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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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성폭력 ‘피해자’ 보호와 2차 피해 방지
  • 최진녕
  • 승인 2020.07.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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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이경 대표) / 전 대한변협 대변인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씨케이 대표) / 전 대한변협 대변인

지금까지 이런 논쟁은 없었다. 성폭력 사건 고소인은 범죄 “피해자”인가 “피해 호소인”인가.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어떻게 부를 것인지를 두고 정치권이 논란에 불을 붙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서울시가 고(故) 박원순 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고소인을 지칭하며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이란 창의적 용어를 사용한 것이 불씨가 되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최근 고(故) 박 시장 성폭행 의혹 사건에 대해 공식사과하면서 “피해 호소인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고, 민주당 여성 의원들도 성명서에서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서울시도 진상 조사 의지를 밝히면서 ‘피해 호소 직원’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숱하게 있던 여권 정치인 미투 사건에서 ‘피해자’란 용어를 쓰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여권의 태도에 대해 야당은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민주당이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르고 싶지 않아 집단 창작을 시작했다. 피해자를 피해자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당’”이라며 비난했다.

법률적으로는 어떨까. ‘피해자’는 법률용어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제275조의2)고 규정하면서도 “범죄로 인한 피해자는 고소할 수 있다.”(제223조)고 선언한다. 실무상 피의자나 피고인이 범행을 극구 부인하더라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더라도, 검사는 공소장에서 “피해자”라고 표현한다. 유죄가 확정적으로 입증되어야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도 성폭력 피해자 등에게 수사 시작부터 ‘피해자’ 국선변호사를 지원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피고소인은 고소인의 법률대리인이 고소장을 접수하고, 경찰에서 고소인 조사를 받고 있는 동안 그 사실을 어떠한 경로로 알고는 대책회의를 했다. 다음 날 바로 극단적 선택을 했으며, 직접 쓴 유서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말을 남기지 않았다. 최근 고소인 측은 텔레그램 대화창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볼 때 큰 틀에서 피고소인이 고소 사실을 다투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 해석일 것이다. 더욱이 성범죄사건 처리에 관해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과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는 사법부의 판례 경향에 비추어서도 성범죄 고소인을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피고소인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날 것이란 점을 강조하겠다면 “고소인”이라고 불렀으면 족할 것이다.

정치권이 사건에 대해 공방을 벌이는 동안 정작 성범죄 피해자인 전직 비서에 대한 각종 2차 가해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 사건을 포함해서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 사건 피해자인 여성은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법적 대응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법률적인 도움을 받아야 할지 막막해 하는 경우가 적잖다.

다양한 성범죄 피해자 보호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중 핵심은 성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와 진술조력인 제도이다. 법무부가 최근 아동·청소년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성을 착취하고 이를 촬영한 영상을 텔레그램방에 유포해 수익을 챙긴 이른바 ‘n번방 사건’과 관련된 모든 피해자들에게 수사 초기부터 국선변호사와 진술조력인을 선정해 지원하도록 할 정도로 실무상 중요한 피해자 보호제도로 활용된다.

성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제도는 성폭력·아동학대 피해자들 대상으로 사건 발생 초기부터 수사와 재판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과정에서 법률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2013년 7월 마련된 제도다. 성폭력범죄,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 아동학대의 피해자 및 그 법정대리인 등은 형사 절차상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방어하고 법률적 조력을 보장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법적 근거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7조제1항,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30조제1항,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6조 및 검사의 국선변호사 선정 등에 관한 규칙 제1조의2제1호 등이다. 지난해 3월 기준 전담 변호사 21명, 비전담 변호사 6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 신청은 어떻게 할까. 범죄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경찰서, 검찰청 등 수사기관에 피해사실 신고와 함께 구두 또는 서면으로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을 요청하면 된다. 성폭력피해상담소 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등을 통해서도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국선변호사 선정 신청하려는 범죄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은 범죄행위자에 대한 사실심 변론종결 전까지, 범죄행위자가 불기소된 경우에는 그 불기소처분에 대한 불복절차가 기각결정으로 최종 종결되기 전까지 구두 또는 서면으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게 선정 신청을 하면 된다.

신청이 없더라도 검사는 범죄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거부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범죄 피해자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부터 제9조까지 또는 제15조에 해당하는 범죄로 피해를 입은 경우 국선변호사를 선정할 의무가 있다. 검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국선전담변호사 또는 국선변호사명부에 등재된 사람 중에서 국선변호사를 범죄 피해자 마다 1명씩 선정한다.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변호사와 신뢰 훼손 등 문제가 있을 경우 범죄피해자 측은 검사 또는 경찰에게 그 사유를 소명하여 국선변호사의 변경도 신청할 수 있다. 실무상 국선변호사가 피고소인 측과 합의를 하거나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측과 의견이 달라 국선변호사 변경 요청을 하는 사례가 가끔 발생한다.

아동과 장애인 피해자에게는 진술조력인 제도가 큰 도움이 된다. 진술조력인제도는 의사소통이나 자기표현이 어려운 성폭력 피해아동·장애인에 대해 숙련된 전문인력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 함께 참여해 의사소통을 중개·보조하는 제도이다. 피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사건의 사실관계를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2013년 12월부터 시행되었고, 현재 전국에 100여 명의 진술조력인이 활동 중이다. 일찍부터 시행되었다면 2006년 발생한 장애인 대상 성범죄인 이른바 ‘도가니 사건’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미투 운동이나 도가니 사건 등을 통해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종전 보다 성범죄 피해자의 인권 보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성범죄 피고인을 변호하다 보면 수사단계에서 재산 범죄와 달리 고소장을 복사할 수가 없고, 재판단계에서도 수사나 재판기록 상 피해자나 참고인 혹은 증인을 지칭하는 부분을 공란으로 두는 등 철저하게 비실명화 작업이 되어 있어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게다가 이른바 몰카 사건 같은 경우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중 핵심 부분을 검은색 보안 테이프로 가린 뒤 기록을 복사해 준다.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한 경우 비공개 재판을 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기도 한다.

성범죄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의 인격권 보호를 위해 일반 형사사건에서 보다 피해자의 2차 피해방지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자 측에 이해와 동의를 구하려는 국가의 세심한 배려조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성범죄 피해자 보호의 출발은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최진녕 변호사(법무법인 씨케이 대표) / 전 대한변협 대변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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