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하루살이 불나비, 삼성 이재용 회장의 불구속과 황당한 사법심의위원회 심의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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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하루살이 불나비, 삼성 이재용 회장의 불구속과 황당한 사법심의위원회 심의 요구
  • 오시영
  • 승인 2020.06.1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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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자주 착각하는 것은 “이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완벽하게” 이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번 코로나19사태를 겪으며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코로나19사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인간이 맑고 깨끗하게 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사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의료현미경을 통해서라도 보이는 미세물체와의 싸움이어서 차라리 낫다. 하지만 인간 영혼을 갉아 먹는 정신해충과의 싸움은 영원히 절망적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그 완벽한 세상은, 인간 세상에서는 기대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그렇다. 우리 인간 삶을 곧잘 하루살이에 비교한다. 인생이 뭐 별 것이라고 그렇게 아등바등 사느냐는 비유일 것이다. 하루살이가 정말 하루를 살다 죽는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평균 일주일 정도를 살다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기야 종류만 해도 2천 여 종이나 되니 그 하나하나의 생애주기를 일일이 따질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하루살이조차도 그 작은 몸체로, 그 많은 불빛의 유혹을 견디어내며 일주일 남짓 이 세상을 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싶다. 하루살이를 방언으로 초파리라고도 한다. 황희순 시인의 “초파리의 거울”이라는 시에는 초파리를 때려잡은 뒤 “붉은 피 한 점” 묻어나는 것을 보며 “초파리는 제 피가 붉다는 걸 알고 있을까?” 하며 자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작은 초파리마저 피가 흐르는 생명체였음에 놀란 시인의 가슴 쿵쿵거림이, 미물 같지만 귀한 한 생명을 죽였다는 안타까움이 묻어나온다. 언젠가 황희순 시인과 위 시에 대한 담소를 나누다가 위와 같은 독자의 마음을 전했더니 뜻밖에도 초파리의 몸체에는 혈관이 없어 피가 있을 수 없고, 그 붉은 흔적은 초파리의 눈빛깔이 붉은 색이어서 그 색이 보이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새롭다.

세상이 너무 격하다. 뜨겁고 혼란스럽다. 작고한 김상국 씨의 “불나비”라는 노랫말이 새삼스럽다. “얼마나 사무치는 그리움이냐 밤마다 불을 찾아 헤매는 사연 차라리 재가 되어 숨진다 해도 아~너를 안고 가련다 불나비 사랑, 무엇으로 끄나요 사랑의 불길 밤을 안고 떠도는 외로운 날개 한 많은 세월 속에 멍들은 가슴 아~너를 안고 가련다 불나비 사랑”이라는 1,2절 가사로 되어 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이고, 필자도 젊어서부터 수없이 불렀던 노래이다. 몇 년에 한 번 정도나 갈까 말까한 노래방이지만, 노래방에 갔다 하면 선곡해 부르곤 했다.

갑자기 황희순 시인의 “초파리의 거울”이라는 시와 김상국 가수의 “불나비”가 함께 연상되는 것은 세상 돌아가는 것이 너무 어지럽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동되고 있다.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되었다. 적자상태이던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분식회계를 통해 삼성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편법적으로 시행하여 이재용 부회장에게 수조원의 부당이득을 안겨주고 소액주주 및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에게 그 금액 상당의 불이익을 안겨주어 고스란히 국민 피해를 유발한 경제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함으로써 돈의 힘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영장담당판사는 그 동안의 수사를 통해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인정하면서도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불구속상태에서 쟁송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구속영장 발부를 거부하였다. 말이야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사안의 중대함에 비추어 그러한 불구속이 얼마나 커다란 사법적 특혜인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관련 범죄자들이 모두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에 있는데, 그들은 모두 하루살이처럼 이재용 삼성부회장의 이익을 위해 뛰었을(?) 뿐이고 그 합병의 특혜를 전혀 받은 바 없는데(물론 어떠한 인사상 이익이나 금전적 이익을 얻었을 수도 있겠지만 필자로서는 그러한 사실에 대한 정보가 없어 무어라 말할 수 없다)도 유죄판결로 모두 수감되어 있는데, 수조원의 경제적 특혜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삼성의 경영권 장악이라는 엄청난 이익을 얻는 당사자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불구속 재판을 받을만하다고 판단한 사법부는 자가당착의 모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돈 앞에 약한 민주주의의 정의를 본다.

최근에 공군방공유도탄사령부 제3여단 소속 한 사병에 대한 특혜 의혹이 사회적 쟁점이 되고 있다. 부자 아버지의 뒷배로 사병이 군 생활 중 7-8명이 함께 쓰는 생활관을 혼자 사용하는 특혜를 누리고, 세탁물 등을 상관인 부사관에게 심부름시켜 외부에서 세탁해 오게 하거나 외출증이나 휴가증 등 정상적인 절차 없이 수시로 무단외출하여 가족들과 식사 후 귀대하거나 귀대시간을 어기는 등 탈영 등 혐의가 짙은데도 불구하고 처벌은커녕 오히려 특혜가 더욱 더해졌다는 것이다. 군 수사기관의 조사 결과 거의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고 한다. 모 신용평가사의 부회장으로 있는 아버지가 수시로 군에 전화를 하여 위와 같은 특혜를 요구하였고, 군에서 그러한 요구를 들어주었다니 돈 앞에 군의 정기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예전에는 군의 이러한 인사비리가 권력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면 최근 들어 돈으로 상관의 재량권을 사고, 그 재량권 행사를 통해 자식이 특혜를 받는 양상으로 차별적 특혜가 발전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다보다 못한 용기 있는 부사관이 정의감으로 자신의 직을 걸고 고발함으로써 이러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그러한 특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군의 자체적 자정능력이 상실되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북한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탈북자 단체가 중심이 되어 북한에 김정은 군사위원장을 비난하는 대북 선전용 삐라 및 생활필수품 등을 살포한 것을 트집 잡아 우리 정부가 이를 통제하지 않음은 남북정상회담의 취지를 파괴하는 행위라며 맹비난을 가하다가 지난 15일에는 결국 남북 합의하에 설립한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해버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폭거를 저질렀다. 그러면서 남북정상회담의 후속행위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를 맹비난하면서 우리를 향해 정치적 공격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안보회의를 소집하고 원로들을 초빙하여 의견을 듣는 등 대응태세를 강화해 나가면서 북한에 대해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강하게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30도를 넘나드는 초여름 더위만큼 모든 것이 뜨겁다. 북한도 코로나19사태로 인해 감염자가 늘어나고 이를 치료하는 것이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기대했던 경제협력 등이 2년이 지나도록 전혀 진척이 되지 않고 오히려 미국이 태도를 돌변하여 북한에 압박을 가해와 경제가 극심한 침체를 겪게 되다 보니 화해와 협력 정책에 한계를 느낀 나머지 위와 같은 과격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더군다나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이어 후계체제가 불안하다는 외신이 전해지고 있고, 여동생 김여정 부부장이 전면에 나서서 김정은 위원장의 역할을 대행하는 것을 보며 마지막 단계인 남북 정상들의 마지막 히든 카드 사용 가능성을 유보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남북 통일이라는 국가적, 민족적 대염원”은 참으로 지난한 길을 걸어야 하는구나 하는 안타까움을 어찌할 수 없다.

남북이 협력하여 서로 상생을 도모할 수 있음이 코앞에 뻔히 보이는데, 국제적 역학관계를 핑계 대는 미국의 반통일 정치세력에 의한 방해는 참으로 어찌 극복해 나가야 할지 난감하다. 결국은 “문재인 정부의 결단에 의한 독자노선 선언”만이 유일한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독자노선의 선포가 처음에는 국내 보수세력의 반발과 미국과 일본 주도의 국제적 반발을 불러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민족으로서 통일을 지향하는 독자노선의 선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에는 반발이 대단할 것이고, 어느 정도 경제적 불이익 등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신속한 남북경협 실시 및 여행의 자유화”를 통해 인적, 물적 교류를 일상화해 버리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평화체제의 현실적 정착”이 우리의 일상에 내재되어 올 것으로 기대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군가는 달아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있다. 새로운 정책의 실시가 엄청난 내부적 갈등을 겪고, 그 시행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시간을 소요하는 것이 대체적 현상인데, 이번 코로나19사태는 순식간에 우리 생활의 변화를 일치단결된 구체적 행동으로 현실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전 국민의 마스크착용현상이라 할 수도 있다. 5천만 전 국민이 동시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이 집단현상이, 구체적으로는 학교에서 온라인 교육의 일상화를 앞당기고, 재난지원금의 “경제정책으로서의 효율성 입증”이라는 커다란 효과를 내고 있다. 재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정부와 지자체가 전 국민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두고 돈의 낭비, 세금의 낭비, 포플리즘적 돈풀기, 시혜성 복지라는 비난이 일부에서 가해지고 있지만, 국민소득을 증진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키며, 더 큰 규모의 재정지원을 기업 중심으로 해 왔던 아이엠에프체제의 경제적 성과보다 훨씬 적은 규모의 돈을 국민 개개인에게 직접 지급함으로써 오히려 시장경제를 활성화시켜 멈추어 설 것 같던 경제를 회복시키고 공장을 가동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와 국민 전체의 총소득을 증진시키는 보다 효과적인 “경제정책”이 될 수 있음을 모든 국민에게 교육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비롯된 현대자본주의 경제학이 코로나19사태를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는 결정적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돈의 힘은 막강하다. 돈 앞에 모두 하루살이가 되어, 날파리가 되어 피도 없는 것들이 피가 있는 척 하고 있다. 군도 돈 앞에 무너지고, 사법부도 무너지고, 종교마저 무너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불구속결정이 되자 곧바로 사법심의위원회에 “기소 여부”에 대한 심의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아예 기소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죄를 짓고서도 처벌받지 않겠다는 심보를 드러낸 것이다. 필자도 사법심의위원 중의 일인이지만, 개별 사안마다 심의위원을 무작위로 뽑아 일시적, 사건별로 조직되는 사법심의위원회는 “개별 사건에 대한 수사를 계속할 것인지, 기소를 할 것인지 여부를 심의”하여 이를 검찰총장에게 제시하여 업무 판단의 자료로 활용토록 하고 있다.

그 심의위원장인 양창수 전 대법관이 삼성과의 인적 관계 및 친삼성 언론기고 글들을 통해 삼성에 우호적 관계인이라는 지적을 받자, 스스로 회피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이 사회 곳곳에 포진된 돈의 힘은 여전히 세다. 자본주의가 강화되면 될수록 돈의 힘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돈은 묘한 것이라 세상을 탁하게 만든다. 돈의 유혹에 홀리게 되면 진실이 왜곡된다. 정의가 무너지게 된다. 법이 이루고자 하는 가치,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정의이다. 법이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은 “이해관계”이다. 이해관계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익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한다. 그래서 돈이 개입되면 법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정의를 무너뜨리고 이익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자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비가 되고, 피 한 방울 가지고 있지 않은 날파리, 하루살이조차 제 죽을 줄 모르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래서 돈 자랑 해 대는 이들이 돈으로 졸병인 아들의 상급자를 후려쳐 심부름을 시키는 마술을 부리는 것이다. 광분하는 북한도 결국 북한의 돈 문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에서부터 남북연락사무소 파괴라는 극단행동까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 끝줄에 “법의 정의”가 바로서기를 바란다. 온갖 협잡이 난무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마지막 법의 힘은 강하다. 여야 정치판이 대립에 대립을 거듭하더니 결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을 더불어민주당이 다수당의 힘으로 밀어붙여 자기 당의 윤호중 의원으로 선출하였다. 그의 법치정신 실현을 기대한다. 세상 모든 것이 무너져도, 그래도 마지막 남아야 할 것은 법이다. 법의 정의이다.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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