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유시민 작가에 대한 위로, 양심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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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유시민 작가에 대한 위로, 양심 지키기
  • 오시영
  • 승인 2020.04.2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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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양심은 치열한 의지의 소산이다. 양심(良心)이 양심(兩心)인 자에게는 양심이 별 거 아니겠지만, 양심을 고유한 良心으로 지키려는 자에게는 양심이야말로 유일한 생명이다. “매 앞에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외부의 물리적, 심리적 폭력 앞에서 양심을 제대로 지켜내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의미이다. 더군다나 그러한 외부적 강압이 마지막 순간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국가권력으로부터 자행될 때 양심을 지키려는 이의 절망은 극에 달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외부적 물리적 강압을 심하게 체험한 이는 그게 영원히 뼈와 의식에 각인되어 잠재되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의식을 일깨우는 트라우마로 기능하게 된다. 남들과 함께 웃을 때도 문득문득 되살아나 자신의 양심을 괴롭히고, 남들과 함께 슬퍼할 때도 스멀스멀 기어 나와 자신의 온몸을 기어 다니는 소름 끼치는 순간순간을 부딪치게 된다.

유시민 작가가 지난 17일 유튜브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 라이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180석 당선 가능성 답변 발언과 관련하여 “이번에 많은 것을 느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안 해야 할 말도 하게 된다. 작년부터 윤석열 검찰총장과 시쳇말로 싸우고, 유튜브 알릴레오를 하면서 갈등도 많이 겪었고, 함정에 빠질 뻔도 했다. 더 감당하기 힘들다. 기성 미디어를 통한 정치비평이나 시사토론, 인터뷰, 이런 것도 하지 않겠다”라며 “저 이제 (정치비평을) 그만둘래요.”라고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저 이제 그만둘래요.”라는 저 말의 어감이 필자에게는 유시민 작가가 대단히 슬퍼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 전해져 왔다. 말로 할 수 없는 삶의 피곤함도 함께 전해져 왔다. 지난 42년간 현대사의 한 축을 이루며 “극한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온 순수한 한 영혼의 고갈상태”가 진하게 느껴져 왔기 때문이다. 악과 싸우다 보면 스스로 악해진다는 옛말처럼 자신이 추구해 온 “양심이 살아 있는 삶, 영혼이 순수한 삶”을 살기 위해 대척점에 존재하는 그 누군가와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해 와야만 했던 온 삶이, 그 마지막 한 가닥의 끈이 끊어지기 직전에 “스스로 멈춰 서야겠다”는 슬픈 자각이 자신도 모르게 “저 이제 그만 둘래요”라는 한 마디로 압축되어 표출된 듯한, 마지막 잠겨 있던 활화산 분화구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폭발하듯이 내뱉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유시민 작가가 저 마지막 한마디를 하는 데는 소위 윤석열 사단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는 한 검사장과 한 언론인의 신라젠을 둘러싼 검언 유착 공작 사실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의 말 한마디에 위로받고 환호하는 수많은 독자에게는 유시민 작가의 말 한마디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다. 그래서 독자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만큼 유시민 작가를 “강하고 담대한 철인”으로 인식하는 경향들이 있다. 하지만 필자의 눈에 비치는 유시민 작가는 “참으로 여리고 선한 심성의 소유자”일 뿐이다. 누구보다 마음이 순수하고 여려서 사소한 것에 상처받고 눈물지으며 마음 아파하는 심성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런데도 수많은 독자가 자신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약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자신을 독려하며 채찍질해 오다가 마침내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 마지막 벼랑 일보 직전에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추어 서야겠다는 “최후의 몸짓”을 펼쳐 보인 게 “저 이제 그만 둘래요”라는 저 말에 함축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저, 이제 그만 둘래요.”라고 정치비평 은퇴를 선언한 유시민 작가에 대한 한마디 위로의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후 1985년 5월 27일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다시 한 번 일독하였다. 그때로부터 만 35년이 지났지만 자신을 향한 검언유착의 검찰공작이 자행되는 현실을 지켜보며 하나도 달라진 것 없는 검찰과 사법부의 부정한 작태 앞에 두려움 짙은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유시민 작가는 1979년 박정희 독재정권의 유신체제를 종결지은 사람의 승리, 전두환 군사독재시대를 1987년의 민주화투쟁으로 종식시킨 사람의 승리, 1997년의 아이엠에프 사태를 극복한 사람의 승리, 2017년 촛불혁명을 통한 촛불시민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아직 청산되지 않은 검찰과 사법부의 구악 앞에서 자신이 청년 시절 학생운동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고문과 양심 외면에 이은 수감생활, 녹화사업에의 비양심적 협조 기억, 그런데도 계속하여 양심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강박감 등이 복합적으로 겹쳐지며 심한 공포심과 외로움, 좌절과 끝없는 투쟁을 계속해야 하는 것에 대한 절망적 막막함 등이 그를 지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약한 사람이다. 진정 그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영향력 있는 곶감 빼먹기”를 계속해야겠다는 어린애 같은 마음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의 외로움과 의지의 고갈을 이해하고 오히려 그에게 “따뜻한 위로와 연민의 마음”을 보내주어야 한다. 유시민 작가도 이제 남을 상담해 주는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을 상담해 주는 그 누군가의 위로에 귀 기울이고 마음의 안식과 평안을 얻으며 자신을 충전시켜야 할 것이다. 물론 독자뿐만 아니라 부인과 자녀들도 앞장서서 남편과 아버지의 고갈된 영혼이 마치 골다공증 환자의 고관절이 부서져 내리듯 철퍼덕 주저앉지 않도록 사랑을 보내고 신뢰를 보내며 영혼의 진액을 공급해 주어야 할 것이다.

유시민 작가는 위 항소이유서에서 자신의 주된 관심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척도이지 인간이 만든 법률이 아님”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독재권력 앞에서 고문으로 허위자백 된 사실에 근거하여 유죄를 선고하는 실정법이 아닌 “하느님의 양심”에서 자신의 행위와 주장의 정당성을 찾고 있다. 1978년 2월, 서울대에 합격한 후 법관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상경했던 열아홉 살 촌뜨기 소년이 “법을 앞세운 독재 권력이 고문이라는 폭행법 위반 행위를 자신들이 행하면서 오히려 폭행에 가담하지 않은 학생들을 폭행죄로 처벌”하는 실상을 보며 스스로 법관의 꿈을 포기했음을 밝히며 “그곳에서만은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신성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싶습니다. 본 피고인은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재판관이 ‘자신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정의에 관심을 두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현명한 재판관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정의가 설 토대를 건설하는 일이리라 믿습니다.”라고 “법관의 현실 안주와 하느님의 정의에 반하는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의 비겁함”을 비판하였다.

항소이유서 곳곳에서 경찰의 고문 앞에 무너져 내려야 했던 자신의 나약함, 허위사실을 자백하고 학생 운동을 함께했던 동지를 팔아야 했던 부끄러움, 군대에 강제징집당하여 보안부대의 폭력 앞에서 소위 녹화사업의 협조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치욕스러웠던 자신의 허물을 낱낱이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고, 죽어가는 양심의 재건이며, 앞으로 그러한 잘못을 반성하지 않겠다는 자기 성찰의 의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 유시민 학생은 “사법부가 본연의 윤리적 의무를 완수”해야 할 책무가 있음과 “법정은 법정이기 때문에 신성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만은 허위의 아름다운 가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때로는 추악해 보일지라도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신성한 것”임을 갈파하고 있다. 하지만 그때의 사법부, 5공 정권하의 사법부는 역시 법의 기계적 적용자였을 뿐이었고, 유시민 학생의 양심의 본질에 대한 접근조차 해보지 못한 나약하고 비열한 국가권력의 하수인이었을 뿐이었다.

42년 전 대학에 입학하여 상아탑의 아름다운 모습을 꿈꿨던 시골촌뜨기 청년이 거대한 불법집단이 되어 자유와 정의를 탄압하며 국민의 인권과 생명을 겁박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맞닥뜨려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존중받고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이 되는 데 앞장서겠다는 결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서, 2020년 민주화된 세상, 촛불혁명으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하였음에도 윤석열 검찰총장으로 상징되는 검찰권력은 여전히 통제되지 않고,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로 상징되는 사법농단의 현실 역시 개선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 그나마 입법부가 검찰개혁의 강한 의지를 가진 더불어민주당이 60%의 다수 여당이 된 것을 지켜보며 어느 정도 안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작은 안도감이 지난 42년 동안 팽팽하게 지탱해 온 긴장감을 순식간에 무장 해제시키는 촉매제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거기에 그러한 대칭축으로 강하게 뿌리 박혀 있던 유시민 작가를 눈엣가시처럼 느꼈을 그 어떠한 반대세력이 채널에이 이 모 기자와 관련된 모 검사들의 허위범죄사실조작공작이라는 검언유착으로 구체화되고, 또한 그에 앞서 자신의 예금통장에 대한 금융거래 조회 사실 등이 밝혀짐에 따라 끊임없이 검은 손길이 자신을 정조준한 채 자신을 몰락시키고자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사실 앞에 35년 전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당한 기억, 녹화사업의 회유대상자가 되어 보안부대에 의해 끊임없이 폭력적 강요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수치스러운 기억들이 트라우마가 되어 되살아나면서 자신 의지의 선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진정 아니기를 바라지만, 자신의 약함을 강한 척 과장된 행동으로 포장한 채 살아오며 스스로 영혼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까지 내몰린 것이 아닌가 싶어 안쓰러운 것이다. 많은 독자는 아직도 그의 정치평론가로서의 은퇴를 만류하며 여전히 사회적 키 역할을 수행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이제 좀 쉬면서 정신적 상담도 받으면서 여유로운 삶을 맛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로부터 많은 것을 전달받았던 독자들이, 가족들이 이제는 역으로 그에게 위로를 보내고, 지지를 보내고, 따뜻함을 보내야 할 때라고 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 봉하에서 오리농사를 짓고 평안하게 살고 있는 외관에 우리가 집중할 때 반대자들에 의해 논두렁시계로 공격당하면서 그분이 느껴야 했던 외로움과 공허감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던 잘못을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침체에 대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 당정청 협의 과정을 통해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4인 가족 기준 100만 원을 지급하는 하나의 안으로 마련되었다. 정부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국민이 스스로 위 돈을 받지 않는 방법으로 기부하게 하면 이에 대한 기부금 공제로 인한 세제상의 혜택을 주기로 한 모양이다. 지방정부에서 주는 돈에 대해서도 선한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정부가 지급하는 돈에 대해서도 그런 선행이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이때 정부는 이 돈을 국민이 단순히 받지 않았다고 하여 정부가 기부금 수혜자가 되어 예산을 절약해야겠다는 단견에서 벗어나, 이 돈을 별도 계정으로 적립하여 독거어르신이나 요양보호시설, 생계보호대상자 등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기금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긴급재난지원금의 적시 공급과 기부문화의 확산은 침체한 경제를 살리고 코로나19 사태로 의기소침해진 국민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야당인 미래통합당도 당시 당대표인 황교안 대표가 1인당 50만 원씩 지급해야 한다고 선거공약을 내세웠던 것을 기억하고(4인 가족으로 치면 현재의 정부 안보다 더 많은 200만원이 된다), 4인 가족 100만 원 지급을 추진하는 정부, 여당 예산안 찬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60%의 여당 당선자를 배출시킨 민의를 존중하여 어려운 코로나19 사태라는 국난을 앞장서서 해결하는 선견지명이 야당에도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다.

유시민 학생은 35년 전 항소이유서의 마지막을 “네크라소프”의 시구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35년이라는 세월 동안 민주화, 선진 경제화가 많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독점재벌권력과 검찰과 사법 권력은 강고하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많은 국민이 슬픔과 노여움을 표출하여 선거 혁명을 이룩하며 조국 사랑을 표현한 대한민국은 희망이 있다.”라는 말을 유시민 작가에게 들려주며 정신적 공허함을 잘 극복하라는 위로의 말을 전한다. 당신을 지켜보며,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에게 따뜻한 마음을 함께 하려는 독자들이 많이 있음을 믿고 위로받기 바란다.

오시영 전 숭실대 법대 학장 / 변호사 / 시인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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