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미녀의 나라 우크라이나의 내부적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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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미녀의 나라 우크라이나의 내부적 위기
  • 신희섭
  • 승인 2020.12.2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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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우크라이나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포털사이트에서 우크라이나를 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는 ‘미녀’다. 한국에 우크라이나는 ‘미녀가 많은 나라’와 ‘국제결혼을 많이 하는 나라’와 ‘여행 가보고 싶은 국가’로 알려져 있다.

이런 우크라이나가 ‘위기’다. 인구가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러시아 일간지 ‘이즈베스티야(Izvestiya)’의 발표에 따르면 2001년 4,845만 명이었던 우크라이나의 인구수는 2020년 1월 기준으로 3,728만 명으로 줄었다. 약 20년 동안 인구가 천 만 명 이상이나 줄어든 것이다. 물론 이 통계가 다소 과장될 수도 있다. 우크라이나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1월 기준 우크라이나 인구는 4,215만 명이다. 인구 통계의 부정확성을 참작해도 확실한 것은 빠른 기간 내에 많은 인구가 줄었고, 줄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인구 감소는 두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첫째, 낮은 출산율 때문이다. 2006년 기준 유엔인구기금 통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출산율은 1.13명이다. 해마다 수치의 미세한 변동은 있지만 전 세계에서 한국과 함께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인 점은 변함없다. 둘째, 인구 유출이 많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과 돈바스 지역의 분쟁 지속으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는 것이다.

다른 국가들의 1960년과 2020년 인구수 비교와 함께 보면, 우크라이나 상황이 더욱 선명해진다. 먼저 한국은 1960년 인구수가 2,500만 명이었는데 2020년에는 5,178만 명(인구 28위)으로 늘었다. 베트남은 1960년 3,474만 명에서 9,733만 명(인구 15위)으로 성장했다. 필리핀은 1960년 2,600만 명에서 2020년 1억 958만 명(인구 13위)의 국가로 껑충 뛰어올랐다. 에티오피아는 1960년 2,200만 명에서 2020년 1억 1,496만 명(인구 12위)의 국가로 초고속 성장했다. 반면 1960년 4,300만 명으로 추산되던 우크라이나는 이들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인구 수 증대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인구 감소는 국가에게 심각한 문제다.

그러면 우크라이나는 살기 어려운 나라인가? 그렇지 않다. 객관적 조건만 보았을 때 우크라이나는 살기 좋은 나라로 보인다. 우선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영토를 가지고 있다. 영토 면적이 60만㎢로 남한의 6배고 한반도보다도 2.7배 크다. 게다가 세계 3대 곡창지대에 속한다. 흙의 황제라고 불리는 ‘체르노젬’ 흑토지대(흑해 연안에 넓게 퍼진 지역)에 있는 우크라이나는 2011년 곡물 수출량 세계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게다가 석유와 석탄 같은 다양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 관점에서 유복해 보이는 객관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왜 우크라이나인들은 ‘미래 기대를 반영하는’ 출산율이 낮고 ‘현재 상황을 반영하는’ 이주율이 높을까? 이 질문에 답하면서 우리는 역사와 지정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배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뿌리가 같다. 두 국가 모두 현재 국가 형태는 키예프 공화국을 모태로 한다. 그러나 이후 우크라이나는 몽골과 폴란드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특히 14세기와 17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공국의 지배는 러시아와 인종과 종교가 같은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서부지역에서는 서유럽의 문화유산을 공유하게 된다. 즉 다른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현재도 동부지역이 러시아인들의 구성 비율이 높고, 서부지역이 우크라이나인들의 구성 비율이 높은 것은 이런 근대화 과정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후 러시아의 치하에 있던 중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잠시 독립했던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만들어지자 지배를 피할 수 없었다.

비극적인 약소국의 운명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소련 지배시기인 1932년에서 1933년 사이 스탈린의 집단농장 제도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대기근이 발생한 것이다. 결과는 인류 최초의 기아에 의한 사망(death by starvation)인 홀로도모르(Holodomor). 소련의 농업을 책임질 정도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에서 식량이 없어 굶어 죽은 이가 200만 명에서 700만 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은 비극적 아이러니다. 1921년에도 소련의 정책 탓에 기근을 경험했지만 1932년~1933년의 대기근은 1933년 당시 우크라이나인들의 평균수명을 남자 7세 여자 10세로 만들 정도로 심각했다.

이들의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2차 대전 시기 히틀러는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과 유대인 700만 명을 집단학살(genocide)했다. 또한, 독일과 싸우다 사망한 소련군 1,100만 명 중에서 270만 명이 우크라이나에서 징집된 우크라이나인들이었다.

이들의 비극은 소련 시절에도 계속되었다. 1986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100km 떨어진 체르노빌 원전에서 폭발이 발생한 것이다. 원전 사고 중 가장 끔찍한 사고인 원자로가 폭발해버린 것이다.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소련이 분산 배치한 핵전략으로 인해 5,000개의 핵폭탄과 170개 이상의 대륙간탄도탄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핵무기 관리가 중요했던 미국은 넌-루가 법안을 통해 미국이 경제적 지원을 하고 소련 시절 핵무기를 폐기하게 된다. 1994년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안전보장각서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확인하고 미국과 영국이 안전을 보장한다.’라는 약속을 믿고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길 뿐 아니라 모든 핵시설과 핵물질을 폐기한다.

비핵화의 약속을 지킨 우크라이나는 딱 20년이 되는 시점에 러시아에 의해 크림반도를 합병 당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동쪽 지대인 돈바스크(도네즈크 donetsk와 분지 Basin의 합성어)에서는 러시아 군대의 지원을 받아 친러시아 성향의 루한스크와 도네스크가 각각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포한다. 이 지역은 석유와 석탄 매장지역이면서 우크라이나 경제의 8%를 책임지는 요충지다. 이 지역의 분리를 거부한 우크라이나는 내전에 빠지게 된 것이다.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가 친서방화하는 것이 지정학적으로 불편한 러시아는 이 지역에 8만 명이상의 병사와 270대 이상의 전차로 지원하고 있다.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러시아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이 지역을 우크라이나 군대가 되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는 NATO 가입을 희망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 국가 때문에 러시아와 전쟁을 불사할 생각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중재자 독일과 프랑스가 나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함께 2015년 정전을 위한 민스크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분쟁은 아직 진행중이다. 현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지만 내전 종식은 요원해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한국 핵 보유’나 ‘북한 핵 포기 불가론’을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말하고 싶은 것은 21세기 빛나는 세계화와 속도를 알 수 없는 정보통신혁명 시대에도 권력과 지정학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약자가 역사적 비극의 고리를 끊는 것이 어렵다. 미녀들로 유명한 우크라이나의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안으로 고통 받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사활적 이익이 충돌하는 국제정치의 민낯을 목도하고 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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