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아버지와의 대화’로 상상한 대통령제도와 아마추어리즘의 관계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아버지와의 대화’로 상상한 대통령제도와 아마추어리즘의 관계
  • 신희섭
  • 승인 2020.05.15 10: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얼마 전 아버지와 늦은 시간까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주제는 과거의 추억들, 현재 코로나 사태의 건강관리, 좀 더 먼 미래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고생한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 많은 추억을 남기기 마련이다. 필자의 아버지는 12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부모 세대의 다른 많은 분처럼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청소년기를 지내는 것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같은 세대분들이 그러했듯이 가난이 싫어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해 연고가 없는 곳에서 힘든 생활을 하셨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면서 한 가지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무엇을 결정하거나 판단해야 할 때 물어볼 수 있는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었다고 하셨다. 팔순을 훌쩍 지난 이 노인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수많은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살면서 처음 맞닥뜨리는 어떤 순간순간에는 “아버지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묻고 싶었던 그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 느끼는 ‘존재의 부재’는 이성적으로는 자신을 이겨내고 성장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었을지언정, 감성적으로는 자신 스스로를 외롭고 불안하고 더 나가서는 초라하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왔다. 이 눈물의 의미가 연민인지 공감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 경험과 연륜을 가지신 지금의 아버지도 사실 아버지로서 아마추어 시절을 보냈다. 우여곡절을 거치고 실수를 하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몰라 마음고생을 하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자식의 눈으로 볼 때 아버지가 경험한 삶의 모두가 자식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프로 아버지”의 모습 이면에는 “아마추어 아버지” 시절이 있다. 그리고 “아마추어 아버지”에게는 어느 순간 자신이 길을 물으며 배우고 싶었던 “프로 아버지”가 없었다. 그 시절 아버지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많은 눈물을 흘리며 끝난 대화는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속 깊은 말씀을 들었다는 것 말고도 한 가지 질문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했다. 그것은 꽤 오랫동안 고민 중인 정치제도와 관련된 것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모든 대통령‘제도’는 아마추어리즘에 기초한다.”라는 명제에 관한 것이다. 아버지에서 대통령제까지 생각이 미친 것은 ‘아마추어 아버지’가 묻고 싶었던 그 아버지의 아버지 즉 ‘프로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국가의 정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지도자로서 대통령이 경험하는 어려운 결단의 순간과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상상력 때문이다. 다만 대통령 ‘개인’보다 ‘제도적 측면’을 보는 것이 예측 가능성과 개선 가능성 차원에서는 중요할 것 같다.

정치제도 관점에서 대통령‘제도’는 ‘프로페셔널’ 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의원내각제와 대비해보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의원내각제는 첫째, ‘정당 중심의 정치’와 둘째, ‘집단적인 결정’과 ‘집단적 책임추궁’이라는 두 가지를 제도적인 특징으로 한다. 반면 대통령제는 첫째, 대통령이라는 ‘인물 중심의 정치’와 둘째, ‘개인적 결정’과 ‘개인에 대한 책임추궁’이라는 두 가지를 제도적인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내각제는 유서 깊은 정당을 통해 미래 지도자를 ‘양성’한다. 또한, 정당이 수상과 같은 지도자 개인에게 하나의 견제장치가 될 수 있다. 반면에 대통령제는 벼락스타와 같은 정치 외부자(political outsider)가 ‘부상’하거나 ‘발견’된다. 또한,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개인인 ‘인물’에게도 지지를 보낸 이상 정당이 대통령 개인을 견제하는 것이 어렵다.

대통령제도가 아마추어리즘에 기대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을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역사적인 관점에서 대통령제도가 만들어졌을 때의 속성이다. 미국에서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제도를 만들었을 때 그는 유럽식 왕정 제도와 다른 제도를 ‘발명’하였다. 통치에 있어서 정당과 의회가 아닌, 왕이지만 왕이 아닌, 새로운 ‘대통령(president)’이라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워싱턴 자신은 스스로 2번의 임기를 마치고, 권좌에서 내려와 농민으로서의 삶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통령제도는 워싱턴과 같은 특출한 인물이 자리를 차지했을 때는 잘 돌아가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치공동체 전체가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만들어진 대통령제는 유럽식 왕정과 함께 유럽의 ‘의회-정당’ 중심의 정치도 거부하였다. 그래서 참신한 아마추어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전통을 설립했다.

둘째, ‘권력 이양’이라는 제도적인 관점에서 대통령제도는 제도적 권력 연결(이양)보다는 인적인 연결(이양)을 특징으로 한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긴다. 이 연결은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 가깝다. 물론 현대 정치에서 대부분 대통령제 국가에서도 정당은 개입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당의 제도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제도는 제도적인 연속성이 떨어진다. 같은 정당의 차기 대통령마저도 레임덕에 빠진 전임대통령과는 다른 각을 세워야 지지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다 보니 대부분 대통령은 제도적인 연속성보다는 개인 스타일을 강조하는 통치를 하게 된다.

대통령제도가 아마추어 대통령들에 의해 통치되는 것은 만들어진 원리나 운영되는 원리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듯 보인다. 문제는 개인화되고 단절된 통치제도가 가진 아마추어리즘을 완화할 수 있는지에 있다.

대통령제도는 두 가지에 의해 보완될 수 있다. 첫째, 다른 제도를 통해서 제도적 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 정당제도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제도에서 정당은 ‘이중적’ 존재라는 점이다. 정당은 대통령에게 조직으로서 힘을 부여하지만, 대통령의 인적인 통치를 제도적으로 견제하기도 해야 한다. 그러니 정당이 무한정 센 힘을 가질 수도 없다. 둘째, 리더십을 함양하게 하는 지도자에 대한 ‘교육’이다. 미래의 리더와 미래의 참모를 교육함으로써 우리는 평범한 개인을 좀 더 특출난 개인으로 만들 수 있다는 약간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 만약 정당과 같은 견제장치에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면 대통령제도의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하는 길은 교육에 달렸다.

일상에서 ‘아마추어 아버지’는 ‘프로 아버지’에게 묻고 배우고 싶은 순간이 있다. 마찬가지로 많은 책임이 따르는 ‘아마추어 대통령’도 ‘프로 대통령’에게 배우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때 답을 줄 수 있는 이는 자신보다 앞서 살았고 경험했던 프로페셔널한 지도자들이다. 그것이 자국이든 외국이든. 그런 점에서 리더십은 또 다른 리더십에 의해 재생산될 수 있다. 자식이 자라 ‘아마추어 아버지’가 되고, 경륜을 거쳐 ‘프로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교육이 그 중심에 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