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출제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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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출제의 기술(?)
  • 송기춘
  • 승인 2020.12.24 18:21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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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는 시험문제들이 있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학교 시험은 과목 담당교수가 분필 하나 들고 시험장에 들어오셔서 칠판에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에 대하여 논함.” 또는 “상인과 상행위”과 같은 문제를 적는 식이었다. 수강생이 많지 않으면 교수가 문제를 종이에 적어 나눠주기도 했다. 간혹 등사한 문제지를 나눠주고 ‘케이스(사례)’ 문제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헌법은 법인가?”라는 문제도 나왔다. 어느 교수는 국제법과 국내법의 관계에 관한 이론적 논의(변형이론)를 매년 내기도 했다. 농담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교수는 어느 과목 시험에 매년 같은 문제를 냈다고 한다. 단골 문제의 첫 글자 초성이 ‘기역’으로 시작되는 “···란 무엇인가?”이었는데, 어느 해 이 교수가 시험장에 들어와 칠판에 느닷없이 ‘디귿’으로 시작하는 글자를 쓰자 학생들이 예상외의 문제가 나오나 보다 하고 탄식을 했는데, 나온 문제는 “도대체 ···란 무엇인가?”라는 같은 문제였다고 한다. 사법시험장에서는 시험장마다 시험감독관이 두루마리 한 개씩을 가지고 들어와서 시험장 앞 칠판에 붙이고 시작종이 울리면 방(榜)을 거는 방식으로 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의 시험은 사례형의 문제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대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이론적 논의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사례형이라고 해도 매우 간단한 것이거나 군더더기가 붙지 않은 이론적 논의를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현실의 사례가 법적인 것과 법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사실이 혼합되어 있고 법적 논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는 법적인 사실을 잘 가려내는 일인데도 말이다. 여하튼 돌아보면 그런 우리는 문제를 풀었고, 그렇게 자극 받으며 공부를 했고 법학사들이 되었고 법률가가 되어 사회로 나갔다. 그리고 필자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법전원에서 또는 변호사시험에서 시험문제가 어떻게 출제되느냐는 중요하다. 시험 문제는 학생들의 공부방향을 설정하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교육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법전원이나 변호사시험의 출제는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상황 속에서 법적 문제를 추출하여 분석하고 법규범을 해석·적용하여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도출하는 논증의 과정을 요구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논증에서 핵심적인 몇 가지의 개념에 대한 이해 정도를 간단하게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매우 길어지게 된다. 수많은 사실관계가 복합적으로 제시되고 이 가운데서 법적 요건에 해당하는 사실관계를 선별하는 것도 학습의 수준을 평가하는 데 중요하다. 그리고 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이긴 해도 문제가 제한적인 항목에 대한 것이므로 제시된 사실관계에 관한 모든 법적 사항을 다 서술하도록 요구받지도 않는다. 특히 변호사시험은 변호사로서의 업무수행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므로 사안에 대한 종합적이고 공정한 평가(전체적 분석)와 함께 어느 한 당사자의 입장에서 변론의 내용을 어떻게 펼쳐나가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후자 부분은 더욱 중요하다. 변호사가 되어 하는 활동은 대부분 의뢰인을 위한 변론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시험이나 이를 위한 모의시험을 보면 좀 의아한 문제를 만난다. 문제 자체는 괜찮은데 제시된 모범답안을 보면 이래도 되나 하는 문제도 있다. 무성의하다고 할 문제도 적지 않다. 몇 년 전 판례를 하나 찾아 이 당시의 법령이 현존하는 것으로 가정하여 출제하는 식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어떻게든 학생들 공부한 정도를 평가할 수는 있고 그런 출제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판례에 기초하여 출제한 문제도 판례를 굳이 염두에 두지 않으면 서술되는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도 모범답안은 판례에서 제시한 쟁점으로만 구성되는 경우도 있다. 판례는 학생들의 공부 정도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 사실관계에서 타당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결론을 내리는 데 충분한 근거만 제시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건에서 제시될 수 있는 여러 쟁점 가운데 몇 가지만 선택한 것인데도 말이다. 사례에서 언급되어야 할 이론의 맥락을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사례문제는 어떤 이론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직접 묻는 것이 아니며 이론적 논의는 사례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느 단계에서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미 국민건강증진법에서 흡연구역을 설정하고 이 구역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문제는 간단히 기본권의 충돌에 관한 서술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흡연의 문제가 언제나 기본권의 충돌 문제인 것도 아니다. 기본권의 충돌 문제는 흡연자의 기본권(흡연) 제한에 관하여 그 제한 입법의 목적이 정당하냐는 맥락에서 얘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옛날 사법시험을 거쳐 변호사나 판사가 된 사람들은 법과대학의 교육을 무시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법학이론 교육을 쓸데없는 것으로까지 취급하였다. 현실에서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전원 교육을 위한 시험문제는 어떠한 것이어야 할까? 법전원 교육은 실무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실무가 단순한 기술을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실무에서 중요한 것은 주장을 정당화하는 논증 즉 이론적 충실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전원 교육에서 이론적 논의가 가볍게 취급될 수는 없다. 이론이 공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유용한 실천적(실제적) 이론이라면 더욱 필요하고 그것이 교육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시험도 이러한 실제적 추론능력을 평가하는 것이어야 한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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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겨 2020-12-24 18:33:59
누가들으면 변시출제 교수가 안하는줄알겠네
자아비판인가

김현동 2020-12-24 18:28:39
교수님 이런 글도 좋지만 제자들이 코로나 구덩이에서 변호사시험 보게되는데 한 말씀 해주시는게 어떨까요? 변호사단체는 후배들 위해서 하나같이 성명 내는데 어쩜 교수들은 단 한마디가 안나오나요?

랭점산타 2020-12-26 13:54:14
교수님 확진자 응시금지 위헌성이나 한마디 해주십쇼 법률가는 법전보다 신문을 먼저 보라면서요

전북전북 2020-12-30 17:14:57
이상은 참 좋은 교수님. 사람으로서도 좋은 교수님이지만... 학생들은 현실에 살고 있고 학생들에게 변호사시험은 미래와 직결된다는게 문제ㅠㅠ 항상 로스쿨 제도와 변시 제도의 문제점을 거론하시지만, 학생들은 그 제도 안에서 변호사 시험을 봐야하는데 교수님 본인의 이상에 따른 강의와 시험 출제를 하심. 그러다 보니 변호사시험과 강의의 결이 너무 다름. 일단 현실 속 학생에게는 변호사시험에 적합하게 가르치시며 동시에 제도를 고치기 위해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어요...ㅠㅠ

임걱정 2021-01-07 18:37:11
그래서 이번 10회 변시 공법기록형 문제 풀 수 있어? 헌법소원하고 수용재결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어? 당사자소송 청구취지부터 본안판단까지 쭈욱 해설 가능해?
바로 아래 댓글이 정말 부드럽게 얘기해서 그런거지 할 말 정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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