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검찰이여, 현장이 책상보다 강해야 하지 않은가?-임강빈 시인의 “한 다리로 서 있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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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검찰이여, 현장이 책상보다 강해야 하지 않은가?-임강빈 시인의 “한 다리로 서 있는 새”
  • 오시영
  • 승인 2020.06.1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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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현장보다 책상이 더 막강한 힘을 갖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동물의 세계는 모두 현장이 강하다. 현장에서 먹이를 잡지 못하는 동물은 생존 자체가 위험하다. 그러기에 동물의 세계에서는 강자가 다수의 약자를 거느리며 군림한다. 그러면서도 강자는 먹이사냥에서는 언제나 앞장선다. 동물세계의 강자는 다수의 약자가 잡아오는 먹이를 기다리지 않으며 항시 먼저 솔선수범한다. 그런데 똑같은 동물인데도 인간만은 언제나 현장보다 책상이 강하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한 주먹깜냥도 되지 않은 약자들이, 먹물을 자꾸 먹으면서 힘 센 자들을 지배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 역전의 힘은 약자들이 뭉쳐서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의 틀 속에 덩치는 크지만 머리가 단순한 강자들을 몰아넣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한민국에서는 검찰제도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의 막강한 힘은 민주주의의 기본 구조에 맞지 않는다. 민주의 근본은 국민이 주인인 것인데, 결국 국민은 투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함으로써 선출직 공무원을 임명하거나 선거를 통해 교체시킴으로써 국민의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은 소위 먹물을 먹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일정한 시험에 합격하여 임명된 공무원일 뿐인데 그 힘의 행사에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있으니 민주주의의 기본구조에 맞지 않는 면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임강빈 시인의 시 “한 다리로 서 있는 새”를 본다. “기다란 다리를 한 새야/ 한 다리로 서서/ 넌 참 용하구나// 양복바지에/ 나머지 다리 하나를 마저 집어넣을 적에/ 중심을 잃을 때가 있다// 한 다리로 서 있는/ 너의 재주는 훌륭하구나// 마침 조용조용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한국의 산천/ 눈 내리는 풍경을 실컷 구경하거라// 아랫도리는 춥지 않느냐// 떠날 채비는 됐느냐// 너의 깃털이 하얗다/ 함박눈도 그렇다/ 비상할 때는 참 황홀할 거야” (전문, 같은 제목의 시집에 수록, 리토피아, 2004 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다. 특히 요즘처럼 검찰의 사건 조작이 있었다는 폭로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추악한 행위를 가만히 지켜보는 시인의 맑은 눈빛이 연상된다.

검찰은 현장이 아닌 책상에서 수사를 한다. 반면에 경찰은 대부분의 형사사건을 현장에서 수사한다. 범인을 체포하고, 증거를 수집한다. 범인을 체포하기 위하여 몇날며칠을 잠복하고 미행하기도 하고 탐문하기도 한다. 도망가는 범인을 추격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치고받고 싸우기도 한다. 범인의 칼에 찔리기도 하고 때로는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경찰은 현장에서 강하다. 하지만 서류작성 능력이 조금은 검찰에 비해 부족하였던 관계로 법원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수사기록을 작성하지 못함에 따라 검사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 “사건을 재판 요건에 맞게 문서화화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다시 말해 일제 강점기 때 제정되어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형법과 형사소송법이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보다 그 증거능력이나 증거력에서 우월성을 보장하여 왔기 때문에 그 우월성을 통해 유죄를 얻어내고자 범죄 증거를 서류화(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하는 책상의 권한을 검찰에게 부여하였던 관계로 검사의 권한이 막강했던 것이다.

범죄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하고 수사한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나 참고인진술조서는 “진정성립, 임의성, 내용” 중에서 하나만 부인하더라도 판사는 증거로 쓸 수 없다. 즉 증거능력이 없어져 버린다. 이처럼 피고인이 법원에서 위 셋 중 하나라도 부인해 버리면 그 범인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게 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검사가 책상에서 똑 같은 내용의 조서를 다시 작성하여 이를 별도로 “증거”라며 법원에 제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책상에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위 세 가지 중 “진정성립”만 인정되면, 나머지 “임의성과 내용”을 부인해도 증거능력이 인정되어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진정성립이라는 것은 피의자신문조서에 “서명한 자가 작성한 것이 맞나?”를 확인하는 것으로, 그것은 피의자가 조서 작성 뒤 이를 읽어보고 서명날인하거나 무인 등을 찍기 때문에 부인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어서, 검사의 강압행위에 의해 작성되었거나(임의성이 부인되거나 의심되더라도), 그 내용을 허위로 작성했다 하더라도(내용이 거짓으로 작성되었더라도) 모두 증거로 쓸 수 있다. 상식적이지 않지만, 이러한 모순된 제도가 당연한 것처럼 현재까지 유지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검찰과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나 참고인진술조서의 가치를 달리 평가해 온 것은 설마 사법시험에 합격한 엘리트 검찰이 고문이나 허위의 수사기록을 작성하겠느냐는 최소한의 신뢰가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고, 경찰은 검찰에 비해 형법이나 형사소송법 등의 지식이 부족하여 수사기록을 완벽하게 작성하지 못할 것이며 현장에서 폭력이나 욕설 등 폭압적 수사방법을 동원하여 수사를 할 것이어서 그 조서 등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불신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군 순사의 무자비함에 대한 잔상”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경찰도 경찰대학이라는 정규 과정을 통해 엘리트 경찰을 배출하여 경찰청장에 임명되는 단계에 이르렀고, 일선의 경찰들도 검찰의 사법시험이나 로스쿨 변호사시험에 못지않은 수준의 고강도 준비과정을 거친 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높은 수준의 내부 교육을 통해 능력이 향상되고 인권의식도 높아졌기 때문에, 경찰이 갖추고 있는 수사기법이나 수준이 사실상 검찰의 수사 수준을 웃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따라 법원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에서 공판중심주의를 천명하였음에도 여전히 검찰은 과거의 관행에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검경수사권조정이 이루어짐에 따라 오는 8월부터는 “검찰 작성의 조서에 대한 우월성”을 배제하겠다는 방침이 확정되었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검찰을 거의 멘붕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검사가 잘하는 것은 오로지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에 적합한 책상에서의 조서 작성”이었는데, 그래서 자신들이 작성한 조서를 법원에 제출하고, 이를 부인하는 피의자를 압박하여 유죄의 판결을 받아내 왔는데, 앞으로 그러한 방법이 원천 봉쇄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니 멘붕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가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뇌물죄와 관련한 참고인진술조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사망하여 비망록만 남아 있을 뿐인 한만호 씨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검사의 강압과 회유에 못 이겨(비망록의 기록 및 그의 법정 증언에 따르면) “주지도 않은 뇌물 9억 원을 한명숙 전 총리에게 주었다.”라고 진술하였고 그 조서가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었으나, 제1심 재판과정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그 증거능력을 동의하지 않자, 한만호 씨를 증인으로 불러 증언케 하였으나 한만호 씨가 참고인진술조서의 기재내용과 달리 “나는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의 뇌물을 준 사실이 없다.”라고 증언함으로써 한명숙 전 총리의 1심 무죄판결에 결정적 증거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정형식 부장판사는 한만호 씨를 증인으로 불러 다시 확인하는 절차 없이 “검찰 작성의 한만호 씨에 대한 참고인진술조서의 기재 내용”과 “1심 법정에 출석하여 직접 증언한 한만호 씨의 증언 내용” 중 전자를 믿겠다는 황당한 결론을 내린 뒤 한명숙 전 총리에게 2년 징역이라는 유죄의 실형을 선고하였다. 만일 8월부터 실시될 “검사 작성의 각종 조서”의 증거능력을 “경찰 작성의 각종 조서”의 증거능력처럼 “진정성립, 임의성, 내용의 진실성” 등을 모두 인정하지 않는 한 증거로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면,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위 정형식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유죄 판결 선고”는 불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위 제도가 실시된다면 검사 작성의 “한만호 씨에 대한 참고인진술조서”는 재판과정에서 “아예 없는 것”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나는 한명숙 전 총리에게 9억 원의 뇌물을 준 사실이 없다.’라는 한명호 씨의 법정 증언”만이 증거로 제출된 것이 되어 “서울고등법원 정형식 부장판사가 아무리 유죄를 선고하고 싶어도 선고할 증거가 없는 셈”이 되어 “무죄선고”를 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위 제도가 도입되면 마치 검사가 책상을 빼앗기는 형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책상에 앉아 그럴 듯하게 수사서류를 잘 만들어 제출하면 자판기처럼 “유죄판결”이 쏟아져 나왔는데,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사나 참고인진술조서가 “피고인의 법정에서의 ‘싫어, 증거로 쓰는 것’”이라는 한 마디에 휴지가 되고 마는 참담함을 수없이 경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검사도 이제는 경찰처럼 현장에서 증거를 찾기 위해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형국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조서의 중요성이 사라지게 되면 현재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을 검찰청으로 불러 밤새워 가며 수사해야 할 의미가 없게 되고 만다. 최근에 다시 언론에서 조명되고 있는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 간첩조작사건”에서 그 여동생 유가려 씨를 “수십일 간 격리된 상태에서 허위 자백의 참고인진술조서”를 받아 이를 유죄 증거로 제출하려 하는 시도가 자행될 수 없고, 조국 전 법무부장관 표창장 발급 사건과 관련하여 수많은 사람을 불러서 검찰에서 참고인조사를 할 이유가 없게 되고 만다.

임강빈 선생의 “한 다리로 서 있는 새”를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한다. 나약한 새를 보며 한 다리로 설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보다 훨씬 강함을 보며, 바지가랭이에 두 번째 발을 끼다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발견하고 겸손해 한다. 어디에서 날라 왔는지 알지 못하는 철새이지만, 아름다운 한국의 산천을 원 없이 보고가라고 응원하며 이 세상 살아가는 우리 인간 역시 소풍 온 어린 아이처럼 실컷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을 넌지시 속삭이고 있다. 그러면서 함박눈 맞는 인간과 새의 적합한 상관관계를 통해 맑은 세상을 향한 동경을 그리고 있고, “비상할 때의 황홀함”과 “죽음을 맞이할 때의 완결성을 향한 순수”를 함께 대비하고 있다. 다음 달에 임강빈 선생의 기념시비가 사후 4년 만에 대전 보문산공원에 세워진다니 공원을 찾는 많은 이들이 시의 향기에 빠질 것 같다.

검찰의 속사정을 다른 일반 국민들보다는 나름 알고 있는 편이라 할 수 있는 법률가로서, 검찰을 보면서 느끼는 소회는 “업보로다, 업보!”라는 생각이다. 그 전에야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고, 감히 항의를 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정치권력과 결합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단맛쓴맛을 다 보아 왔는데, 문재인 정부가 들어온 후 정치권력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진 것 같은데, 다시 말해 정치권력의 하수인 위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한 것 같아 초기에는 아주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독자적 지위가 강고해지기보다는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라는 압박을 받게 되고,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한명숙 전 총리 사건도 유죄로 만들고, 유오성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도 잘 되어 가는 듯 하다 결국 무죄로 결론 났지만 관련 검사들에 대해서는 무혐의라고 불기소처분하여 잘 넘어가는 듯 했지만, 여기저기에서 모해위증교사를 받았다며, 예전에는 입도 뻥긋하지 못할 것들로 치부되던 증인들이 자꾸 바른 소리를 하여 자신들을 궁지로 몰아넣으려 하고, 아무도 자신들에게 강압적이지 않는 자유로운 민주주의 세상이 엄청난 압력이 되어 자신들의 비위사실을 노출시키고 있으니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말이다.

더군다나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와 부인이 연관된 십 수 년 전의 사건에서부터 최근의 사건까지 모두 잘 처리한 듯싶은데 팥죽 끓듯 자꾸 두더지처럼 뚫고 나오니 괴로울 것이다. 한 다리로 서 있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권력을 남용해 온 책상의 자기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책상이 현장보다 강하면 안 되지 않는가?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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