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골병과 노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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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골병과 노화에 대하여
  • 신희섭
  • 승인 2020.12.3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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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며칠 전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시다고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친한 한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말씀이 이렇게 아프게 된 여러 이유 중 가장 본질적인 것은 ‘골병’이 드셨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젊을 때 너무 몸을 혹사하셨기 때문에 이제 고장이 난 것이라는 부연설명과 함께.

스파크가 두 번 때렸다. 번쩍. 나의 어머니가 늙고 있구나. 번쩍. 나는 이 사실에 준비가 안 되어 있구나.

자신의 어머니가 “골병이 드셨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이 핑 돌 사람들이 많다. 대체로 자신 때문이란 점을 알아서다. 그만큼 어머니는 미안하고 또 고마운 존재다. 가난한 나라, 퍽퍽한 가정, 많은 식구. 이 많은 짐을 지고 억척스럽게 사신 분들이 한국의 어머니다. 그러니 ‘골병이 든’ 어머니에 마음이 무너지게 된다.

마음이 아프다는 감정을 한켠으로 하고, 나는 어머니의 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fact)’을 직시해야 덜 무기력해진다. 또한, 노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진실(truth)’에서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를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누구나 나이가 든다. 따라서 노화는 어떤 사람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저항할 수 없는 ‘확실성’의 자연적 섭리다. 그러나 오늘 노화를 시작해서 내일 사망하는 것이 아니다. 노화가 어떤 방식인지나 얼마나 많은 시간이 주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도 내포하고 있다.

이런 ‘확실성 속의 불확실성’은 노화에 대응하는 다양한 경로들을 생각하게 한다. ‘발효’할 것인가 ‘부패’할 것인가와 같은 비교가 대표적이다. 잘 익은 포도주와 부패한 포도주는 맛과 가격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똑같이 물에 빠져도 워터에이징(물속 숙성)까지 한 소고기는 먹지만, 물가에서 썩어가고 있는 소고기는 버려진다. 마찬가지로 개인들도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을 보내지만, 그 결과는 사뭇 다르다.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날 것인지, 존중받는 삶으로 기억될 것인지, 존경받는 인생으로 기록될지는 차이가 크다.

노화에 대한 다양한 경우의 수는 ‘어떤 삶이 인간 원리에 충실한가’라는 철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만든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키케로는 저서 『노년에 대하여』에서 노년의 편견을 반박하면서 노년의 삶이 가지는 장점을 설명했다. 키케로는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되거나 괄시받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가 볼 때 노화하는 것 자체와 특정 개인이 나이가 들면서 드러나는 그의 인간성과 언행은 구분되어야 한다. 만약 다른 이들에게 무시당하고 괄시받는 나이든 이가 있다면 이런 행동은 그가 노년이기 때문이 아니라 노년이 되었음에도 노년답지 않게 행동했기 때문이다.

키케로는 그의 책에서 노년에 대한 편견을 4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 노년이 되면 일을 할 수 없다. 둘째, 노년이 되면 체력이 떨어진다. 셋째, 노년이 되면 쾌락을 즐길 수 없다. 넷째, 노년이 되면 죽음이 멀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반박하였다. 첫째, 노년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국가 원로와 사회원로가 왜 있겠는가! 둘째, ‘체력’이 약해진 노년기에는 ‘정신’적으로 원숙함을 위해 더 많이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 셋째, 노년기에는 청년기와 다른 쾌락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체력이 약해지고 욕망이 줄어든 노년기에는 미루어두었던 학문과 배움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넷째, 죽음 앞에서 번호표가 있는가!

맥락(context) 적으로 볼 때, 키케로가 이 책을 집필한 시기가 무너져 가는 공화정 앞에서 현실정치를 포기하고 학문에 몰두하던 62세라는 점은 중요하다. 그는 ‘바람직한 노년의 삶’의 본보기를 81세까지 학문 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플라톤으로 설정하고 있다. 키케로 자신도 동경했던, 정치 현실에서 한발 비켜서 있으면서도 새로운 기쁨을 찾아가는 플라톤과 같은 ‘현자의 삶’은 지극히 이상적이다.

너무 멀리 갔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키케로의 삶을 따라 살 수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노년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면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나눌 수 있을까! 이런 삶은 에픽테토스(Epiktetos)의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과 ‘달려있지 않은 것’의 구분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과 유사한데, 과연 불필요한 욕심에서 해방되어 사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나의 어머니뿐 아니라 같은 세대의 어머니 대부분은 키케로나 에픽테토스를 모른다. 많은 어머니에게 ‘노년이 되는 것’은 ‘어떤 삶이 바람직한가’의 철학적 준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비가 걱정인 실존의 문제다. 그런데도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염치와 도리를 지키며 산다. 삶의 경험 속에서 어머니들은 부패하지 않고 발효되는 법을 깨닫고 사는 것이다.

교육과 학습이 필요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가족이 모른 척 지나가고 있는 어머니(넓게 확장하여 부모님)가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것이 간병비와 같은 경제적 부담과 치매에 대한 불안이 되기 전에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니 나는 우선 그렇게 해야겠다. 나의 개인적 경험을 초고령화로 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세대 간 갈등 가능성으로 확장하기 전에 먼저 나부터 그리 해야겠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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