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미 탈난, 변호사시험 오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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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이미 탈난, 변호사시험 오탈제
  • 이성진
  • 승인 2020.12.17 18:52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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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이성진 기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수료한 자만이 응시할 수 있는 변호사시험에는 또 다른 장벽이 있다. 타 자격시험에서는 볼 수 없는 ‘5년 내 5회’만 응시할 수 있는 소위 ‘오탈(五脫)’ 제도라는 게 있다. 변호사시험법 제7조(응시기간 및 응시횟수의 제한)는 “로스쿨의 석사학위를 취득한 달의 말일부터 5년 내에 5회만 응시할 수 있다. 다만 석사학위취득 예정자의 경우 그 예정 기간 내 시행된 시험일부터 5년 내에 5회만 응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다만 “로스쿨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또는 취득 예정자로서 시험에 응시한 후 병역법 또는 군인사법에 따른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경우 그 이행기간은 포함하지 않는다”며 제2항에서 유일한 예외사항으로 들고 있다.

무제한 응시로 발생하는 국가인력의 낭비, 응시인원의 누적으로 인한 시험합격률의 저하 및 로스쿨의 전문적인 교육효과 소멸 등을 방지하고자 도입한 것이다. 로스쿨 제도 배경 중 하나가 과거 사법시험에서 불거진 고시낭인 예방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고려하면 고개가 끄덕여 질 수 있다.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부터 올 초 제9회 변호사시험까지 이를 통해 영구적으로 응시자격을 박탈당한 이가 891명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 2016년 제5회 시험에 오탈자가 첫 발생한 것을 감안하면 불과 다섯 살 밖에 안 된 제도다. 문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그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수험생 당사자 또는 그 직계존비속의 중병, 임신‧출산, 가계곤란, 시험당일 갑작스런 배탈 등 병역이행을 제외한 어떠한 사유도 허용되지 않는, 소위 ‘무조건 다섯 번 치고 달려야 하는’ 잔인한 게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891명의 오탈자 중 사연이 없는 이가 과연 있을까. 한 오탈자는 재학 중에는 갓 태어난 막내가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숱한 수술에 학업에 전념할 수도 없었고 부인마저 갑상선과 림프암에 걸려 사면초가에 직면했다. 졸업 후에도 지속적인 병간호와 가정을 꾸리느라 그의 심신은 극도로 지쳐갔고 변호사시험에 대한 부담은 그를 더욱 옥죄어 갔다. 그는 결국 ‘5년 내 5회’라는 족쇄에 묶였고 하루하루 지옥과 같은 삶을 누리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숱한 민원에 이어 헌법재판소 위헌심판까지 청구했지만 헌재 역시 “로스쿨 제도 취지”를 들며 이들의 읍소를 여러 번 외면했다. 입법적으로 해결하자며 최근에는 로스쿨 석사 학위 취득 후 임신이나 출산을 한 경우 임신기간과 임신 종료 후 3개월의 기간을 응시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변호사시험법 개정안이 2건이나 발의됐다. 지난 회기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종료로 폐기된 바 있다.

기자가 늘 품는 의문이 있다. ‘예외 사항을 두려면 어디까지 둘 것인가, 과연 입법적으로 그게 가당키나 할까’라는 의구심이다. 시험전날 갑작스런 사고로 수족을 쓰지 못해도,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현행법상 이를 구제할 방법이 전무하다. 혹여,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냐며 선심을 쓰다간 형평성 시비로 쑥대밭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이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시험을 강행할 수밖에 없는 것도 따지고 보면, 1회차 유효 응시기간인 2월 말까지 무조건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1월 초나 2월 하순이나 코로나확산이 여전하면 한 달가량 연기한 들 의미가 없다는 것도 한몫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무식한 제도인 듯하다. 낭인방지, 교육효과, 합격률제고 등의 명목을 위한 오탈제는 결국 과거 사법시험 폐지론의 당위론을 위한 빛 좋은 개살구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닌지 곱씹어 봤으면 한다. 특히 국가가 왜 여기에까지 깊숙하게 개입하고 간섭을 해야 하는지, 정무적 판단이 아닌 개개인의 행복추구권이라는 본연의 헌법적 가치로 접근했으면 한다. 오탈은 경험하지 않아야 할 제도지만 경험하게 되면 곧 ‘사망’ 선고다. 법학‧비법학사 비율, 자교‧타교 비율, 일반‧특별전형 비율, 지역대학출신 비율 등 입시과정에서부터 속병을 앓아야 하는 로스쿨 제도다. 여기에 더해 변호사시험 오탈제도까지, 참 누더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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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2020-12-19 03:56:54
난 올해 마지막 시험을 본다. 그런데 고령의 아버지가 코로나 확진으로 중증 환자 병실에 계신다. 어머니와 나는 자가격리 중이다. / 난 '오탈자' 제도를 이해할 수 없다. 만보 양보해도, 왜 '5년'으로 제한하는가? '5번'으로 제한해도 되는데. 자기 사정에 맞게 5회 볼 수 있다면, 난 올해 시험은 안 보고, 내년에 시험을 볼 거다. / 아버지가 위중하시다. 어머니도 코로나 확진자 일 수 있다(2주후 재검사). 그런데 만사 제치고 변호사 시험 준비를 해야 하나?

ㅇㅇ 2020-12-18 12:18:27
누더기.. 현 로스쿨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네요...

미친 오탈제 2020-12-18 14:17:05
무제한 응시로 발생하는 국가인력의 낭비, 응시인원의 누적으로 인한 시험합격률의 저하 및 로스쿨의 전문적인 교육효과 소멸 등을 방지하고자 도입" 이건 다 핑계인거 아시죠?
오탈제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기득권을 대표하는 변협의 온갖 난리로 지금도 가뜩이나 자격시험이라는 로스쿨 변호사시험 도입취지랑 다르게 합격률 50% 언저리로 겨우 틀어막고 있는데, 오탈제 폐지해서 변시 응시인원이 늘어나면 합격률도 높여야 하기 때문에 기득권층 밥그릇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위에 그럴듯한 오탈제 도입취지 중 "응시인원 누적으로 인한 시험합격률 저하"는 합격률 자체를 높이면 단번에 해결되는데 변협이나 기득권층은 그걸 절대 용납 할 수가 없거든요.

ㅇㅇㅇ 2020-12-18 15:03:00
예비시험 도입해서 로스쿨 못가는 사람도 시험볼 수 있게 해주고 5탈자들도 구제해주면 얼마나 좋아....

John 2020-12-19 11:40:35
시험보다가 다 뒤지라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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