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정당-유권자-미디어의 분극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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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정당-유권자-미디어의 분극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부담
  • 신희섭
  • 승인 2020.08.0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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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여러 장애물을 만나고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해 민주주의 위기론의 역사는 꽤 길지만, 요즘 민주주의 위기론은 실체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때 보다는 구체적이다. 세계적인 상황을 둘러보면 민주주의 체제에 위기가 오고 있는 것이 명확해진다.

통계상으로 민주주의를 평가할 수 있는 ‘프리덤 하우스 지표’, ‘베델스만 이행지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모두에서 민주주의 수치는 하락하고 있다. 실체적으로도 그렇다. 아랍의 봄을 경험한 국가들은 모두 권위주의로 회귀했다. 민주주의의 4번째 물결로 칭해진 2010년 이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도 모두 권위주의로 회귀하였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서도 눈에 띈다. ‘월가 점령’시위, 대중영합주의적 지도자인 트럼프의 당선, 흑인 질식사 사건 이후 대규모 대중 시위와 강경진압, 유럽에서 극우정당들에 대한 지지 강화. 중부와 동부 유럽의 여론조사들에서 나타나는 대중들의 민주주의 지지 약화. 이런 사건들을 보면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민주주의 체제가 그리 안정적으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듯하니 최대한 단순화해보자. 크게 민주주의의 위기는 3가지 측면에서 발생 또는 진행 중이다. 첫째, 민주주의의 수요자 측인 시민(citizen)과 대중(mass)의 문제이다. 2008년 이후 지속해서 문제가 되는 경제위기상황이 이들의 ‘시민성’과 시민적 ‘관용(tolerance)’을 약화했다. 대신 불안과 조바심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경제위기와 코로나위기상황을 헤쳐나가는 과정의 민주적 결정 과정과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민과 대중들이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 유튜브나 SNS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가 유권자들을 극단화한다. 자극적이며 ‘구술성(口述性)’에 기초한 이들 미디어는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시민들의 ‘중용’과 ‘시민성’을 갉아먹고 있다.

둘째, 민주주의에서 정책 공급자 측인 정치엘리트와 정당도 문제다. 경제위기로 인한 대중들의 불안과 조바심을 이용하여 자신의 표를 극대화하려는 정치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부패한 곳에 파리가 꼬이듯이. 대중의 조바심과 불안이라는 먹이를 보고 대중영합주의 정치인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당의 부작위도 문제다. 갈등을 걸러주는 필터가 되어야 하는 정당이 제 기능을 못 하니, 대중들은 시위를 통해서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반대로 대중영합적 지도자들은 군중 동원을 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정당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셋째, 대외적인 차원의 문제도 있다. 신생민주주의 국가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미국과 같은 국가의 실질적인 지원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경제위기 상황이 지속하면서 이런 지원이 사라지거나 약화하였다. 자기 코가 석 자가 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난민 문제로 정체성의 위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 시리아 사태나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설치를 보라.

이런 요인들에 의해 자극을 받는 민주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리되고 있다. 한 가지는 대중들이 중심이 되어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자유주의의 절차와 규범을 무시하는 현상이다. 파리드 자키리아는 이러한 현상을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지칭했다. 반면에 엘리트층에서는 자유주의에 기초하여 ‘법치주의’, ‘소유권의 절대성’, ‘사적 자유에 대한 공적 권위에 대한 우위’의 논리를 내세우면서 민주주의를 민중주의라며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자유주의적 반민주주의’라고 지칭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는 18세기 들어와 조합이 강화되기 시작한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런데 이 원칙이 ‘자유주의 vs. 민주주의’라는 불편한 조합화가 되는 것이다. 엘리트와 대중이 각기 다른 이념을 동원해 자유민주주의를 분리하는 중이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우리와 먼 이야기일까? 그렇지는 않다.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인지는 너무 많은 기준이 있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답은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위기인 것까지는 아니고 민주주의의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이나 위기 징후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다. 바로 ‘분극화’다. 극단화되고 있다는 의미로, 구체적으로는 이념적으로 갈라서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정당’이 분극화하고 있다. 최근 정당들의 정당 간 거리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 정당들이 점차 보수와 진보에서 원심적으로 멀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유권자’도 분극화되고 있다. 이것은 분극화된 정당들이 지지 유권자들을 끌어 들이는 측면과 유권자가 자체적으로 분극화되는 측면이 상존한다. 사실 한국 유권자 대부분은 중도노선에 있었다. 하지만 탄핵사태를 계기로 한국 유권자들 역시 분극화하고 있다. 현실 세상에서 정당일체감을 가진 유권자들이 상대정당과 상대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에 대해 노골적인 분노를 표출한다. 게다가 ‘인지적’ 분극화와 함께 ‘정서적’ 분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 없이 상대방을 비난한다.

더 나쁜 상황은 ‘미디어’들도 분극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디어들은 강력한 정치세력이다. 자유주의가 가정했던 미디어의 중립성은 사라졌다. 미디어 시장에서 미디어 간 경쟁이 치열하다. 한편 정치 시장에서 미디어들은 정부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를 두고도 경쟁한다. 이렇게 ‘정당-유권자-미디어’는 분극화의 3위 일체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한국도 자유민주주의의 축이 분리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교집합이 약화하고, ‘자유주의적 반민주주의’나 ‘반자유주의 민주주의’가 강화되면 그 결과는 명확하다. 극단주의자들의 세상이다. 아테네인들이 우려했던 가난한 자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정(democracy)이거나 부유한 이들의 정치체제인 금권정치(Plutocracy)의 세상이 될 것이다.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위기를 해결할 실마리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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