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선진국에 대한 단상, 우리는 선진인!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선진국에 대한 단상, 우리는 선진인!
  • 오시영
  • 승인 2020.05.08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우리는 매일 매순간 걷는다. 실재 걸음을 걷기도 하고, 차를 타고 걷기도 하고, 정지 속에서 걷기도 한다. 걷는다는 건 살아 있는 자만의 특권이다. 결국 걷는다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해 준 한정된 시간 속에서만 가능한 시간과의 동행이다. 살아 있는 자, 모두가 걷는데 차이라면 어디쯤 걷고 있느냐를 알고 있느냐, 아니면 모르고 있느냐 정도가 아닐까? 어느 순간 어디쯤 걷고 있는지 안들 모른들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는 무한 시간 속의 여행자가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크지 않을까 싶다. 부지와 무지가 영원한 시간 속에서는 같은 것이 되고 말더라도, 우리 인간은 영원한 시간 속에서 아주 짧은 일순간을 사는 존재이기에, 그 일순간을 영원으로 치환하여 현재의 자신이 어디쯤 존재하는지 아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코로나19사태는 우리에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동경의 대상으로 교육받아 온 “선진국”이라는 개념을 깊이 생각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60년대초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구호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철없던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3.15부정선거의 현장에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부터 4.19혁명 시대, 5.16군사쿠데타 시대를 온전히 거치며 학교 교육을 받아 온 시절 내내 어린 우리들에게 매번 들려온 “교육구호”는 “선진국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루 빨리 우리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라는 저 한 문장에 “우리는 후진국이고, 못 배우고 무식하다, 가난하고 비문화적이다.”라는 자기 비하의 극단적 열등감과 열패감이 숨어 있었으니, 그러한 자기비하의 비루한 열등의식을 우리 심장 깊숙이 새기는, 비석에 글을 새기는 석공의 망치질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너희는 못 났고, 비루하고 열등할 수밖에 없는 후진국 가난한 백성이라는 세뇌교육을 집요하게 받고 살아온 세대, 그 세대가 바로 지금의 60대 중후반 이후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세대였기에 그 가난을 극복하고 후진국, 개발도상국 상태를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초조감으로 열악한 노동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오로지 “잘 살아보자!”라는 구호 하나를 좇아 인격과 인권을 모욕당하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에 고개 끄덕이며 무조건, 맹목적으로 경제적 부를 축적하고자 일생을 달려 왔던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의 60대 중후반 이후의 세대는 산업화 시대의 주역이 될 수 있었고, 지금의 국가경제의 기반을 닦는데 위대한 헌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심리 저변에 깊게 깔려 있고, 그러한 인식이 뭔가 모르게 편하게 돈을 벌고 개인의 행복 추구에만 관심을 보이는 듯한 소확행세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경우에는 적대시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야말로 너무나 똑똑한 세대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후진국, 개발도상국을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경제개발정책을 국가통치의 최고 목표로 내세웠던 박정희, 전두환 독재체제는 빵 문제가 해결되면서 점차 정신적 자유를 갈망하기 시작한, 그래서 주변을 둘러볼 아주 작은 여유를 갖게 된 위 산업화세대를 통제하기 위해 “북한 적화통일”이라는 6.25전쟁 트라우마를 확대재생산하여 국민들에게 전쟁의 공포심리를 극대화시켜 사회의 모든 영역에 날카로운 송곳처럼, 비수처럼 “전쟁공포심”을 일상화시키는 “공포의 경제학”을 상시화하였다. 이러한 전쟁 공포감은 “후진국 대 선진국”이라는 “선진국 부러움 교육”을 통한 “반의적 후진국 열등 교육”과 결합하여 우리 국민의 삶을 지배하는 통치사상으로 기능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이 사망했던 때, 우리 국민은 전쟁 불안심리가 작동하여 생필품 사재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당시 마트에는 라면이나 생수, 부탄가스 등의 생필품이 동이 나는 품귀현상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당시는 김영삼 정권시대여서 사실상 군사독재가 막을 내린 문민정부시대였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그 동안 세뇌 받아 온 공포경제학에 익숙했기에 생필품 사재기라는 즉각적 반응을 보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삼년 뒤 1997년 아이엠에프사태가 우리에게 발생했을 때에도 우리 국민들은 생필품 사재기에 나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고 보니 두 번의 국민적 사재기 광풍(?)이 일어난 것이 모두 김영삼 대통령 집권시대였다. 한 번은 김일성 주석과 김영삼 대통령이 1994. 7.25-27. 사이에 최초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하고서도 1994. 7. 8.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자 북한 적대시 정책으로 태도를 바꾸어 김일성 주석에 대한 조문마저 거절하면서 남북이 경색되었고, 위와 같은 전쟁 불안심리로 사재기 광풍이 일어났던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위 때 지미카터 전 미국대통령의 중재로 성사된 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호응으로 김일성 주석 사후 조문사절을 보냈더라면 북한 다음 정치 지도자인 김정일과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나라의 통일이 앞당겨지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는데 참으로 아쉬운 결과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삼 대통령은 굴러 들어온 호박을 차버리는 잘못을 범하였다고 하겠다.

결국 조문 거절이라는 출구봉쇄정책을 씀으로서 남북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아버지의 조문을 거절한 우리 정부의 협소함에 분노한 김정일 북한 체제의 반감으로 전쟁 공포라는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우리 경제마저 도약하는데 지장을 받게 되고 결국 정권 말기에 아이엠에프 국난이라는 경제적 패닉상태를 겪게 되고, 생필품 사재기라는 두 번째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아이엠에프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금모으기운동으로 상징되는 험난한 시대를 보내며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었지만,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라는 이름으로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로 상징되는 3대 국정목표를 내세우고 정치경제의 패러다임을 전쟁과 대결에서 평화공존으로, 차별에서 균형으로 바꿈에 따라 우리 국민의 의식의 선진화를 도모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사태를 통해 우리가 여태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선진국들 –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호주, 캐나다, 이태리 등의 국가에서 제대로 코로나19사태에 대처하지 못한 채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국민들은 생필품 사재기에 극성을 부리는 것을 보면서, 과연 그들이 우리보다 더 선진국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선진국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 자체가 불분명하지만,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이라는 개념과 대비되는 상대적 개념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발전된 나라 정도로 정의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닌가 싶다.

우선 정치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 즉 국민이 주인인 나라일 때 정치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라 부르기에 충분하다. 주권재민의 실효성이 보장되고, 모든 국민의 투표권과 언권이 살아 있고, 모두가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있기 때문이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평등의식이 강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국민의식이 발효되고, 자유롭고 평등한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고, 심지어는 대통령마저 평화적으로 탄핵할 수 있는 나라야말로, 탄핵을 통해 국가최고지도자를 교체할 수 있는 나라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반문하는 것으로 정치선진국임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경제적으로 볼 때도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어선지 오래 되었고, 세계에서 일곱 번째 5030클럽(인구 5천만, 국민소득 3만불)에 가입한 나라가 우리나라임을 볼 때 이미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어느 나라에 못지않은 경제선진국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코로나19사태를 통해 1/4분기 세계경제가 곤두박질쳤지만, 우리나라 경제는 가장 튼실하게 버티고 있다. 미국 –4.8%, 독일 –1.9%, 중국 –6.8%, 일본 –4%인데 반하여 우리나라가 –1.4%로 가장 낮은 마이너스 성장, 즉 가장 높은 경제성장을 상대적으로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사태라는 긴급상황에서 가장 신속하고 정확하게 경제대책을 세움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음이야말로 경제체질이 얼마나 건강한가를 알 수 있는 지표라고 할 것이다. 물론 청년층 고용문제, 경제양극화에 따른 내부갈등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이러한 고질적 문제는 모든 나라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대병이고, 아이엠에프에서 수년 동안 대한민국의 거시경제지표가 세계1위라고 발표해 온 “경제적 내공의 튼실함”이 이번 코로나19사태로 증명되었다 하겠다. 거시경제 1위라는 말은 대한민국 경제가 거대한 항공모함처럼 경제태풍에도 불구하고 망하지 않을 나라, 망하더라도 가장 나중에 망할 나라라는 말과 같다. 우리 모두 경제선진국이라는 점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겠는가?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통신, 전기, 교통, 교육, 치안 등 모든 사회적 인프라가 세계에서 최고 수준으로 갖추어져 있는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 아닌가 싶다. 인터넷 세계 최고 광속도의 나라라는 말로 상징되는 통신망은 세계 최고이다. 전기 역시 탈원전을 선언해도 될 만큼 공급과 소비가 안정되어 있고, 전기료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하고, 전기의 질도 최고 수준이다. 어렸을 때 전기가 자주 끊기고, 10촉짜리 어두운 전깃불을 켜고 공부했던 기억도 새롭다. 하지만 지금은 어둠을 모르는, 낮과 같이 밝고 환한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교통도 교통요금환승제도로 상징되는, 전국적인 교통망이 도로, 항만, 항공으로 정비되어 있고, 대중교통요금이 참으로 저렴하고, 시설도 청결하고 우수한 나라가 어디에 또 있을까? 교육수준은 또 어떠한가.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률이 80%에 이르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교육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이나 독일도 50% 정도의 수준에 불과한데, 전 국민이 고등교육의 수혜자라는 것은 국민들의 평균적 지적 수준의 고도화, 전문화, 보편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적 정책 방향 결정과 의사소통, 인격 존중의 가치관 확립, 정보 활용의 선진화 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수준도 인공위성을 만들고, 전투기를 만들고, 잠수함을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고, 도대체 못 만드는 것이 없는 나라, 그게 대한민국 아닌가 말이다.

어디 그뿐인가? 문화 수준은 세종대왕의 한글을 바탕으로 하여 문맹률 세계 최저, 음주가무를 즐기는 국민성에 의한 음악, 미술, 문학, 영화, 연극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 우수성을 과시하고 있고, 이제는 체력의 신장으로 축구, 배구, 농구, 야구, 수영, 피겨, 스케이팅, 탁구, 골프, 양궁 등 모든 체육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뤄낸 것 또한 사실이다. 박세리로 상징되는 골프, 김연아로 상징되는 피겨, 박찬호로 상징되는 야구, 김연경으로 상징되는 배구, 박태환으로 상징되는 수영, 손흥민으로 상징되는 축구 등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빠지지 않을 훌륭한 운동선수들도 많이 배출되고 있고, 생활체육의 일상화로 곳곳에 설치된 문화센타, 체육시설 등 문화체육시설을 즐길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도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국민의료보험체계가 정비됨으로써 저렴한 비용으로 전 국민이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어 이번 코로나19사태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자랑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아직도 북유럽복지국가에 비해 복지가 부족한 점이 있고(이 점은 시간이 흐르고 복지비 추가 부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주택 등 부동산정책에 어려움이 있고, 정치인들의 행태에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지만 선진화의 도도한 물줄기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거대한 해결사가 되리라 믿는다.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진국이라는 개념이 상대적 개념임에 비추어, 우리도 이제 선진국, 선진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며 열등의식 교육을 받아온 필자 연배 이상의 산업화시대 역군들도 이제 그 후진국 열패감에서 벗어나 자식들처럼, 손자들처럼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부심, 긍지, 독립적 가치관을 자랑스럽게 가슴에 품고, 미래지향의 기쁨을 누렸으면 한다. 우리나라, 선진국이지 않는가? 그대, 선진인이지 않는가? 아직 후지다고?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할꼬. 그래도 우리 모두 선진국 합시다. 다 같이 외칩시다, 우리는 선진인이야, 꺄오!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