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0-22 18:27 (목)
[칼럼] 이른바 강의의 ‘수험적합성’이라는 것에 대해
상태바
[칼럼] 이른바 강의의 ‘수험적합성’이라는 것에 대해
  • 송기춘
  • 승인 2020.09.25 11:04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br>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전문대학원(‘법전원’, ‘로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다양한 유형의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선생의 도움이 없이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선생의 도움이 정말 필요하고 또 큰 도움이 되는 이들도 있다. 후자의 경우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보람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선생으로부터 하나하나 도움을 받으면서 혼란스러웠던 부분이 정리되고 갈피를 잡을 수 있는 것도 학생으로서는 복이다. 또한 선생으로서도 연구와 교육에 도움이 되는 학생을 만나는 것이 복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말처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상관적인 것이지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학생이 선생을 믿고 따르고 선생이 열정적으로 마음껏 교육할 수 있는 학교는 좋은 학교이다.

법전원에 오는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고, 때로는 사회생활의 경험이 많은 경우도 있어서 법전원의 선생-학생 관계는 중·고나 대학에서의 그것과 다르다. 사회 어디에서 만나도 서로 예의를 갖추어 대해야 하는 사이이기도 하다. 초·중학교나 대학교라고 이 관계의 실질이 다른 것도 아니겠지만, 특히 나이가 더 든 사람 사이의 관계는 존중과 예의가 필수이다. 법전원의 사제(?)관계는 석·박사학위를 받기 위한 대학원에서의 관계와도 다르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 이미 정립이 된 이들도 많기 때문에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해야 하는 경우는 선생은 편향적이거나 당파적이 되지 않도록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간혹 학생들로부터 수험에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학기말의 강의평가에서 한 두 명은 꼭 이런 얘기를 한다. 게다가 학교의 변호사시험 성적이 좋지 않고 합격이 불안해지면 이러한 요구는 학생회 차원에서 제기되기도 한다. 편치 않은 감정이 뒤섞인 경우 수업은 아예 ‘시간 때우기’나 ‘학점 채우기’용일 뿐이라고까지 폄하된다. 나는 항상 고민한다. 과연 학생들이 원하는 ‘수험에 적합한 강의’는 무엇인가? 이들은 왜 내가 하는 강의가 시험준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러한 불안의 원인이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이 낮은 데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칫 시험에 낙방하여 3년 또는 8년 동안의 투자가 허무해질 수 있다는 학생들의 우려가 작지 않다. 그래서 시험에 합격할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강의가 절실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은 1학년 때부터 시험을 염두에 두고 강의하고, 시험 답안을 작성하는 데 도움을 받아야 시험준비에 도움이 되는 강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헌법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헌법이 다루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헌법적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헌법공부를 할 수 있는 기초라고. 과도하다 싶을 비유를 들자면, 한 손에는 법전을, 한 손에는 신문을 들어야 헌법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민법 공부에 민법적 사안에 관한 관심과 열정이 필요하듯이, 헌법공부에도 헌법적 사안에 대한 관심과 이 사안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한 것이라고. 헌법공부를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헌법적 사안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고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크게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을 달리 정의하자면, 헌법은 인간, 사회, 국가에 대한 규범학이다. 그래서 헌법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이는 다가서기 쉽지 않은 법학 분야이다. 지속적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도록 하고 국가의 폭력성을 들춰내는 것도 헌법적 고민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적으로 생각하는 힘은 여기서 나온다. 생각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다.

이런 것 없이 헌법을 배우는 첫머리부터 시험에 답안은 어떻게 쓸 것인지만을 말하고 여기에 맞춰 학습하는 것은 헌법공부를 그르치는 것이다. 더구나 수업을 시간 때우기나 학점 채우기로만 대하는 이들이 수업을 준비하기 위한 준비를 제대로 했을 리도 만무하다. 선생을 믿고 따라오지 못하면서 혼자 알아서 공부하던 사람이 수업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니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ㅇㅇ 2020-09-28 22:13:44
그럼 고민을 더 하셔야겠네요. 전혀 로스쿨생들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왜 강사수업을 듣는지조차 모르시고 계시군요.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