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티고네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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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티고네의 법
  • 최용성
  • 승인 2020.12.0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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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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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는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라에 역병이 돌아 민심이 흉흉해진다. 오이디푸스는 해답을 찾아보려고 처남인 크레온을 델포이 신전에 보낸다. 아폴론의 메시지는 선왕(先王)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찾아 복수하여야만 이 역병이 끝난다는 것.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의 살해범을 잡아 눈을 멀게 하여 복수하겠다고 맹세한다.

라이오스가 통치하던 테베에 스핑크스가 나타나 수수께끼를 못 푸는 사람들을 잡아먹는 참사가 벌어졌었다. 라이오스는 신탁을 들으려고 델포이 신전에 가는 길에 강도떼에게 살해당하였고 한다. 이에 왕비 이오카스테는 스핑크스를 물리치는 영웅에게 테베의 왕좌를 바치고 자신은 그 왕비가 되겠다고 공언하였다. 마침 테베를 지나가던 코린토스의 왕자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에게 용감히 도전하여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무엇인가?”라는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었고, 스핑크스는 수치심을 못 이겨 벼랑 아래 투신하여 죽었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영웅이 되었고, 라이오스의 왕비 이오카스테와 사이에 2남 2녀를 두게 되었던 것.

우여곡절 끝에 놀라운 진실이 드러난다.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는 아들을 하나 두었는데, 이 아이가 자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한다는 무서운 신탁이 내려졌다. 그러자 라이오스는 부하에게 아기를 죽이라고 명하였지만, 차마 아기를 죽이지 못한 부하는 아기의 발을 묶어 코린토스에 있는 숲 속 나무에 걸어놓는다. 양치기가 아기를 발견하고 왕에게 데려갔고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의 왕자로 무럭무럭 자랐다.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미래가 궁금해 신탁을 들으러 갔다가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범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피하려고 코린토스를 떠나게 된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길에서 무리를 이끌고 지나가던 지체 높아 보이는 노인과 마주쳐 누가 먼저 갈지 시비가 붙게 된다. 요즘으로 치면 좁은 도로에서 서로 우선 통행을 주장하다가 큰 싸움이 벌어진 셈인데, 예나 지금이나 분노조절 장애가 큰 문제이다. 무력 충돌이 일어나자 혈기왕성한 오이디푸스는 노인 일행을 모조리 죽인다. 마부 한 사람만 빼고. 오이디푸스가 죽인 사람은 누구였을까? 운명을 미리 알고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게 되는 그런 처절한 이야기이다.

진실을 마주한 오이디푸스는 맹세한대로 스스로 눈을 찔러 시각을 잃고 왕위에서 물러나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딸 안티고네와 함께-진정 효녀이고, 엄청난 확신과 의지를 갖춘 인격임을 알 수 있다-오랜 세월 방랑을 한다. 그나마 다행히 아테네에서 테세우스의 도움을 받아 운명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일생을 마친다. 그리스 신화의 이 비극적 이야기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3부작과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널리 세상에 알려졌다.

그 다음 이야기가 더 있다. 소포클레스의 3부작의 마지막인 <안티고네>이다. 안티고네에게는 쌍둥이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있었다. 오이디푸스가 왕위에 물러선 다음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는 1년마다 번갈아 가며 테베를 통치하기로 협의하였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권력을 나누기가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에테오클레스가 1년이 지나도 통치권을 넘기지 않자 폴리네이케스는 외세를 끌어들여 테베를 공격한다. 공방전 끝에 쌍둥이 형제 모두 죽고 말자 오이디푸스의 처남이자 외숙부인 크레온이 왕위에 오른다. 크레온은 테베를 지킨 에테오클레스에 대하여는 극진한 장례의식으로 예우를 다 하였지만, 폴리네이케스는 테베의 적이라면서 시신을 들판에 버려 짐승의 먹이로 삼게 하면서 행여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법령을 포고한다. 이때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거두기 위하여 들판에 가서 고대 그리스식 장례를 치른다. 격노한 크레온은 조카이자 조카손녀인 안티고네를 감옥에 가둔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네가 어찌 감히 법을 위반하느냐’라고 준엄히 묻는다. 그러자 안티고네는 당당하게 ‘제우스 신은 그런 법을 내게 내리지 않았다, 정의의 신은 인간 세상에 그런 법을 내놓지 않았다, 글로 쓰인 법이 아니라 확고한 하늘의 법이 있다’고 답한다. 안티고네가 말하는 법은 사람이 만든 법을 뛰어넘는 신의 법이 있다는 것, 자연법에 위반되는 실정법은 정의에 반하다는 것, 실정법에 불복종하거나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안티고네의 용맹한 발언은 인권의 발전을 이루는 생각의 출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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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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