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당권 계약 위반해 담보물 처분해도 배임죄 불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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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당권 계약 위반해 담보물 처분해도 배임죄 불성립”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0.06.2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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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합, 배임죄 성립 인정한 종전 판례 변경
“저당권 설정 의무는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저당권 설정 계약을 위반해 담보물을 처분해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내려졌다.

채무자 A(피고인)는 2016년 6월 14일 채권자 B(피해자)로부터 18억원을 차용하면서 담보로 甲아파트에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주기로 약정했다. 하지만 A는 같은 해 12월 15일 甲아파트에 제3자 명의로 채권최고액 12억원인 4순위 근저당권을 경료해 12억원 상당의 이익을 취하고 B에게 동액 상당의 손해를 가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항소심은 모두 A에 대해 배임죄의 유죄를 인정, 각 징역 1년 6월과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저당권 설정 의무를 부담하는 채무자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8일 “채무자가 저당권 설정 계약에 따라 채권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저당권을 설정할 의무는 채무자 자신의 사무로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두52386 전원합의체 판결)”며 원심을 파기했다.
 

이는 부동산에 관해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기로 약정한 채무자가 채권자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채무자가 담보 목적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된다고 본 종전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은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해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대법원은 “저당권 설정 계약에서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금전채무의 변제와 이를 위한 담보에 있고 저당권 설정 계약에 따라 채권자에 대하여 부담하는 채무자의 저당권 설정 의무는 채무자가 통상의 계약에서 이뤄지는 이익대립 관계를 넘어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해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즉, 채무자의 저당권 설정 의무는 저당권 설정 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채무자 자신의 의무이고, 채무자가 이같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이므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채무자가 저당권 설정 의무를 위반해 담보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했다고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할 수 없고, 이같은 법리는 채무자가 금전채무에 대한 담보로 부동산에 관해 양도담보 설정 계약을 체결해 채권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 줄 의무가 있음에도 제3자에게 그 부동산을 처분한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에 반해 4명의 대법관은 종전 판례와 같은 입장을 보이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 대법관은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이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담보 목적으로 체결된 저당권 설정 계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은 담보로 제공함으로써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채권자에게 취득하게 하는 데 있고, 이같은 채무자의 의무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로 저당권을 설정할 의무가 있는 채무자가 담보물을 처분한 경우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한 종전 대법원 판례는 모두 변경됐다.

대법원은 “타인의 사무에 관한 엄격해석을 통해 종래의 판결을 변경함으로써 형벌 법규의 엄격해석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사법(私法)의 영역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사적 자치의 침해를 방지한다는 데 이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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