한국인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이후 미래도 그리 밝아 보이지만 않는다. 그러니 다시 새로운 지도자를 찾을 수밖에.

이런 엄중한 상황에선 세련된 말솜씨나 연출력을 가진 지도자보다는 투박해도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줄 수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주어진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묵묵하게 앞장서 나가면서 시민들을 이끌어주는 지도자면 참 좋지 않을까! 혹시 모를 상황도 헤쳐갈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지도자면 더 좋지 않겠나! 그리고 그런 지도자 옆에 훈련을 잘 받고 준비가 잘 된 참모들이 있다면 금상첨화 아니겠나!

난관을 헤치며 한국의 역사는 무르익어가고 있다. 성숙해가고 있는 한국에서 이런 지도자를 기대해 보는 것은 너무나 이상적인가!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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