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공부 3-지혜와 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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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공부 3-지혜와 사술
  • 손호영
  • 승인 2021.01.0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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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 판사
손호영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 판사

#1. 전국을 돌며 비단을 팔아 매상을 올리던 비단장수가 잠깐 앉아 피곤함을 달래려 했습니다. 자리를 잡은 곳은 한적한 시골마을에 들어가기 전, 장승 옆이었습니다. 꺼뻑 잠이 들은 비단장수는 곧 눈을 뜨자 혼비백산합니다. 내 비단 보따리가 어디갔지?

#2. 중대원들과 신뢰관계가 쌓였다고 나름 다행스럽다고 여기던 중대장에게, 어느 날 한 중대원이 찾아옵니다. 별안간 무슨 일인가 했더니, 중대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냅니다. 중대에 도둑이 있는 것 같습니다.

#1. 비단장수는 울음을 참지 못한 채 지푸라기라도 잡는 기분으로, 마을 원님을 찾아갑니다. 제 비단을 찾아 주십시오. 전재산과 다름없습니다. 누가 본 사람이 있는가? 저는 잠이 들어 있어서,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보따리에 발이 달리지는 않았는데, 그냥 사라질 수야 없지 않겠느냐?. 없어진 그곳이 어디였느냐? 장승 옆자리였습니다. 그러면 장승은 보았겠구나. 네? 여봐라, 장승을 잡아 와라. 장승을 뽑아와 묻는다는, 우스꽝스러운 재판이 열린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진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구경이나 가보자는 생각에 마을 사람들이 죄다 모였습니다. 어느새 뽑혀온 장승을 향해 원님이 묻습니다. 그 도둑은 누구이더냐? 대답 없는 장승. 허어, 대답을 하지 않는구나 고얀 놈. 자백할 때까지 매우 쳐라. 그때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듯, 쿡쿡 거리는 웃음이 여기저기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원님은 옳거니 기다렸다는 듯 명합니다. 누가 감히 재판정에서 웃느냐. 죄송합니다 저희도 모르게 그만. 그냥 넘어갈 수 없으니 사흘 내로 비단 한 필씩 바쳐라. 벌금 대신이다. 괜한 화풀이를 당했다 싶지만 어떤 때는 웃음에도 값이 있는 법입니다. 하릴없이 구경꾼들은 급히 비단을 구합니다. 쉬이 찾을 수 없던 와중, 건너마을 비단장수에게 비단이 많다 들어, 사 바칩니다. 그리고 원님은 비단장수에게 묻습니다. 이 비단이 네 비단이 맞느냐. 맞습니다. 건너마을 비단장수를 잡아오너라.

#2. 중대장은 고민에 빠집니다. 도둑이 있다는 제보를 가벼이 여길 수도 없고, 중대원들을 별다른 근거 없이 의심하자니 기껏 세운 신뢰가 아쉽습니다. 궁리 끝에 중대장은 새로이 휴가에서 돌아오는 중대원을 정문에서 붙잡습니다. 오랜만에 반갑다며 중대원에게 용돈 10만 원을 쥐여줍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리둥절한 중대원에게 고생하고 있다고 위로하면서 대신 용돈 받았다는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말만 남깁니다. 그런데 10만 원은 다른 용돈과는 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 눈이 검게 칠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중대장은 PX병으로부터 보고를 받습니다. 검은 눈의 세종대왕을 사용한 사람은 바로...

첫 번째 장승 원님 재판은 꽤나 흔한 유형의 설화라고 합니다. 기발하고 엉뚱한 발상으로 문제 상황을 깔끔하게 해결하는 원님의 지혜가 인상 깊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군법무관 훈련을 받을 때 훈육장교에게 들은 내용입니다. 듣는 내내 감탄했습니다. 지혜로움이 먼 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두 이야기를 참고삼아, 우리 실무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지혜로움이야말로 법률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다가도, 지략과 사술·계략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니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 듭니다.

지하철 역 근처에서 만취한 취객을 상대로 ‘부축빼기 수법’의 범죄가 유행한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경찰관들로서는 횡행하는 이 범죄를 소탕할 책무가 있고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경찰관들은 공원에 가서, 인도에 만취한 취객이 누워 자고 있자, 잠복을 결심합니다. 찬찬히 현장을 살피던 중, 누군가가 취객에게 다가와 부축빼기를 시도합니다. 경찰관들은 급히 달려나와 현행범으로 그를 체포합니다. 드디어 지역 내 골칫거리를 해결했나 싶었는데

경찰관들의 잠복 근무와 현행범 체포에 대해서는, 위법한 함정수사 여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본래 범의를 가지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 수사기관이 사술이나 계략 등을 써서 범죄를 유발케 하여 범죄인을 검거하는 수사방법’은 함정수사에 해당하며 이는 위법하다고 합니다. 다만, ‘범의를 가진 자에 대하여 범행의 기회를 주거나 범행을 용이하게 한 것에 불과한 경우’는 함정수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2007도1903)은 경찰관들은 단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고, 피고인이 스스로 범행에 나아갔으니 함정수사에는 해당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쓰러져 있던 피해자에게 보호조치가 필요함에도 그러하지 않은 것은 범죄수사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는 점도 지적합니다. 수사방법의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입니다.

법을 적용, 해석, 집행하는 역할을 맡은 법률가에게는 실체 못지않게 절차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실체법과 절차법을 함께 배우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결과만을 도출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까지 함께 살피는 것, 법률가의 역할은 이러한 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혜로움을 추구하더라도 언제나 그 정도를 지키도록 유의하고 조심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손호영 의정부지방법원고양지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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