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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근시안적인 사법부, 무지몽매한 종교인들의 반성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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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근시안적인 사법부, 무지몽매한 종교인들의 반성 촉구
  • 오시영
  • 승인 2020.08.2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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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오시영</strong>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교수 / 변호사 / 시인

카오스, 혼돈의 대한민국은 물과 불로 뜨겁다. 무지로 빚어지는 혼란은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벌이다. 무지에 인간의 탐욕이 더해지면 신의 벌은 더욱 가혹해진다. 종교의 맹목성은 신의 구원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일 수도 있지만,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천근추가 되기도 한다. 인본주의가 배제된 무지몽매한 신본주의는 결국 무지한 자들에 의해 선한 이들마저 해치는 흉기가 된다. 21세기 문명과학시대에 아직도 대한민국을 횡행하는 무지몽매한 자들의 맹목적 만용이 이제 한계선상에 다다른 듯하다. 그 한가운데 기독교가 있다는 사실이 모태신앙인 필자로서는 슬프고도 슬프다.

코로나19감염병 사태가 잘 통제되어 세계적 칭찬을 받아왔는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이하 전광훈 씨라 한다, 그의 외부적 행위가 종교행위와는 무관한 자연인으로서의 행위로 판단되어 목사라는 직함으로 호칭할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자연인으로서의 이름만으로 호칭하려 한다)가 중심이 된 지난 8.15 광복절 광화문집회가 발단이 되어 하루 수백 명의 확진자가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통제불능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어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급속도 전파에 대한 걱정과 염려 중에도 문재인 정부의 방역체계는 이를 이른 시간 안에 수습하리라 믿는다. 여태까지 일상생활 속에서도 신속하고 정확한 1대 1 방역체계를 작동시켜 K방역이라는 새로운 방역체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던 경험과 노하우, 인력과 시스템 가동에 대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 첫 번째 책임은 이번 집회를 허가한 서울행정법원 박형순 부장판사에게 있다. 변호사로서, 법학교수로서 수십 년 법조인으로서 살아온 필자의 사법부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는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법부는 행정부나 입법부처럼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국가기관이 아니다. 입법부는 입법을 통해 무엇인가를 통제하고 규율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기관이지만 무엇인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창조적 작업을 한다. 행정부는 국민에게 행정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산적 행정행위를 수행한다. 그러기에 입법부와 행정부는 나름대로 생산적이고 창조적 역할을 통해 국가와 사회발전을 진행해 나간다. 하지만 사법부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행한, 또는 그들이 세운 행위규범에 따라 구체적 행동을 하는 국민들의 잘못된 결과에 대해 사후적 통제, 즉 쓰레기를 치우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처럼 사법부는 행정부나 입법부 또는 국민이나 시민이 저질러놓은 결과, 즉 사후적 분쟁에 대한 교통정리 기능밖에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창조적 행정행위를 하지 못하고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판단자 역할에 충실하게 되면 시야가 미래지향적이 되기보다는 과거집착형으로 변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기 까지는 한갓 백면서생에 불과하다. 맨날 법서를 붙들고 법조문을 외거나 이해하거나, 수십 년 전부터 형성되어 온 “과거의 판례”에 천착하는 과거지향적 인간에 머무르기가 십상이다. 물론 사법부는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이라는 이중적 가치에 항시 부딪히며 고민하고 있음을 잘 안다. 그런데 구체적 타당성과 법적 안정성이 부딪힐 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적 안정성”에 더 큰 가치를 두도록 훈련받고 세뇌되어진다. 따라서 구체적 타당성을 택해 용기와 소신을 갖고 젊은 판사가 기존 판례와 다른 입장을 과감하게 자신의 판결에 반영하더라도, 상급심에 올라가면 기존 판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판판이 깨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임용 초기에는 소신 있는 판결을 선고하던 판사조차 대법원에 올라가서 판판이 깨지는 경험을 몇 번 하게 되면, 그로 인해 대법원 판례 취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력 없는 판사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맹목적으로 기존 판례를 섭렵하는“죽은 양심의 판사로 재탄생”하게 된다. 다시 말해 웬만해서는 판사들로 하여금 과거의 판례에 과감하게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소극적 인간을 양산하는 기관이 사법부”라 할 수 있다. 거기에 20년 정도 판사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판결에 대한 비판이 배제되고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게 되는 중견 법관이 되면 자신의 지연, 학연, 종교관, 정치관, 신념 등이 강하게 결합되면서 남의 얘기를 경청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법관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경륜이 쌓일수록 더욱 낮은 자세로 세상이치를 살피려는 겸손한 법관들도 더러 있지만, 그렇지 않고 무소불위의 사법권 행사에 취해버리게 되면 “세상은 남의 것”이 되어 버리는 우를 범하는 법관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박형순 부장판사는 이번 허가된 집회의 파급력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였다. 물론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그게 올바른 헌법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시 100명 참가의 시위가 어떠한 허울을 뒤집어쓴 주체들에 의해 진행될 것인지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졌어야 한다. 그 주최 측이 그동안 어떠한 집회를 자행해 왔는지, 코로나19사태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가 어떠하며, 경제적 상황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등등 사회관찰자로서의 통찰적 시각을 가지고 살폈어야 한다. 몇 장의 신청서에 쓰인 죽어 있는 핑계에 기망당하지 않는 지혜가 있어야 했고, 그 집회를 앞두고 언론과 방송 등 사회적 여론이 무엇을 염려하고 우려하는지 등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르네상스적 인간이 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최대의 맹점인 우물 안 개구리의 죽어 있는 현실파악”에 최고 정점을 찍어 버린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책임은 검찰과 경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집회의 중심역할을 한 전광훈 씨는 현재 “조건부 보석 허가 상태”에 있는 형사피고인이다. “주거가 주소지로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번 집회와 같은 집회 참석이 불허”된 조건부 석방자인 것이다. 따라서 그가 주거를 이탈하여 이번 집회 및 시위에 참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조건부 보석 허가를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구류시키고 보석허가취소절차를 밟거나 집시법 위반 현행범으로 처벌하는 등의 절차를 현장에서 실시하였어야 한다. “현행범의 국법질서 위반행위가 언론과 방송에 공공연히 방송”되며 법질서를 무력화시키는 범죄행위를 그대로 방치한 잘못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행정안전부장관은 이번 집회 시위가 이렇게 무법천지로 자행될 때까지 질서유지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은 “서울경찰청장과 종로경찰서장” 등 관련 경찰을 엄하게 중징계하여야 한다. 물론 정부의 집회 및 시위를 가능한 한 허용하겠다는 관용정책은 그동안 집회 및 시위를 지나치게 규제해 온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에 비해 칭찬받을 일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무법천지를 방치하는 단계까지, 민주정부의 공권력을 조롱하고 비웃는 단계까지 방치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따라서 서울경찰청장과 종로경찰서장 등 해당 경찰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징계절차가 밟아져야 한다. 이렇게 국가의 영이 서 공무집행에 엄격성과 책임성을 요구할 때 공무원들의 복무자세가 바로 잡히리라 믿는다. 위반자들에게 첫 번째 잘못과 책임이 있지만, 이를 사전에 제대로 예상하고 법적 장치 안으로 흡수해내지 못한 채 사회 혼란을 야기토록 방임한 경찰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강력하게 물어야 사후에 이러한 무능력한, 무기력한 경찰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질서가 회복되어야 한다.

세 번째 책임은 일부일망정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집회참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광훈 씨가 중심이 된 기독자유통일당이 관여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현재까지 79대의 버스가 경남 22대, 대구 19대, 경북 12대, 전남 6대, 전북 4대, 경기 4대 등 전국에서 집회 참가자들을 실어 나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다른 종교에 비해 유독 기독교계가 반정부활동에 나서는 것을 우리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중심에는 정치적 세력이 약했던 전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전광훈 씨가 중심이 된 기독교 우파세력을 이용하려 한 잘못된 정치의도가 숨어 있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세력의 중심에 일부 기독교계 보수세력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과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은 필자로서는 그들이 믿고 있거나 주장하는 논지는 “문재인 정부는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와 결합되어 있는 반민주정부로 그 심중에는 대한민국을 북한에 갖다 바치려고 한다.”는 황당한 결론으로 집약할 수 있다. 또 다른 논지는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보다 더 정권 차원의 부정부패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돈 없는 좌파세력이 갑자기 권력을 잡게 되니 돈에 눈이 멀어 어떻게든 한 탕 해 먹으려고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나 오거돈 전 부산시장, 최근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문을 예로 들며 도덕적으로도 타락한 정부라고 공격을 가해오고 있다. 그러면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 문제나 유재수 전 부산부시장의 뇌물수수사건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이를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현 정부에 대한 검찰측의 음모론적 시각만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 규모면에서 크고 적은 차이야 있겠지만, 그러한 사실이 전무한 것은 아니니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북평화교류의 물꼬를 트고 통일 조국의 먼 미래를 향한 선투자 개념의 남북교류마저 “대한민국의 북한에 대한 갖다 바치기”로 비약하는 논리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지만, 그들의 무지는 이를 확고한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고 있으니 이를 어찌할 수가 없다. 거기에 최근에 불거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문제와 관련하여 “동성애 문제”가 기독교계를 반정부세력으로 내몰고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있다.

기독교계는 최근 들어 “동성애를 허용하고 그 차별을 금지”하게 되면 목사들이 설교 시간에 “동성애는 나쁜 것이고 비성경적”이라고 설교하는 순간 목사가 차별금지법을 위반하여 교도소에 가야 된다고 설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동성애자라고 하여 학교, 직장, 사회에서 어떠한 불이익한 차별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뿐 동성애를 옹호하거나 확대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지만, 기독교계가 받아들이는 충격은 “성경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기독교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 그 인식의 간극이 지나치게 크다. 정부는 이 인식의 간극을 어떻게 메꿀 것인지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전광훈 씨가 책임자로 있는 사랑제일교회의 신자 중에서 600명 이상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였고, 위 광화문집회에 참가한 전광훈 씨, 그의 부인과 비서도 확진자로 밝혀졌다. 밀폐된 공간이 아닌 옥외에서는 코로나가 전파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온 차명진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나, 구독자 129만 명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최대 우파 유튜버로 알려진 신의 한 수의 신혜식 대표도 광화문집회에 참석하였다가 확진자가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확진자가 계속 확장추세에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를 단시일 내에 잡을 것으로 신뢰를 보낸다. 우리 국민의 지혜로움을 믿기 때문이다. 신천지교회 감염 확산 당시에도 절망적이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성숙한 자세로 이에 잘 대처하여 비교적 단기간 내에 코로나 확진 사태를 차단하여 방역에 성공할 것으로 믿는다.

일부 맹목적 무지한 참가자들에 의해 방역이라는 댐의 일부가 무너졌지만, 우선 문재인 정부가 방역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고, 전 국민의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활화하고, 의료진의 헌신적 노력과 의료체계의 조직적 가동을 통해 이 확장사태를 조기에 수습할 수 있도록 총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오이시디 국가 중 “경제성장율 1위”를 기록 중인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호전되려는 순간 일부 몰지각한 자들에 의해 조장된 이번 사태에 깊은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절망 중 희망을 보고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믿을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깨어나 국가재난극복에 협력해야 할 때이다. 광복절 집회에 참가한 이들은 자발적으로 코로나 검진에 협력하는 것이 자신의 실수를 국민에게 참회하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아, 교육으로도 깨우칠 수 없는 무지몽매함이여. 그래도,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갖자. 댐에 뚫린 바늘구멍을 우리 주먹으로라도 막자.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다.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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