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합 “명예훼손의 전파가능성 법리, 여전히 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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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합 “명예훼손의 전파가능성 법리, 여전히 타당”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0.11.24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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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으로 소수에 사실 유포해도 명예훼손 가능”
표현의 자유와 조화 위해 형법 제310조 넓게 해석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명예훼손죄의 공연성과 관련해 전파가능성 법리의 타당성을 확인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피고인 A는 피해자 B의 집 뒷길에서 피고인 A의 남편 甲과 乙이 듣는 자리에서 피해자 B에게 “저것이 징역 살다온 전과자다” 등이라고 큰 소리로 말해 피해자 B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9일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인정하는 이른바 전파가능성의 법리에 관한 기존의 대법원 판례가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하다”며 “이 법리를 적용해 피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죄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단 역시 타당하다”며 피고인 A의 상고를 기각(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도5813 전원합의체)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공연히’의 의미에 대해 대법원은 대법원 1968. 12. 24. 선고 68도1569 판결 이후 “개별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유포했더라도 이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겨우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인 인정된다”는 전파가능성 법리를 일관되게 따르고 있다.
 

전파가능성 법리에 대해 객관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아 적용에 자의가 개입될 여지가 있으며 결과책임을 인정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대법원 다수의견은 “전파가능성 법리를 제한 없이 적용할 경우 공연성 요건이 무의미하게 되고 처벌이 확대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전파가능성의 구체적·객관적인 적용기준을 세우고, 적시의 상대방과 피고인이나 피해자와의 관계에 따라 전파가능성을 부정하는 등 판단기준을 유형화하면서 전파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함을 전제로 적용함으로써 공연성을 엄격하게 인정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이어 “명예훼손죄는 추상적 위험범으로서 침해의 결과를 요하지 않고 명예를 훼손할 위험성이 발생한 것으로 족한 이상 소수의 사람에게 발언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초래한 경우에도 공연히 발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공연성의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시대 변화나 정보통신망의 발달에 따라 그 개념과 내용이 달라질 수 있고 현재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대부분의 의사표현이 이뤄지며 이를 이용한 명예훼손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전파가능성’ 법리의 의의를 찾았다.

다수의견은 비대면성 등을 본질적 속성으로 하는 정보통신망의 특성과 정보의 무한 저장, 재생산 및 전달의 용이성 등으로 인해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은 ‘행위 상대방’의 범위와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명예훼손 내용을 소수에게만 보냈음에도 행위 자체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형성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게 된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행위에 대해 상대방이 직접 인식해야 한다거나 특정된 소수의 상대방으로는 공연성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법리를 내세운다면 해결기준으로 기능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

“특정 소수에게 전달한 경우에도 그로부터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 대한 전파가능성 여부를 가려 명예가 침해될 일반적 위험성이 발생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 실질적인 공연성 판단에 부합되고 공연성의 범위를 제한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다수의견의 판단이다.

이에 반해 김재형, 안철상, 김선수 대법관은 “전파가능성 법리는 명예훼손죄의 가벌성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해 죄형법정주의에 금지하는 유추해석에 해당하고 수범자의 예견가능성을 침해해 행위자에 대한 결과책임을 묻게 된다”며 기존 대법원 판례를 폐기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대법관은 “전파가능성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이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체적 적용에 자의가 개입될 소지가 크고 전파가능성 개념은 공범의 법리를 오인한 결과이며 이를 통해 공연성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외국의 입법 추세와도 동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전파가능성 법리는 학계에서도 오랜 논쟁이 있어 왔으나 대법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온 법리로서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함을 확인했다”고 의의를 전했다.

나아가 “기존 판례의 타당성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법원 판례가 그 동안 발전시켜 온 전파가능성 법리를 체계화하고 구체화함으로써 향후 재판실무에서 공연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실천적인 지침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표현의 자유와의 조화를 위해 전파가능성 법리에 대한 제한 법리를 추가하고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조각사유를 넓게 인정하는 새로운 법리를 판시”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개인의 명예가 광범위하게 침해되고 회복이 불가능해지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개인의 인격권을 보호해 줄만한 다른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 개인의 명예, 인격권 및 사생활 보호와 표현의 자유와의 균형 있는 비교형량을 통해 전파가능성 법리를 유지하면서 그 제한 법리를 발전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며 “외국과 달리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현행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위법성조각사유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법 제310조의 위법성조각사유와 관련해서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 ‘공공의 이익’을 보다 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법원은 “공공의 이익관련성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공공의 관심사 역시 상황에 따라 쉴 새 없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적인 인물, 제도 및 정책 등에 관한 것만을 공공의 이익관련성으로 한정할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보였다.

“사실적시의 내용이 사회 일반의 일부 이익에만 관련된 사항이라도 다른 일반인과의 공동생활에 관계된 사항이면 공익성을 지니고, 개인에 관한 사항이라도 그것이 공공의 이익과 관련돼 있고 사회적인 관심을 획득한 경우라면 직접적으로 국가, 사회 일반의 이익이나 특정한 사회 집단에 관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형법 제310조의 적용을 배제할 것은 아니”며 “사인이라도 그가 관계하는 사회적 활동의 성질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헤아려 공공의 이익에 관련되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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