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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물 한 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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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물 한 바가지
  • 최용성
  • 승인 2020.06.05 11: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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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최용성</strong>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예루살렘의 큰 부자이자 귀공자인 유다 벤허는 총독 살인미수라는 엄청난 누명을 쓴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지하감옥에 갇히고, 자신은 재판도 받지 못한 채 갤리 선(船)의 노예로 끌려간다. 불타는 사막을 지나 도착한 마을은 나사렛. 극심한 갈증으로 쓰러지기 직전이지만 노예들은 군인과 말[馬] 다음 순서로 간신히 목을 축일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유다 벤허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서슬 퍼런 로마군의 위협에 마을 주민 누구도 그에게 물을 주지 못한다. 결국, 절망에 빠진 벤허는 힘없이 땅바닥에 쓰러진다. “살려주세요. 하느님”이라고 힘겹게 내뱉으며. 이를 지켜보던 한 목수 청년이 일을 멈추고 물 한 바가지를 들고는 유다 벤허에게 다가간다. 청년은 물로 유다 벤허의 얼굴을 적시고 그를 부축해 물을 마시게 한다. 로마군 백부장(百夫長. centurion)이 채찍으로 이를 저지하려고 나서다가 벤허에 물을 준 청년과 눈이 마주친다. 순간 지휘관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멋쩍은 듯 자리를 피한다. 정신을 차린 유다 벤허는 절망뿐일 갤리 선에 끌려가면서도 삶의 의지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다시 찾는다. 위대한 구원의 시작이었다. 유다 벤허에 물을 준 청년은 누구였을까? 3년이 지난 뒤 유다 벤허는 그 청년이 예수였음을 알게 된다.

윌리엄 와일러(William Wyler)가 감독하고 찰턴 헤스턴(Chalton Heston)이 열연한 1959년 영화 <벤허>(Ben-Hur)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이 영화에서는 음악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작곡가 미클로시 로자(Miklós Rózsa)의 이름도 기억해두자). 이 장면에는 실로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우선 물을 그리스도의 여성성 또는 신의 모성과 연결하는 김정란 시인의 사유에 공감이 간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자 형체가 없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모습이 어머니의 품과 같으니 말이다. 신이 물로 상징된다면 기성 교단이 규정한 바와는 달리 신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포용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 물은 생명을 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죄를 씻어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예수가 물로 벤허의 얼굴을 적시는 장면에서 세례를 연상할 수도 있다. 신과 인간은 물이라는 생명의 근원을 통하여 서로 만난다. 신과 인간이라는 인문학적 주제 혹은 신학의 관점에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장면인 셈이다.

그러나 실로 이 장면이 종교나 신을 떠나 우리에게 보편적인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목마른 사람에게 주는 물 한 바가지의 힘에서 나온다. 우리는 유다 벤허이면서 예수이다.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이기에 타는 목마름 끝에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고, 그런 이에게 물 한 바가지를 건네주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의지해야 살아갈 수 있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때 나는 유다 벤허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 나는 예수이다. 그 도움은 거창할 필요조차 없다. 평소에 물 한 바가지는 별다른 가치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 물 한 바가지를 마실 기회조차 없을 때 내가 내민 물 한 바가지는 한 사람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물 한 바가지를 내미는 일조차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와 연결될 때에는 용기나 회심(悔心)이 필요할 때도 있다.

로마군 백부장처럼 권력이, 현대 사회에서 자본이나 언론 그리고 지식인들이, 혹은 내 이기심이 목마른 이에게 물 한 바가지를 내미는 일을 막거나 주저하게 만들 때가 그렇다. 나는 과연 목마른 누군가에게 물 한 바가지를 제대로 건넨 적이 있을까.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21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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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해진 한국사회... 2020-06-05 12:54:48
물 아니라 꿀을 줘도 고마워하기는 커녕 네가 뭔데? 하는 식이 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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