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55)-한명숙 전 총리 사건과 검찰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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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55)-한명숙 전 총리 사건과 검찰조서
  • 신종범
  • 승인 2020.06.0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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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5년 전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던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한 탐사전문매체에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주었다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사장과 구치소에서 함께 지냈던 재소자와의 인터뷰를 보도하고 난 후 추가 폭로가 이어지면서 5년전 사건이 다시 소환된 것이다. 판결에 대한 의혹의 요지는 한만호 전 사장이 검찰의 시나리오에 따라 검찰 조사에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주었다고 허위의 진술을 하였고, 법정에서 한 전 사장이 검찰에서의 진술을 부인하자 진술 번복을 탄핵하기 위해 검찰이 당시 한 전 사장과 구치소에게 함께 있었던 재소자들까지 회유하였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 사건은 판결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 돈을 주었다는 한만호 전 사장이 법정에서 검찰에서의 진술을 번복하자 제1심은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항소심에서는 이를 뒤집고 유죄를 선고하였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면서 공판중심주의에 반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더욱이 당시 검찰에서 한만호 전 사장에 대한 진술을 받으면서 협박과 회유가 있었다는 한 전 사장의 비망록이 있었음에도 항소심과 대법원은 법원에서의 진술보다 검찰에서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았다.

한만호 전 사장의 검찰에서의 진술은 조서로 작성되어 법원에 증거로 제출되었다. 이처럼 수사기관에서 작성된 조서는 원칙적으로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는 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사가 작성한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성립의 진정(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음)이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여 인정되거나 영상녹화물 등 객관적 방법에 의하여 증명되어야 증거능력이 있다.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피고인이 그 내용을 인정(진술한 내용이 사실임)하여야만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고인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성립의 진정이 원진술자의 진술이나 영상녹화물 등 객관적 방법에 의하여 증명되고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공판기일에 원진술자를 신문할 수 있었던 때 한하여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이처럼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이유는 수사기관이 진술을 받는 과정에서의 위법행위를 방지하고,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 검사가 작성한 한만호 전 사장에 대한 진술조서는 피고인 아닌 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에 해당한다. 한 전 총리측에서는 이를 증거로 사용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한 전 사장이 법정에서 그 조서가 자신이 진술(한 전 총리에게 돈을 주었다)한 대로 기재되어 있음을 인정(성립인정)함으로써 증거능력이 인정되었다. 법정에서 한 전 사장은 검찰에서의 진술은 검찰의 회유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사실이 아니고,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진술(내용부인)하였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은 다른 간접증거를 종합하여 한 전 사장의 법정진술보다 검찰에서의 진술이 더 믿을만하다고 보아 유죄를 선고하였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대하여 법원은 현행법에 따라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쳐 자유심증주의에 따라 판단했다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증거능력이 인정되어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된 검찰 작성 조서의 신빙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당시 검찰의 수사과정이 적법 또는 정당하였는지에 대한 의심이 쉽게 걷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전 사장을 70여 차례나 소환하고도 법원에 제출된 조서는 5회분에 불과하였던 것이나, 주변인들에 대한 수사, 별건 수사 등을 통한 압박, 협조하면 편의를 봐주겠다는 회유 등 그동안 검찰 수사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사례들이 종합적으로 이 사건 의혹으로 제기되고 있다.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밝히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의혹은 규명되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함에 있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것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수사기관은 수사 등 직무를 수행할 때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공정하게 하여야 하며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의 의무가 있다”, “수사기관은 피의자의 진술을 조서화하는 과정에서 조서의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 수사기관은 수사 및 조서작성 과정에서 이러한 의무를 잘 지키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신종범 변호사
법률사무소 누림
http://nulimlaw.com/
sjb62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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