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행정부의 판사 공격은 사법부 독립 침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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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행정부의 판사 공격은 사법부 독립 침해다
  • 법률저널
  • 승인 2020.08.27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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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면서 지난 15일 광화문 집회에서 주최 측의 손을 들어준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을 두고 정부와 여당의 비판이 이어졌다. 집회금지를 막은 판사를 탄핵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부터 시작해 여권에서는 판사 이름을 딴 ‘금지법’을 만들자는 논의도 나왔다. ‘광화문 시위를 허가한 판사의 해임 청원’ 글에는 “지난 8개월 피 말리는 사투를 벌이는 코로나19 대응 시국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 부분”이라며 “판사의 잘못된 판결에 책임을 지는 법적 제도 역시 필요하다”며 해임 또는 탄핵을 요구했다. 인터넷 블로그 등에는 해당 판사의 실명과 얼굴 사진을 올려놓는 신상 털기까지 벌어지고 있다.

당시 재판부는 집회의 자유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고,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집회를 제한할 때도 필요한 최소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서울시가 개별 집회의 집회 시간이나 규모를 개별적·구체적으로 살피지 않고 각기 다른 8월 15일 자 집회를 24시간 서울 시내 전역에서 금지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반한다는 취지다. 우리 헌법이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때에만 허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재판부의 결정은 아주 원론적인 판단에서 나온 결론인 것이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특정 여건 하에서 원천적으로 집회를 금지하고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을 발의하면서 재판장의 이름을 법안 명칭으로 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욕설이나 다름없는 ‘판새’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우원식 의원은 “도대체 법원은 국민의 머리 위에 있는가”라며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규제는 헌법이 정한 원칙과 예외를 뒤집는 것으로 비민주적이고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이와 관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의원들이 다 문재인의 차지철 노릇을 하려 하니, 입법활동 자체가 선동정치에 기반을 둔 전술적 기동으로 전락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여기에 정부 2인자 국무총리까지 거들었다. 지난 25일 정세균 총리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잘못된 집회 허가를 했다. 신고 내용과 다르게 집회가 진행될 거라는 판단은 웬만한 사람이면 할 수 있는데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방역이)다 무너지고, 정말 우리가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다”고 해당 판사 비판에 가세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뛰어들었다. 추 장관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비상 상황에선 사법당국이 책상에만 앉아서 그럴 게 아니라 국민과 협조할 때는 협조해야 한다. 사태를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다”라고 했다.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사법부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행정부를 대표하는 국무총리와 법무행정의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대놓고 개별 판사와 법원을 비난한 것은 삼권 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오만한 행동이다. 국민이 재판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행정부가 이미 결과가 나온 재판과 결정에 대해 판사 개인을 언급하며 비판하는 것은 그 무게감과 의미가 다르다. 사후적으로 부당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해서 그때마다 정치권이 담당 판사에게 책임을 지우겠다고 따진다면 권력분립의 원칙은 무너진다.

행정부가 일부 여론에 편승하듯 사법부를 공개 비판한 것은 코로나 재확산 사태의 책임을 떠넘기려는 현 정부의 습관적인 ‘남 탓’ 찾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를 향한 정부·여당의 비난을 보면, 사법부를 행정부의 시녀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이 국민을 향해 ‘우리가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 엄포를 놓는 게 아니다. 반대로 국민이 국가를 향해 ‘내 기본권을 제한하고 싶다면 헌법을 준수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원리가 법치주의다. 법치에는 국가가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입법과 행정, 사법으로 행사 주체를 쪼개놓은 권력분립의 원칙도 포함된다. 법원마저 행정부나 정치권의 눈치를 보게 된다면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맞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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