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괜찮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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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괜찮지 않습니다
  • 조미연
  • 승인 2020.12.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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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최근 공감에서 대리한 장애인 인권 분야 두 개 사건의 판결 선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집을 나가 실종된 지 33년 만에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정신 장애인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항소심, 다른 하나는 피한정후견인 정신 장애인을 금융거래에서 차별한 우체국에 대한 차별중지청구소송의 항소심입니다. 두 사건 모두 일부승소 했습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배상책임 및 우체국의 장애인 차별행위에 대한 중지청구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괜찮지 않습니다.

우선, 수십 년 뒤에야 정신병원에서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정신 장애인의 국가배상청구소송 판결은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32년이 넘는 동안의 장기수용에 대하여 국가에 상징적으로 1억 원의 위자료를 청구했습니다. 1심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신원 및 지문조회 의무 등 위반책임을 인정하여 2천만 원을 인용하였고 항소심은 1심 판결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1심은 위자료를 산정하면서 32년이 넘도록 원고가 수용돼있던 시설에 국가로부터 지급된 지원급여 등을 고려합니다. 그 급여가 원고를 보호·치료하는데 쓰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1심은 전체 청구금액 1억 원 중 인정된 2천만 원(20%)의 형식적 비율에 따라 이 사건 소송비용은 원고가 ‘80%’, 피고(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20%를 부담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부랑인을 단속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납치, 감금하고 시설에 몰아넣어 갖은 인권침해가 발생했던 형제복지원 사건 등은 최근 검찰총장이 비상상고하여 국가적 차원의 과거사 청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법원은 24살부터 시설에 수용된 원고가 백발이 되어 가족을 찾게 된 이 사건에서 원고의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던 기회를 박탈하고 시설증후군과 인지능력저하를 야기했으며 조현장애를 만성화시킨 장기수용 ‘시설의 이익’을 원고의 위자료를 산정하는데 반영한 것입니다. 원고와 가족들에게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되었으니 잘되었다고 위안삼기에는 가슴 깊은 곳에서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우체국의 정신장애인 차별사건은 어땠을까요? 일부 재산관리에 대해 법원으로부터 한정후견 결정을 받은 정신장애인 원고들은 재판이 진행되는 수년 동안 우체국의 불합리한 금융거래 제한으로 인해 병원 진료비를 체크카드로 결제할 수 없었고 최소한의 생활비도 ATM기가 아니라 은행 창구에 가서 인출해야했습니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우체국의 불합리한 장애인 차별행위가 인정되어 법원으로부터 시정명령이 내려졌고 원고들에 대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었으나, 법원은 우체국의 원고들에 대한 금융거래 제한, 장애인 차별행위의 피해가 중대하니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임시적으로 차별행위를 중지해 달라고 청구한 원고의 신청에 대해서 우체국이 스스로 차별행위를 시정하기까지 차일피일 판단을 미루어 결국 원고가 임시조치신청을 취하했습니다.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은 원고가 청구한 3백만 원 중 1심에서 50만 원이 인정되어 그 금액의 과소함을 다투었으나, 항소심에서 도리어 20만 원으로 감액되었습니다. 판결문에는 위자료 감액의 사유가 여러 방면에서 한 아름 기재되어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금융거래 매뉴얼을 제정해 달라는 청구는 기각되었습니다. 한정후견 결정을 받은 정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법원의 판단을 넘어 월 거래액 총합 100만 원 이하의 경우, ‘대면’거래 해야 하고 거래액 총합 300만 원 이하의 경우, 후견인을 ‘동행’해야만 한다는 우체국의 자의적인 금융거래 차별행위는 소송과정에서 이미 시정됐으나 앞으로도 일선 은행 창구에서 만연하게 발생하는 장애인 차별을 바꾸어 나가려면 매번 지난한 소송의 과정으로 다투어야만 하는가 싶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위 두 사건 판결문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문제들을 보다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괜찮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장기수용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피해자인 원고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우체국은 장애인을 차별한 것이 아니라 ‘보호’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다가 다른 은행의 사례를 보이니 그제 서야 슬쩍 지침을 바꾸어 차별을 중단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정신 장애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 속에 피해자들은 최후의 보루로써 법에 도움을 요청해 옵니다. 그런데, 그 법을 적용하는 우리사회 법대 위의 운동장은 그 누구의 생각보다 기울기가 큰 것 같습니다. 시설에 수용되어 지낸 32년의 삶이 2천만 원의 위자료를 받는다고 자유롭게 살았을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수년간 은행 창구안팎에서 비장애인들과 달리 차별 당했던 시간이 20만 원을 통해 다시 차별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고된 법적 다툼의 끝머리에서 소송 관계인 모두가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도래하길 바래봅니다. 피해자의 피해를 금전으로 다 위로할 수 없지만, 최소한 공정한 법의 적용으로 불법행위에 대한 피해사실이 인정돼야 합니다. 장애인의 시선에서 장애인 차별행위가 판단되고 소송 상대방의 책임이 법원의 구속력 있는 판결로써 분명히 밝혀져야 합니다. 법적 근거를 핑계로 삼기에 앞서 소송에서도 함께 걸음 할 수 있는 날을 그리며 글을 마칩니다.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0년 12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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