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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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 전쟁
  • 신희섭
  • 승인 2020.10.2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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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전쟁은 구시대 유물이다.” 많은 자유주의자와 탈근대 이론가들의 주장이다. 탈냉전 이후 국가 간 전쟁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게다가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공격해 국가를 몰락시킨 사례가 없다. 반면 내전(civil war)이 더 빈번하게 발생하며, 더 오랜 시간 싸우고, 더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기 때문에 오히려 국가 간 전쟁보다는 내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짜 전쟁이 구시대적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캅카스(코카서스 Caucasus)산맥에 있는 두 나라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9월 27일 전쟁에 돌입하였다. 두 국가가 전쟁하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단순하다. 아제르바이잔의 영토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때문이다. 영토상 아베르바이잔에 속한 이 지역은 실질적으로는 아르메니아가 지배하고 있다.

과거 이 지역에 있던 카라바흐 왕국은 지배층은 아제르바이잔인이고 대다수 피지배층은 아르메니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러시아에 합병된 이 지역은, 소련이 아제르바이잔을 편입하고 나서, 1923년 아제르바이잔에 편입시켰다. 기독교를 믿고 아르메니아인들이 중심인 나고르노 카라바흐지역이 이슬람교를 믿고 터키와 같은 민족인 아제르바이잔에 편입되면서 갈등의 씨앗이 잉태된 것이다.

문제는 소련의 지배가 끝나가는 것이었다. 1988년 소련이 약화하던 시기에 인구의 80%가 아르메니아인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는 아르메니아에 편입을 주장했다. 당연히 아제르바이잔은 거부했을 뿐 아니라 집단학살로 대응했다. 분노한 아르메니아인들은 1991년 소련 붕괴 후엔 아예 독립을 선언했다. 아제르바이잔은 다시 강력히 거부했다. 결국, 1992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이 지역을 두고 전쟁에 돌입한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아르메니아가 승리했고, 현재와 같이 실질적으로는 아르메니아가 지배하는 지역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전쟁의 내부를 좀 더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다. 인구 천만의 아제르바이잔은 절치부심하여 인구 296만의 아르메니아에 복수를 계획해왔다. 5만 6천 명의 육군과 7,900명의 공군과 37대의 전투기를 보유한 아제르바이잔은 전체 군인 44,900명과 1,100명의 공군이 15대의 공군기를 보유한 아르메니아에 대해 전쟁을 시도한 것이다. 2014년 아제르바이잔은 21억 불의 군사비를 사용했고, 아르메니아는 4억 6천만 불의 군사비만을 사용했다. 이런 지표들로 볼 때 두 나라는 확실히 약소국이다. 힘은 부족하지만 100년의 원한은 전쟁을 개시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여기서 결론. 전쟁은 국력이 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두 가지 지정학이 주변 국가들을 불러들인다. 첫째, 이 지역이 석유와 천연가스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복잡한 국경을 가로지르는 전략적 이익이다. 아르메니아는 같은 기독교 계열의 러시아로부터 지원과 보호를 받고 있다. 과거 1992년 전쟁에서 힘이 더 약한 아르메니아가 승리한 것도 러시아의 지원 덕이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의 아래에 있는 아르메니아를 지원함으로써 캅카스 3국인 그루지야와 아제르바이잔마저 견제하고, 더 나가 터키까지 견제할 수 있다. 터키는 같은 민족인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면서 지역 내 영향력 확대하고 있다. 그러자 터키를 견제하려는 이라크와 시리아가 아르메니아의 편에 섰다. 또한,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지역 내 팽창정책을 사용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독일과 프랑스도 아르메니아를 지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르메니아의 서쪽 국경을 마주한 터키는 1915년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해 아르메니아에 원수다. 또한, 아제르바이잔의 남쪽 국경과 접한 이란은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를 반 정도 빼앗은 구원(舊怨)이다. 그래서 이란은 같은 이슬람국가지만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하기도 쉽지 않다.

이 전쟁은 국력 크기가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주변국들의 지정학 계산과 개입이 언제든지 전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게다가 이 약소국간 전쟁에서도 양국은 드론을 전투에 사용하고 SNS를 통한 심리전을 수행하고 있다. 포격과 같은 전통적인 전쟁 수행과 함께 하이브리드 전쟁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힘은 약해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2020년 10월 10일 양국은 러시아의 중재로 휴전에 합의했다. 하지만 휴전 협정 직후 다시 포격이 개재되었고, 10월 18일 휴전에 대해 재합의했다. 영토문제는 그대로 남아있고, 지정학 조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이 휴전이 얼마나 갈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안타깝지만, 전쟁은 구시대의 유물만은 아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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