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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가 왜 위안부입니까? 나는 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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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가 왜 위안부입니까? 나는 이○○입니다.
  • 송기춘
  • 승인 2020.07.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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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춘 전북대학교 <br>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맡은 일 때문에 여러 날을 경기도 광주에 머물렀다. 하루는 시간을 내어 이른 아침에 가까이에 있다는 허난설헌의 묘를 찾아 나섰다. 그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안내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허난설헌은 조선 명종 18년(1563)에 출생하여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허엽의 딸로 출생하여 선조 22년(1589)에 27세를 일기로 요절한 조선조의 대표적이며 천재적인 여류시인이다. 본명은 초희이며 호는 난설헌, 본관은 양천이다. 또한 홍길동전 저자 허균의 누이이기도 하다. 강릉에서 태어나서 시인 이달에게 글을 배웠는데 천재적 시재를 발휘했으며 천품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용모를 타고나 어렸을 때 여신동이라고까지 칭송이 자자하였다.”

27세에 요절이라니...... 왜 그랬을까 하는 의문을 안고 묘에 올라가니 그의 시를 새겨넣은 비가 묘 옆에 서 있다. ‘아들 딸 여의고서’(哭子)라는 제목의 시다. “지난 해 귀여운 딸을 여의고(去年喪愛女)/올해는 사랑스런 아들 잃다니(今年喪愛子)/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 땅이여(哀哀廣陵土)/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雙墳相對起)” 딸과 아들을 연달아 여읜 어미의 애끊는 아픔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겠구나. 눈을 돌려 보니 가까이에 작은 무덤 두 개가 있다. 시에 나오는 딸과 아들의 무덤이다. 자녀를 여의고 어미는 이곳을 찾아 통곡하고 식음을 전폐하였을지 모른다. 그리고 자녀들의 무덤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을 것이다. 그의 시구처럼, 이제는 아들딸 그리고 어미가 “밤마다 서로 서로 얼려 놀테지(夜夜相追遊)”. 애달픈 서사가 있는 공간이다.

광주땅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하셨던 분들이 함께 생활하는 ‘나눔의 집’이 있다. 지금은 다섯 분이 계신다. 지난 5월 MBC PD수첩 보도 이후 기부금품의 사용과 관련하여 더욱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생활관과 역사관, 추모관과 추모공원이 있다. 역사관은 두 곳이 있는데, 1관은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과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전시하고, 2관은 위안부 피해를 당한 분들의 삶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곳에 계시는 분들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일제가 패망할 즈음 ‘위안부’들을 트럭에 실어 구덩이에 넣고 불태워 죽였던 일을 고발하는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은 충격적이다. 이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귀향(鬼鄕)’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었다(조정래 감독 작품). 죽은 이들의 귀향이다.

역사관과 생활관은 지척이다. 지금은 다들 90이 넘으셔서 어렵지만, 때로 역사관에 나오시거나 찾아오는 이들을 맞아 위안부 피해에 관한 해설을 하시기도 했다고 한다. 생활관 근처에서는 할머니들이 가끔 외출하시는 모습도 볼 수 있고 노래 부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이분들은 이곳이 좋으실까? 물론 위안부 피해가 역사적 사건이니 이를 증언하고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언제라도 할 수 있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서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옛날의 아픈 과거를 때때로 소환하고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눠야 하는 일은 언제나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편견과 비난이 가득한 세상이니 자신의 아픈 이야기가 언제나 누구에게나 이해되리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항상 이름표를 달고 살듯이 ‘위안부 할머니’로 불리고 ‘위안부’가 산다는 곳에 사는 것은 때로 남들의 주목을 받지 않고 홀로 있고 싶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다. 사람의 과거 한 때의 아픈 시간으로 사람을 규정하고 그 틀 안에서 사람을 대하고 평가하는 것은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이곳에 계시는 할머니 한 분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위안부입니까?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나는 이○○입니다.” 이분들은 힘든 현대사를 살아오신 우리들의 할머니이고 자신의 삶을 통하여 인간 존엄을 해치는 세력과 싸우는 인권활동가들이다.

송기춘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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