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67)-‘정치적 도덕가’ VS ‘도덕적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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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의 법과정치(167)-‘정치적 도덕가’ VS ‘도덕적 정치가’
  • 강신업
  • 승인 2020.06.1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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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고대 정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보듯 올바르고 선한 삶의 방식과 결부되어 생각되었다. 동양에서도 공자 이래 정치는 늘 덕과 결부되어 논해졌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정치는 도덕이나 종교적 윤리로부터 분리되었다. 가령 마키아벨리에게 덕이란 힘에 기대어 국가를 지키는 군주의 기량으로, 홉스에게는 국가에 안정을 가져오는 합리적이고 실증적인 실용지(實用知)로 이해되었다. 정치가 그 결과물로서 추구하는 공공의 복지라는 목적을 윤리에 적합한 것으로 본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정치는 권력을 유지하고 국가를 장악하는 지식 내지 기술로서 윤리와는 관계없다는 인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마키아벨리나 홉스 식의 견해는 군주의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독재를 미화하는 구실로 작용하였다. 가령 마키아벨리의 정치이론은 정치에서 덕을 분리하자는 주장이 아니었음에도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수용한 많은 독재자는 공동체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정치를 폭력화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유린하는 일이 행해졌다.

그런데 정치를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한다 하더라도 항상 남는 문제는 과연 그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할 만큼 정당한가 하는 것이다. 정치의 목적을 개인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동체 유지로 보든, 공동체의 발전과 공동체 구성원의 복지와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작용으로 보든, 정치가가 견지해야 할 제일 덕목은 공동체를 위한 사려와 공동체 구성원을 위한 배려다. 여기서 정치는 덕과 선이라는 윤리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이 선언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칸트는 수단으로서의 정치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치 자체에 윤리가 추구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는 정직이 가장 좋은 정치윤리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는데, 그에게 정치는 그저 행복이라는 목적을 실현하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윤리와 공공의 복지와 함께 추구되는 또 하나의 도덕이었다. 그 때문에 칸트에서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도덕을 왜곡하는 ‘정치적 도덕가’는 단호히 배척되고 ‘국가를 위한 사려’와 도덕의 양립을 도모하는 ‘도덕적 정치가’가 추구된다. 이때 정치의 원칙으로 제시된 것은, 보편적 법칙 하에서의 한 사람의 자유와 다른 모든 사람의 자유의 양립이라는 법의 정의로부터 직접 도출되는 ‘공리’에 따르고, 평등의 원리에 기초하는 만인의 통합된 의지의 ‘요청’에 응하고, 자유와 평등의 원리에 따라서 공동체 내의 협조를 도모하는 ‘문제’에 몰두하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일파를 위해 도덕과 상식을 왜곡하는 자는 칸트 말하는 ‘정치적 도덕가’에 불과하다. 국가를 위한 수준 높은 사려와 인간 보편의 도덕적 양심을 도모하는 정치가야 말로 칸트가 말하는 ‘도덕적 정치가’다. 그런데 매우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도덕적 정치가는 드물고 정치적 도덕가가 판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민주주의라는 허명 아래 덕과 선이라는 정치윤리를 갖추지 못한 자들이 현대판 중우정치라는 시대의 포퓰리즘을 타고 정치권력을 획득·행사하고 있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대다수의 정치적 무관심과 일부의 정치적 과의식에 의해 촉발된 중우정치에 편승해 성립된 정치권력이 과연 국민의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치권력이 국민의 합의를 저버리면 국민은 그릇된 권력에 저항할 자유가 있다.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국민 스스로 참여할 수 있을 때, 현재의 정부에 반대하고 다른 대안으로 대체할 기회가 있을 때 비로소 그 정부는 정당하다. 개인의 권리신장과 공동체의 유지라는 가치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민주주의가 다른 정치적 대안들보다 나은 이유는 바로 민주적 권력 경쟁 메커니즘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회 내 민주주의든 당내 민주주의 등 민주적 경쟁 메커니즘을 무력화시키는 그 어떤 세력도 타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권력 독점을 치료하는 중요한 해독제다. 따라서 불의한 정치권력을 거부하는 권리는 민주주의 국민에게 내재된 천부적 권리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자신과 자신의 일파를 위해 도덕과 상식을 왜곡하는 ‘정치적 도덕가’를 몰아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신업 변호사, 정치평론가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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