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홈즈의 어머니는 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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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홈즈의 어머니는 왜 사라졌을까?
  • 최용성
  • 승인 2020.11.06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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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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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형제로는 일곱살 위인 형 마이크로프트가 있다. 마이크로프트는 셜록보다 더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을 가진 사람인데, 활동적이지 못해서 탐정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에 셜록은 왓슨에게 마이크로프트가 정부 부서의 회계감사를 맡고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중에 “때로는 형이 곧 영국 정부”라고 한 걸 보면 마이크로프트는 단순한 회계감사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역을 맡고 있었던 듯하다.

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에 나타나는 셜록 홈즈의 형제 이야기는 대체로 이 정도이다. 하지만 셜록 홈즈는 형제가 마이크로프트뿐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여기서 대담한 상상력이 펼쳐진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존재가 셜록과 마이크로프트의 여동생인 에놀라 홈즈(Enola Holmes)이다. 미국 작가 낸시 스프링거가 2006년에서 2010년 사이에 에놀라 홈즈를 주인공으로 하는 6편의 소설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에놀라 홈즈는 여성이라는 강점을 살린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 그리고 실천력으로 사건의 비밀을 해결하는 활약을 보인다. 이 중 첫 작품인 <사라진 후작>을 기반으로 2020년에 영화가 나왔다.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 역사적 정확성 유무에 관하여 여러 가지 논쟁이 있지만, 우리가 관심을 가질 사건은 홈즈 남매 어머니의 실종이다. 에놀라와 둘이 살고 있던 홈즈 남매의 어머니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 홈즈 남매의 어머니는 왜 사라졌을까? 에놀라는 그 비밀을 풀기 위하여 대영제국의 중심부 런던으로 향한다.

에놀라 홈즈가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해가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던 영국은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1893년 당시 영국의 자치령이던 뉴질랜드에서 케이트 셰퍼드가 주도한 평화적 운동의 결과 최초로—적어도 근대국가 차원에서—여성 참정권이 인정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끈 지도자는 에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 1858~1928)였다. 남편 조지와 세 딸 등 모든 가족들이 여성참정권 운동(suffragette)에 헌신하였는데, 처음에는 케이트 셰퍼드처럼 서명과 청원 같은 평화적 방법으로 운동을 하였다. 그러나 영국 의회는 참정권의 범위를 확대하는 법개정을 하면서도 여성 참정권에 대하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운동이 과격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결국 1903년 에멀린의 집에서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이 출범한다. 그때부터 운동가들이 무술을 배우고, 런던 시내의 건물 유리창을 깨거나, 국립미술관의 작품을 손상시키거나, 전철, 심지어 고위 관료의 신축 중인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하는 식의 강경투쟁이 벌어진다. 뒤로 물러설 수 없음을 보이기 위함이었을 게다. 운동가들은 구금이 되면 단식투쟁을 벌였는데, 경찰은 호스를 이용하여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여론의 비난으로 강제 음식투입은 중단되었지만, 탄압용 법을 제정하여 운동가들을 구금하고 석방하고 다시 구금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도 1908년 처음 수감된 이후 1913년에만 열 두 번이나 잡혀갔다가 석방될 정도였다. 에텔 스마이스(Dame Ethel Smyth, 1858-1944) 같은 훌륭한 작곡가도 운동에 참여하여 체포될 정도로 그 열기는 뜨거웠다.

가장 비극적인 사태는 1913년에 일어났다. 여성사회정치연맹 회원인 에밀리 데이비슨이 경마대회에서 질주하던 국왕 조지 5세의 말을 겨냥해 뛰어나갔다가 충돌하여 사망한 사건이다. 에밀리 데이비슨의 겉옷에는 “여성에게 참정권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그녀가 뛰어나가기 전에 같은 구호를 외치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일로 여성들의 분노가 절정에 달하여 장례식에는 거대한 시위행렬이 따랐다. 그 이후 정부와 서프러제트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꼼짝도 하지 않던 정부와 의회를 움직인 결정적인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한 국민단합의 필요성이었다. 1918년 30세 이상인 여성 그것도 일정한 재산을 보유한 여성에게만 참정권이 허용되었다. 불완전한 승리였지만 이를 일단 받아들인 에멀린은 그로 인하여 운동의 동지였던 딸들이 어머니와 결별하는 불행을 맛본다.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928년이고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의 살아있는 역사인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불과 며칠 전에 거짓말처럼 눈을 감았다.

에놀라 홈즈가 살아가야 할 불평등한, 부정의로운 세상에서 어머니는 딸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여야 할까? 참정권은 거저 주어진 권리가 아니다. 떄로는 계급투쟁, 때로는 여성해방투쟁을 통하여 힘겹게 획득한, 많은 이의 피와 땀이 스며있는 권리이다. 우리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인 박정희 유신독재나, 전두환 군사독재 시대에는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없었다. 어수선한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참정권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해본다.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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