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18) / 락다운 시대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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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의 미국법 실무(18) / 락다운 시대의 변호사
  • 박준연
  • 승인 2020.04.2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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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박준연</strong>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처음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해도 괜찮다고 발표했을 때는 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된 환경의 변화가 업무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면 회의 이외의 대부분의 업무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업무이고, 회사에서도 예전부터 업무 관련 워크스테이션 설치를 장려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상황이 점점 나빠지면서 아직 정부 차원의 락다운은 아니지만, 주변 상황의 변화에 따라 회사에서는 재택근무를 장려하다가, 이제는 회사에 출근할 경우 미리 알리도록 하고 있다. 다른 업종에 비해 절실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외출 자숙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하는 업무에서도 점점 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락다운과 업무의 변화

일본에서 국가 긴급 사태 발표가 나기 전날에는 급하게 잡힌 회의가 있었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회의였지만 분위기도 분위기인지라 마스크를 쓰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도 그 다음날 발표가 있고 나서부터는 대면 회의하기가 어려워졌다. 내부 조사를 위한 증인 인터뷰를 하는 경우, 대부분의 변호사가 대면 인터뷰를 선호한다. 이는 전화 회의나 비디오 회의에서는 얻기 어려운 정보, 즉 증인의 표정이나 바디 랭귀지, 대면 회의시의 분위기 등을 대면 인터뷰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부 조사 인터뷰가 아닌 회의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증인 인터뷰에서는 증인이 혹시 거짓 증언을 하지는 않는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기억하는지 등의 말로 분명히 표현되지 않는 정보가 특히 중요성을 갖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게 된다.

그래서 화질이 좋아지고, 어디서나 쉽게 접속할 수 있고, 필요한 문서도 쉽게 화면 공유를 통해 함께 볼 수 있는 비디오 회의를 하더라도, 변호사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같은 공간에 있을 때의 분위기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 화질이 좋아도 화면을 통해서는 쉽게 전달되지 않는 미묘한 표정 변화 등을 비디오 회의를 통해서는(최소한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내부 조사와 관련하여 데이터를 수집, 포렌식 처리, 리뷰하는 과정에도 지장이 있다. 전자 데이터의 수집, 처리, 리뷰에는 대면 대응이 최소화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데이터 수집과 관련하여 전자 기기를 건네주는 과정에서는 증거물 보관의 연속성(chain of custody)을 확보하기 위하여 증거 수집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이때 대면 접촉이 필요하다. 따라서 최근에는 데이터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중요한 데이터 위주로 수집하고 그렇지 않은 데이터 수집은 미루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내부 조사에 둘 이상의 국가, 지역이 연관된 경우(예컨대 본사와 내부 조사가 진행되는 지역이 다른 경우) 두 지역 사이의 기대를 조정할 필요성이 있었다. 업무를 하다가 보면 다른 지역에서 당장 대면 인터뷰, 회의를 잡고 이야기를 빨리 진행시키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정작 현지에서 회의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인 경우도 많다. 단순히 대면 회의를 할 수 있는 상황인지 아닌지 뿐만 아니고, 내부 조사의 전반적인 속도도 그 지역의 상황에 따라 달라짐을 감안해야 한다.

출장을 갈 수 없게 된 것도 물론이다. 증인 인터뷰를 위해 계획했던 출장은 좀 두고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가, 아예 출장이 어려워지면서 비디오 회의 등 다른 방법을 찾거나 연기하였다. 증언 청취뿐만 아니고, 개인 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개인 데이터를 외국으로 반출할 수 없는 경우에는, 변호사가 직접 해당 데이터가 있는 곳으로 가서 데이터를 리뷰,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한 출장도 처음 내부 제안이 있은 후 상황이 점점 나빠지면서 갈 수 없게 되었다.

내부 의사소통의 양상도 조금 달라진 느낌이다. 예전보다 전화나 비디오 회의의 빈도가 높아진 것 같다. 특히 여러 오피스의 변호사로 업무 팀이 운영되면, 지역 환경에 따라 거의 재택근무를 하는 지역, 어느 정도 오피스로 복귀한 지역 등으로 상황이 다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9년 뉴욕, 2020년 도쿄, 로펌은 달라질까

지난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 때는 뉴욕에 있었다. 여름 프로그램으로 일하던 로펌, 나중에 로스쿨 졸업 후 입사한 로펌에서 여름 프로그램 기간 중 일부 기간을 한 투자 은행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해 여름에 그 투자 은행에서 인수한 다른 투자 은행의 법무 부문 변호사들이 입사해 왔다. 금융 위기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금융위기의 영향은 월스트리트에서 보낸 몇 주 간을 포함해서 뉴욕에서는 눈에 보이고, 또 체감할 수 있었다. 단지 방관자로서 관찰한 것이 아니고, 로스쿨 졸업을 전후해서 금융위기의 영향이 뉴욕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 발생하면서 로스쿨 졸업 후의 진로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채용 오퍼를 받은 회사의 업무 시작 시기는 늦추어지고, 기다리면 예정대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는지, 경기가 별로 회복되지 않아서 시기가 더 늦추어질 수 있는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던 때였다.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체류하고 있어서 업무 시작이 늦어지면 체류 자격은 어떻게 되는지, 그보다 힘들게 마친 로스쿨 과정 후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없는 상황에 조바심이 컸다.

주변에 변호사로 프랙티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다들, 금융위기로 인한 불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그에 따라 로펌들이 신규 입사 변호사를 포함한 고용 조정을 언제까지 계속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와중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한 선배 변호사가 있었다. 지금 로펌들이 겪는 변화는 경기가 회복되어도 결코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로펌 운영, 변호사 채용 등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였다. 그 이후 10년 정도가 지나고 그 예측은 반 정도 맞았고 반 정도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일어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도 있고, 경기가 회복되면서 예전으로 돌아간 부분도 있다. 뉴욕에서 보냈던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시간의 흐름뿐만 아니고 상황의 변화 자체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제 2020년 도쿄. 현재의 어두운 상황은 얼마만큼 지속될 것이고 그것이 변호사, 로펌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나처럼 소심하고, 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는 사람이 논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도 중학생 시절,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으면서 이런 터무니없는 얘기가 다 있나 했던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진행 중인 전세계적인 변화로, 변호사 업무가 어떻게 바뀔지를 예측하는 것은 아직 이르고 어렵다. 결국 미래를 읽을 수 없는 나 같은 범인은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수밖에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 시간이 흐르면 금융 위기 때를 회상하는 것처럼 지금을 회상하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 수석 합격한 재원이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로펌 중의 하나인 ‘Latham & Watkins’ 로펌의 도쿄 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다.
필자 이메일: jun.park@l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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