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당신에게 강제 불임수술을 강요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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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당신에게 강제 불임수술을 강요한다면
  • 장서연
  • 승인 2020.11.1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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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대법원은 2017년 국가가 한센병 환자의 치료 및 격리수용을 위하여 운영‧통제해 온 국립 소록도병원에서 시행한 정관절제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침해행위로서 그에 관한 동의 내지 승낙을 받지 아니하였다면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아니할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이는 “한센인들의 임신과 출산을 사실상 금지함으로써 자손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인격권 및 자기결정권, 내밀한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7. 2. 5. 선고 2014다230535 판결)

한센인, 장애인 등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 정책은 국가에 의하여 자행된 참혹하고 끔찍한 인권침해였습니다. 그런데 국가에 의한 강제 불임수술이라는 인권침해가 지금은 과연 종식이 되었을까요. 21세기가 되어서도 강제 불임수술을 강요당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심지어 대법원의 예규로 “생식능력을 상실”하였을 것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 가족관계등록예규 제550호」 제6조 제4호)

바로 트랜스젠더 집단입니다. 트랜스젠더는 가족관계등록부의 성별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생식능력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거나, 법적 성별 변경을 포기하거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사실상 선택권이 없는 강제 불임수술을 강요하는 정책입니다.

21세기에도 버젓이 시행되고 있는 강제 불임수술 정책.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대법원은 1996년 이미 사람의 성별을 결정하는 기준은, 성염색체와 생식기‧성기 등 생물학적 요소뿐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의 귀속감 및 사회적으로 성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 즉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대법원 1996. 6. 11. 선고 96도791 판결, 대법원 2006. 6. 22. 자 2004스42 결정)

대법원도 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불일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법제도는, 출생시에 바로 성별을 신고하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외부성기로 가족관계등록부의 성별을 기재하게 됩니다. 여기서 대법원의 결정과 모순되는 제도적 불일치가 발생하며, 이는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국가의 정책입니다.

이러한 제도적 흠결로 인하여 피해를 입고 고통을 당하는 것은, 불공평하게도 소수자 집단입니다. 국가는 이러한 제도적 불일치를 개선하거나, 이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개인들의 성별정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야 하지만, 오히려 이들에게 맞지 않는 기준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인권침해라는 인식도 없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우리는 소수자에게 맞지 않는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고,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간과할 때가 있습니다. 동성애자에게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기준을 적용하거나, “동성애 전환치료”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은 성소수자에 대한 “전환치료”가 끔찍한 인권침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있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개념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 개인들에게 본연의 생식능력을 제거하고, 외부성기 등을 포함한 신체외관을 비트랜스젠더의 신체외관과 흡사하게 바꾸라는 것이 과연 정당한 요구일까요?

세계적인 추세는 성별정정을 위해서 생식능력 제거, 강제적 의료 조치와 같은 가혹한 요건을 요구하는 것은 신체의 온전성, 자기 결정권,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삭제하고 있습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11년에 이미 ‘개인의 생식능력이 영구적으로 제거하는 수술을 요구하는’ 법은 성적 자기결정권, 신체적 온전성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고, 유럽인권재판소는 2017년 “원치 않는 불임수술 또는 불임을 초래하는 치료를 받을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은, 유럽인권협약에서 정한 사생활의 존중, 신체의 완결성에 관한 권리의 완전한 향유의 포기를 성별 변경의 조건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에게 불가능한 딜레마를 안기는 것으로 협약 위반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법원은 여전히 이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없습니다. “자궁난소 적출술을 받지 않았으므로 여성으로서 신체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신체상 외관 등을 고려할 때 아직 여성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짧은 한 줄로 표기된 법원의 기각 결정문을 받은 트랜스젠더 개인들은, 오늘도 본인이 원치 않거나 할 수 없는 불임수술을 강요당하는 딜레마에 처해있습니다. 이것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방관하고 있는 사회 안에서요.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0년 11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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