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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사막에서 자란 ‘한국’ 벼 : 다시 보는 아랍에미리트의 지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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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사막에서 자란 ‘한국’ 벼 : 다시 보는 아랍에미리트의 지정학
  • 신희섭
  • 승인 2020.05.0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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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게다가 ‘이동’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이 명제는 COVID-19로 사람들의 이동이 멈추자 세계 경제가 그대로 얼어버린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경제통합이 가장 발전한 유럽연합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국가)’의 경제가 2020년 -5%에서 –12%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까지 했다. 며칠 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2020년 봄 경제전망’에서도 유로존의 GDP는 7.7% 감소할 것이란 예측까지 나왔다. 사실 비관적 입증자료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경제활동이 멈춘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동’ 즉, ‘사회적 교류’를 하면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지정학은 그런 인간의 노력을 잘 보여준다. 기술발전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기술은 지리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사회적인 의미는 바꾸어버린다. 최근 파쇄공법이란 기술발전에 따라 권력의 새로운 원천이 된 미국의 셰일가스와 셰일오일을 보라.

코로나로 다소 우울한 일상에 힘을 주는 뉴스가 있다. 한국의 쌀이 사막 한복판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실제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에서 한국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품종 ‘아세미’가 자라고 있다. 게다가 이번 5월 초에는 수확도 예정되어있다. 사막에서 벼농사? 이건 뭔 일인가 싶을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아랍에미리트는 전체 영토의 95% 이상이 사막이다. 5%도 안 되는 땅만 토지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전체 인구 989만 명인 아랍에미리트연방(UAE)은 쌀을 주 식량원으로 한다. 게다가 이들은 ‘쌀 사랑’으로 유명한 한국인들(1년 쌀 소비량 61kg)보다 34kg이나 더 먹는다. 이렇게 토지는 부족하고 식량 소비가 많은 국가이다 보니, UAE는 농식품의 85%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2018년 3월 한국과의 정상회담 이후 아랍에미리트는 한국에 벼 재배기술과 품종 전파를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후 농촌진흥청이 중심이 되어 2019년 ‘벼농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9년 11월 25일 1,890㎡ 부지에 파종하였고, 5월 초 현재 수확을 앞두고 있다.

작물이 불가능한 사막에서 이런 놀라운 성과를 만들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이 있었으리라 짐작이 간다. 실제 품종선택에서 알칼리성 토지에 물 공급을 위한 부직포설치, 벼의 양육에 필요한 토지의 산성화를 위한 영양분공급, 벼 성장의 지속적 관찰과 관리를 위한 원격통제까지 말로 다 하기 어려운 노력이 있었다. 농촌진흥청의 전문가들과 관계자들의 이런 노력이 알칼리성 토양인 사막에서도 쌀을 생산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일조량이 좋아 예상 수확량은 1,000㎡당 763㎏에서 793kg 선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한국 땅에서 수학하는 경우보다 50% 정도 수확량이 많은 것이라고 한다.

이런 ‘밝은 성과(明)’ 뒤에는 ‘암(暗)’도 있다. 우선 투자수익률(ROI :Return On Investment)이 매우 낮다. 이번에 1차 추수에서 16가마(80kg 기준)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2차 추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 수확을 위해 들어간 비용이 지나치게 많다. 생산에 든 비용만 헥타르(3,025평)당 565만 원이고, 바닷물 제염 처리 비용은 2,000만 원이나 된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큰 것이다. 게다가 사막에서 벼농사 재배에 성공한 것은 한국만이라는 차별성을 가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중국이 바닷물로 재배 가능한 벼 품종을 개발하였고 사막에서 농사짓는 것에도 성공했다. 정리하면 한국만의 특수한 기술도 아니며 비용이 과하게 들어 경제성은 아직 멀었다.

하지만 농업진흥청도 5년의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중기적인 프로젝트인 만큼 추후 물 공급 문제나 비용삭감 문제는 해결책을 찾아갈 것이다. 실제 ‘아세미’라는 품종을 개발한 것이 7년에 불과하다. 또 새만금지역이 사막과 유사한 환경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비용을 낮출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다. 아직 이것으로 농업 한류를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하지만 ‘사막의 벼농사.’ 그 시도와 결실의 의미만큼은 큰 것으로 보인다.

뉴스를 보다가 문득 아랍에미리트의 지도를 다시 보았다. 지리가 눈에 꽂혔다. 아랍에미리트는 오만의 위쪽,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쪽에 있다. 아랍에미리트가 마주한 페르시아만의 위쪽으로는 이란이 있다. 게다가 아랍에미리트는 그 악명높은 호르무즈해협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산유국들이 모인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여 원유를 해외로 보내는 길목이다. 이 길목으로 하루 평균 14척의 유조선이 통과한다. 이렇게 통과하는 원유량만 하루 평균 1천 5백만 배럴이다. 이 수치는 바다를 이용하는 석유수송량 전체의 35%나 되며, 바다뿐 아니라 육지의 파이프라인까지를 포함한 전체 석유거래량 기준으로도 20%나 된다. 게다가 두바이유를 수입하는 한국은 수입량의 82%가 여기를 지나간다.

게다가 폭이 좁고 수심이 낮아 항상 막히는 이 해협은 안전한 통행을 위해 운행 가능한 해로 10km 중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는 해로 3km와 나가는 해로 3km로 나누어서 관리한다. 북쪽의 해로로만 대형유조선이 들어갈 수 있는 지리조건에서 이 북쪽 해로는 이란의 영해와 겹친다. 여기에 두 가지 조건이 더해 아랍에미리트를 압박한다. 첫째, 시아파를 중심으로 한 이란에 맞서 시아파의 종주국인 사우디가 페르시아만을 마주 보고 대치한 상황. 둘째, 트럼프행정부에 들어와 미국과 이란 간의 갈등 격화.

아랍에미리트를 보면 “지정학이 참 많이 설명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현재나 미래 모두에서 말이다.

호르무즈해협이 막힌다고 생각해보라. 아랍에미리트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벼농사 지원 요구한 것은 이런 상황이 초래할 수 있는 식량안보의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주 수입원인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들어오는 식량은 현재 UAE의 필수적 생존조건이다. 지역강대국 사이에 끼이고, 미국과 이란 사이에 치이는 힘이 약한 국가의 처절한 생존조건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공감대가 크다.

한국이 사막까지 ‘이동’하여 벼농사를 지원한다고 해서 갑자기 중동지역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교두보를 만들 수는 없다. 한국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거대한 해군 전단을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도 관리가 어려운 이 지역의 질서를 좌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막에 벼를 심는 노력처럼 이 지역에도 관심을 ‘이동’시킨다면 미래에는 이 지역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외교력’은 좀 더 내실을 가지고 튼튼해질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사막의 벼’는 매우 평범하지만 중요한 교훈을 준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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