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탈진실(Post-Truth)’의 시대와 정치학 대중화의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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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탈진실(Post-Truth)’의 시대와 정치학 대중화의 절박함
  • 신희섭
  • 승인 2020.05.22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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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2020년 5월 19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보건기구(WHO)를 탈퇴할 수도 있다고 WHO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냈다. 이전부터 WHO가 지나치게 중국 편향적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던 입장에서 한 걸음 크게 나간 것이다. 자금지원철회와 탈퇴 가능성 시사.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19에 대한 ‘중국 책임론’과 함께 이 카드를 대선 카드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 전략의 이유는 단순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2020년 5월 18일 통계로 1,527,664명)와 사망자(19,891명)를 낸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 사태 대응실패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경합 주(swing–sate)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보다 낮게 나오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WHO에 책임 돌리는 전략’과 ‘경제활동 재개전략’의 2가지 전략으로 지지층을 끌어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트럼프의 사용이 예상되는 전략에 문제가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의 마크 브라이스 교수가 명명한- ‘Trumpism’을 사용할 것이다. ‘트럼프주의(Trumpism)’는 ‘대중영합주의’와 ‘인종주의’로 엮인 ‘외국인 혐오주의’를 이념으로 하여 가짜뉴스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특히 몇 가지 진실과 몇 가지 가짜를 교묘하게 섞음으로써 트럼프는 현 상황을 최대한 단순화할 것이다. 그리고 흑백 양분법 구도로 만든 뒤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 중국에 유권자들의 불만을 돌릴 것이다. 특히 가을에 코로나 대유행이라도 오면 그의 대선 전략은 극단을 향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전략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것을 말해준다. 그것은 ‘탈진실(post- truth)’의 문제이다. ‘탈진실’은 가짜뉴스를 동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실수’에 따른 가짜뉴스, ‘진위확인’이 안된 가짜뉴스, ‘의도’적인 가짜뉴스라는 3가지 형태의 가짜뉴스가 교묘하게 유권자들을 움직이는 것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소독제 주입이나 말라리아약 복용 발언을 보라. 이런 주장은 합리적 시민에게는 황당하지만, 트럼프의 지지자들에는 먹힌다.

이런 ‘탈진실’을 활용하는 정치가 미국에서만 가동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 극우나 극좌 모두 ‘진실(truth)’ 대신 ‘사실(fact)’을 자신의 편의에 따라 해석하거나 왜곡한다. 물론 선거 때가 되면 한국 정치무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탈진실’을 활용하는 정치의 세계적 확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탈진실’을 활용하여 당선되지만, 공약은 책임지지 못하는 대중영합주의의 정치가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원인은 경제학의 ‘수요-매개-공급’의 3축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공급’ 측의 정치인. ‘매개’ 측의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와 새로운 언론환경. ‘수요’ 측의 유권자들의 심리적 정향.

구체적 논리는 이렇다. 정치인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고 사실에 손을 댄다. 거대 언론과 달리 소규모의 뉴미디어들은 더 자극적인 이야기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연다. 자극적일수록 ‘슈퍼 챗(super chat: 유튜브에서 시청자가 콘텐츠 제작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상품)’이 쏟아져 들어온다. 유튜브의 심의에 걸려 광고가 안 들어와도 어마어마한 ‘슈퍼 챗’은 소규모 미디어에 부를 만들어준다. 유권자들의 심리적 정향은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자 한다. 리 매킨타이어가 저서 『포스트 트루스(원제 POST-TRUTH)』에서 제시한 것처럼 ‘인지 부조화’, ‘집단동조’, ‘확증 편향성’이 유권자를 쥐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름의 이론이 되었든 인간의 심리는 어렵게 찾을 수 있는 ‘진실(truth)’보다는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fact)’의 곡해된 해석을 붙잡기 마련이다. 약간의 도덕적 불편을 느낀다면 자신에 대한 ‘의도적인 합리화’만 되면 그만이다. 보고 싶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것은 내 머릿속에서 실재하는 사실로 구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요-매개-공급을 통한 분석은 우리를 낙심하게 만든다. 분석은 깨끗하지만, 해결책은 난망하기 때문이다. ‘탈진실’을 악용해서 한 표라도 얻으려는 정치인을 설득하여 ‘진실’만을 말하게 하자는 것은 기도하는 자세와 다를 것이 없다. 미디어가 퍼 나르고 수요자 측이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때, 정치인의 합리적 선택은 탈진실로 곱게 포장한 ‘선물’을 지지자들에게 맘껏 나누어 주는 것이다.

블로그, 개인방송, 팟 캐스트, 유튜브. 확장성이 높은 뉴미디어는 새로운 콘텐츠의 발빠른 제공이 영향력 유지와 확대에 있어 절대적이다. 끊임없이 요구되는 새로운 콘텐츠를 ‘신선함’과 ‘자극성’과 ‘속도’에 대한 뉴미디어 시청자들의 요구에 맞추는 건 어렵다. 게다가 내부적 자정작용이나 거름장치(filter)가 없는 이 조직의 특성은 해결책 모색을 더욱 어렵게 한다. 최근 가짜뉴스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자유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대의명분 아래서 수없이 생겨나는 신생 미디어들을 일일이 규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결국, 유권자밖에 없다. 수요가 줄면 공급은 준다. 미디어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빠른 사회변화와 다양한 압력이라는 ‘사회 구조적인 요인’과 개인 내면의 ‘심리적 방어기제’들과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의 반복적 강요’는 유권자들이 차분히 합리적으로 사안을 살피고, 어렵게 왜곡과 오류를 사실에서 드러내는 숙고의 과정을 삭제시킨다. 게다가 믿고 싶은 것과 다른 사실이 입력되어 스스로 양비론이 되는 경우, 쉽게 편한 해석을 찾아가게 되는 인지적 편향성까지 끼어들면 유권자에게 ‘정밀심사(screening)’기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교착(deadlock).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 그런데도 해결의 실마리는 찾아야 한다.

결국, 조금이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유권자뿐이다. 대단히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유권자들이 좀 더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과 왜곡을 거부하는 합리성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미 인지편향이 강해진 이들은 ‘합리성’이란 필터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청소년이나, 강력한 인지적 편향이 아직 덜 형성되어 열린 자세를 가진 시민들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인지편향이 있는 성인들에게도 교육을 통해 진실에 좀 더 관심 가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정치학의 대중화는 절실하다. 모호한 ‘이념’이 강화되면서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이분법이 유행하고 있는 현시대를 좀 더 냉철하게 보는 정치‘학’은 현재와 미래 시민에게 더 많은 균형적 자세를 제시해야 한다. 말 그대로 ‘일상이 정치’니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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